"경쟁 유도해 소비자 부담 완화" vs "휘발유 도맷값은 기업 영업비밀"

[고물가에 가격 개입 나선 정부]
개정안 이달 규개위서 결론 못내려…내달 재심의 예정
산업부, '경쟁 유도' 기대…업계, '헌법 가치 훼손' 주장
2011년 MB정부서 시도했지만…같은 반발로 끝내 무산
횡재세 도입 주장 속…정부 "최소한의 소비자 보호" 강조
  • 등록 2023-02-27 오전 5:00:00

    수정 2023-02-27 오전 5:00:00

[세종=이데일리 이지은 하지나 기자] 정 정부가 12년 만에 다시 휘발유·경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도매가격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기름값 안정화를 위해선 도매가격을 공개해 기업 간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영업권 침해”, “기업의 경영활동 위축” 등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6일 총리실에 따르면 지난 24일 열린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 경제1분과위원회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 중인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초반부터 찬반 양측의 기싸움이 팽팽하게 펼쳐진 탓에 의견 청취 시간이 길어졌고, 결국 정부와 민간을 대표해 심의에 참석했던 위원들은 논의 테이블도 차리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규개위는 내달 10일 재심의를 열기로 잠정 결정하고 추가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개정안이 심의를 통과하면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 최종 공표된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경쟁 유도해 가격 인하’ vs ‘명백한 영업비밀 공개’

개정안은 현재 정유사들이 공개하고 있는 자료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세부적으로는 △정유사별, 지역별 판매량·매출액·매출단가 △정유사별, 전체 판매 대상별(일반대리점, 주유소 포함) 평균 판매가격 △정유사가 주유소에 판매한 지역별 평균 판매가격 등까지 공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매가격이 세밀하게 공개되면 시장 경쟁이 발생해 정규 가격 안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현재 주유소와 정유소의 거래는 1개월 단위의 사후정산제로 이뤄진다. 주유소가 정유사에 우선 입금가를 지불하고 기름을 받아온 뒤, 한 달 뒤 정유사가 고지하는 확정가에 따라 최종 정산을 하는 방식이다. 가격 변동성이 심한 국제유가의 특성을 반영한 방식이지만, 주유소 입장에서는 싸게 팔았다가 손해를 볼 수 있어 섣불리 가격을 내리기 힘든 구조다.

산업부는 도매가격을 공개하면 지역별 가격 편차가 줄어들고,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 4곳의 과점체제인 시장에서 경쟁을 유도해 석유제품 가격 인하로 이어질 것으로 봤다. 산업부에 따르면 정유사별 주유소에 공급하는 도매가는 리터(ℓ)당 10~80원의 차이가 있다.

정유업계는 헌법에 보장된 시장경제에 위배되는 규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석유 및 석유대체원료사업법 38조2항에 따르면 ‘산업부장관은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석유정제업자·석유수출입업자 및 석유판매업자의 석유제품 판매가격을 공개한다’고 명시돼 있기에 시행령 개정은 상위법을 위반한다는 주장이다. 헌법 제 126조 사영기업의 경영권에 대한 불간섭 원칙에 따라도 도매가격 공개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해석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도매가격은 구매원가, 제반비용, 마케팅 비용이 포함된다”면서 “이는 명백한 영업비밀에 해당되며, 이를 공개한다는 것은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유사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경유를 생산하는데, 도매가가 공개되면 경영전략과 설비 생산 능력 등 핵심 영업기밀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오히려 다른 업체의 전략을 참고해 가격이 상향 동조화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휘발유 판매 가격이 경유 가격을 8개월 만에 추월한 가운데 2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MB 때도 논란 후 무산…재추진 배경은

정부가 유류 도매가를 공개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이명박 정부도 2009년 정유사 평균공급가격 공개를 성사시킨 뒤 2011년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석유제품 가격을 주간 및 월간 단위로 공개하는 방향으로 확대하려 했다. 하지만 큰 논란이 일면서 끝내 규개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12년 만에 업계 반발도 재점화했지만, 물가와 민생 안정에 총력전을 선언한 윤석열 정부의 추진 의사는 확고해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내 석유시장은 정유사 4곳의 과점 체제로 완벽한 경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외국은 횡재세가 도입되는 추세를 고려하면 정부의 시행령 개정은 최소한의 소비자 보호를 위한 경쟁 촉진 방안”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독과점 폐해를 줄이기 위한 경쟁 시스템을 내세우며 은행·통신업계를 때리고, 소줏값 인상 움직임에 주류업계 실태 조사에 나선 상황에서 정유업계가 또 하나의 타깃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정유업계는 고유가 속에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SK이노베이션(3조9989억원), GS칼텍스(3조9795억원), 에쓰오일 (3조4081억원), 현대오일뱅크(2조7898억원) 등 정유사 4사는 지난해 총 14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초호황을 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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