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윤창중과 '갑을 문화'

  • 등록 2013-05-14 오전 6:12:53

    수정 2013-05-14 오전 8:05:15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요즘 이슈의 ‘갑’은 단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모든 언론은 연일 윤 전 대변인의 행적을 낱낱이 파헤치느라 바쁘고, 인터넷에서는 이미 해당 인턴직원의 사진까지 나돌고 있다. 결국 대통령이 직접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나섰다.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남양유업 사태는 순식간의 이슈의 ‘을’로 전락했다.

기자가 지난 주말 참석한 여러 건의 모임에서도 어김없이 윤 전 대변인의 사건이 이슈가 됐다. 그런데 반응이 조금 달랐다. 지극히 사적인 모임에서 5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인턴 여학생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들은 “그깟 엉덩이를 만진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국가적인 성과를 다 망쳐놓냐”며 “그 여학생에게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데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다면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진 않았을 것”이라고 핏대를 올렸다. 국가를 위해서 개인은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이한 점은 이런 논리의 대화는 주로 여성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나이 지긋한 부인들이 이런 논리를 펼치자 쭈뼛거리던 아저씨들도 그제서야 맞장구를 쳤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개발시대를 거쳐온 대한민국 아버지 어머니들의 진짜 속마음인지도 모르겠다. 1970~80년대 급격한 성장 속에서 ‘국가’와 ‘조직’을 위해 개개인의 사정은 으레 무시됐다. 국가의 성과를 빛내기 위해서라면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잡는 비정상적인 행동은 얼마든지 용인됐던 시대. 갑을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갑’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승무원을 때려도, 하청업체 직원에게 폭언을 퍼부어도 무사통과였다. 수많은 ‘을’들은 자신도 갑이 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그날만을 기다리면서 꾹 참았다. 한평생 이런 문화 속에서 살아온 부모님 세대에게는 인턴 여학생이 국가행사를 망쳤다는 괘씸함이 다른 어떤 상식보다 우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이런 방식의 갑을문화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급격한 개발시대를 살아가는 예전의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비전은 ‘국민행복시대’다. 국가도 조직도 아닌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일하겠다는 뜻이다. 개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갑을관계가 아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계층과 분야를 막론하고 누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룰인 상식이 통할 때 비로소 갑의 횡포는 사라질 것이다. 지난 50년간 국민들이 피땀 흘려 경제규모 세계 13위의 대국을 이룩했다면, 이제는 갑을문화와 같은 성장통은 엄중히 따져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발돋움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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