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에 '현금' 무상지급해야 할 이유 있소!"

판타지 아닌 진짜 유토피아 가려면
기본소득 보장에 근로의욕 떨어져?
빈곤층 복지덫 해방…경제력 높여
한주에 15시간 일하면 나태해진다?
일자리 나눠 실업해결 환경개선도
………………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뤼트허르 브레흐만|320쪽|김영사
  • 등록 2017-09-20 오전 12:12:00

    수정 2017-09-20 오전 12:12:00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배분하는 ‘기본소득’을 실현할 수 없는 이유가 뭔가.” 유럽서 촉망받는 네덜란드 출신 스물아홉 살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무상 현금지급’ ‘주 15시간 노동’ 등 저돌적인 실행전략으로 진짜 유토피아로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이미지=이데일리 디자인팀).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대한민국 서울 세종대로. 누군가가 그 한복판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다고 상상 한번 해보자. “우리는 주당 15시간만 노동해도 됩니다.” 적나라한 주위반응이 보인다. “옳소!”라고 부추기며 히죽거리는 사람, “뭐 저런 미친놈이…”라며 인상부터 구기는 사람, “오늘은 또 어느 단체서 나왔나”라며 밀어닥칠 교통정체부터 걱정하는 사람. 그런데 만약 그 누군가가 연타를 날리는 중이라면. “모든 국민에게 무상으로 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선동은 아니다. 아니 그럴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해 상황이 여기서 끝난다면 선동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유럽서 촉망받는, 네덜란드 출신 스물아홉 살 젊디젊은 사상가라면. 역사·철학·경제학을 꿰뚫고 벌써 굵직한 저술 4권을 출간했다면. 그중 한 권인 ‘진보의 역사’라는 책으로 이미 4년 전 최고의 논픽션부문에 뽑히는 영예를 누렸다면. 지난해 다섯 번째로 낸 책에선 어르신 학자들도 버거워하는 ‘기본소득’이란 뜨거운 감자를 덜컥 베어 물었다면.

‘그 누군가’가 말하는 곳이 ‘유토피아’라는 곳인가. 맞다. 그러면 그리로 가자는 얘기인가. 그건 아니다. 그에게 세상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토피아였으니까.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이제 귀환하자는 거다.

감히 유토피아라니. 그렇다면 당장 궁금한 건 이런 최상위 낙관주의가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거다. 그건 역사다. 밑밥을 역사로 깔았다. 인류가 지구에 나타난 이래 99%의 시간 동안 그들의 99%는 가난했더랬다. 더럽고 어리석고, 병에 걸려 비실대고, 결정적으론 ‘못생겼다’. 그런데 1%에 해당하는 지난 200년 동안 세상이 메가톤급으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폭풍성장이다. 말끔해지고 현명해졌으며 건강해졌다. 역시 결정적으로 ‘잘생겨졌다’. 형편도 점차 나아지는 중이다. 1820년에 세계인구의 94%를 차지하던 극빈층이 160년쯤 뒤인 1981년에 44%가 됐고 달랑 35년이 지난 요즘은 10% 미만이다. 게다가 ‘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이 1950년대에는 12%에 불과했지만 요즘은 80%가 ‘난 매우 특별해’를 입에 달고 다닌다니.

자, 어떤가. 과연 유토피아라 할 만하지 않나. 그런데 뭔가 삐거덕거린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출현해 유토피아를 디스토피아로 몰고 가는 거다. 가령 1980년대 이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는데 왜 여전히 죽기 살기로 일해야 하나. 빈곤을 퇴치하고도 남을 정도로 가졌는데 왜 아직도 가난에 허덕이는 이웃이 부지기순가. 어째서 내 소득 60% 이상을 국가가 굳이 나서 좌지우지하려 드나.

다 나왔다. 비록 순서가 뒤집혔지만 문제제기와 실행전략이 그려졌다. ‘과거 그들이 그토록 꿈꾸던 모든 것은 이미 실현됐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가 문제제기, 어떻게 ‘무상 현금지급’ ‘주 15시간 노동’의 세계로 들어설 것인가가 실행전략인 셈이다. ‘스물아홉 살 젊디젊은 사상가’인 저자가 책에서 낱낱이 짚은 대목이 바로 그거다. 막연한 청사진, 뭉뚱그리기 식 접근은 없다. 현실주의자가 현실적으로 따지고 든 가장 현실적인 유토피아라고 할까.

▲일정 금액 보장하면 일 안 하나

지난해 6월 스위스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안건은 ‘기본소득’의 도입을 실행할까 말까였다. 결과는 76.9%의 반대로 부결. 하지만 저자는 그 자체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스위스의 국민투표는 기본소득에 관한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그러고선 기본소득이 실현될 수 없는 이유가 뭐냐고 되레 따져 묻는다. 공짜 돈을 받으면 일을 안 할 거라고? 재원을 어찌 마련하느냐고?

그게 문제라면 이렇게 대응하면 된단다. 기존 복지제도가 국민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았느냐고.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그 위에 유급직업을 갖는 일이 더 수월해질 거라고.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선진국이 전쟁·군사비만 줄이면 충당할 수 있다고. 이어선 기본소득 개념이 이미 반세기 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에 의해 발의됐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닉슨은 빈곤가정에 조건 없이 연 1600달러(현재로 1만달러·약 1130만원)를 나눠주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비록 상원의 반대로 부결됐지만. 하지만 사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절박하다. 인공지능(AI)까지 인간의 통장을 넘보고 있게 됐으니까.

▲근로시간을 줄이면 게을러지나

1930년대 대공황이 기승을 부리던 당시.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집단구타를 유발하는 발언을 한다. 2030년이면 인류 최대의 과제인 ‘무한한 여가시간’을 보내는 문제에 직면할 거라고. 한술 더 떠선, 정치인들이 “파멸을 초래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때 우린 주당 15시간을 일할 것”이라고.

저자는 역사책에서 찾아낸 케인스의 이 사례를 노동시간이 줄어 인간이 몹시 게을러질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 앞에 내놨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기계화가 인간을 나태에 빠뜨릴 거라고 걱정을 해댔더랬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됐나. 나태는커녕 기계화가 몰고 온 경제성장은 인간을 되레 더 깊은 노동의 수렁에 빠뜨리지 않았느냐는 거다.

그러곤 이제야말로 근로시간을 줄여 그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짚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자리를 나누면 실업을 해결하고 의료사고나 원전사고, 금융위기까지 막을 수 있다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테니 기후변화도 막고 건강도 지킬 수 있고. 어차피 성장해봐야 삶의 질은 더 나빠질테니 이쯤에서 제동을 거는 게 어떻겠느냐고.

▲세상 좋아져도 내가 불행한 건

이쯤해서 전제가 필요하겠다. 유토피아가 뭐냐는 것. 저자는 자신의 유토피아가 ‘좋은 장소’와 ‘없는 장소’를 동시에 가리킨다고 했다. 하지만 엄격한 청사진은 아니란다. 그저 작은 규모라고. 15∼16세기 스페인 한 수사는 식민지 라틴아메리카에서 누구나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도시를 꿈꿨다. 19세기 영국의 한 방적공장 소유주는 고용인을 때리지 않고 정당한 임금까지 지불하려고 했다. 같은 시기 한 철학자는 남녀가 동등하다고까지 믿었고. 이 모두는 저자가 볼 때 각성한 몽상가가 펼친 작은 유토피아였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선언을 첫 장에 달고 시작한 이유가 있었다. “유토피아가 없는 세계지도는 잠깐이라도 들여다볼 가치가 없다. 인류가 늘 지향하는 국가를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진보라는 건 유토피아를 깨닫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그래서 저자는 그 말대로 현금을 나눠주고 주당 15시간을 일하게 한 뒤 빈곤의 종말을 보려 한 건가.

어떤 이는 ‘젊은 치기’가 대책 없이 저지른 도발쯤으로 몰고 갈 수도 있겠다. ‘복지’로 늘 다퉈온 좌우논쟁을 들이대며 결국 건질 게 없다는 결론으로 책을 덮어버린다면? 분명한 건 이때 손해를 보는 쪽은 저자가 아닌 ‘어떤 이’라는 거다. 어차피 움직이지 않는다면 현실은 단 한 장면도 유토피아가 될 수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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