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물산업 반도체 2배 시장..환경기업 규모 키워 경쟁"

새만금부터 4대강까지 물관리 해결사로 해법 제시
미래 환경 산업 초점은 기술..하이텍 장비 개발해야
  • 등록 2015-04-28 오전 5:00:00

    수정 2015-04-28 오전 5:00:00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안경을 벗어보면 어떨까요?” 인터뷰 사진을 찍기 전 사진 기자가 말했다. 윤성규(60·사진) 환경부 장관은 “안경을 벗고 있으면 날카로워 보인다고 해서요…”라며 멈칫했지만, 이내 안경을 벗었다.

스틸소재의 검은색 안경테가 사라지자, ‘독일병정’, ‘연필 10자루’라는 별명에서 풍기는 냉철하고 엄한 이미지가 사라졌다. 선한 눈매에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이 비로소 밖으로 드러났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김정욱 기자)
직장·학교 다니며 고시공부까지

그가 ‘환경’을 만난 건 33세 때다. 1975년 19세에 건설부(현재 국토교통부) 국가공무원 4급(현재 7급)으로 공직을 시작했으니 진짜 운명을 만나기까지 14년이나 걸린 셈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하며 2년제 전문대학을 마쳤다. 졸업 후 곧바로 한양대 기계공학과에 편입해 기술고시 시험에 도전했다. 공부와 일 어느 것도 놓을 수 없었다. 잠은 하루 2시간씩 잤다. 그렇게 1년을 공부했다. 기술고시에 합격, 대학 4학년이던 1978년 사무관으로 발령받았다. 첫 근무지는 문화공보부였다. 상공부(현재 산업통상자원부)를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는 2년 동안은 그야말로 밤손님처럼 공부했어요. 전에는 직장을 다니면서 고시 준비만 했지만, 한양대 편입 후에는 직장 다니랴, 고시 준비하랴, 학교 다니랴 삼중고를 겪었지요.”

문화공보부에서 일하다 환경부의 전신인 환경청이 규모를 키우며 인력을 확충하던 때 환경부로 자리를 옮겼다. 26년이 지난 2004년에야 그는 산자부를 가게 됐다. 부처 간 교류근무 차원으로 소속을 옮겨 1년간 자원정책심의관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뼛속까지 ‘환경맨’이 된 그에게 더 이상 상공부의 미련은 없었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는데, 남자 팔자도 뒤웅박 팔자더라고요. 뒤웅박은 박의 꼭지 근처에 구멍을 뚫어 그 속을 파낸 거라 한번 그 안에 들어가면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죠.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원래 생각했던 대로 가는 게 아니라 저를 둘러싼 뒤웅박이 있어 그 속에서 생활하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김정욱 기자)
새만금에서 4대강까지 소통에서 해법 찾아

그는 환경부의 뜨거운 감자를 도맡아왔다. 시화호, 새만금, 4대강 등 어느 것 하나 민감하지 않은 게 없었다. 새만금사업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말 추진된 단군 이래 최대의 국토개발 사업은 ‘개발’과 ‘보호’ 논리가 충돌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윤 장관이 수질정책과장으로 재직하며 작성한 보고서가 ‘동진강 진행·만경강 중단’이다.

파장을 우려한 총리실은 보고서 외부 유출을 금지했다. 2001년 새만금 사업 공개토론회에서 그는 자신이 과장 때 만든 이 보고서를 토대로 새로운 사업 방향을 제시했다. 수정안은 받아들여졌고, 새만금 사업의 큰 물줄기가 바뀌는 계기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4대강의 상류를 보호하는 토대인 ‘수질오염총량관리제(지방자치단체별로 목표 수질을 정한 뒤 이를 달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오염물질의 배출 총량을 관리하는 제도)’와 ‘물 이용 부담금 제도(물을 공급받는 주민이 물 사용량에 비례해 부담금을 내는 제도)’ 등을 만들었다.

정부 일방의 추진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일이 이해당사자를 찾아가 한발씩 양보를 이끌어냈다. ‘물 소통 전문가’라고 칭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소통을 잘 한다고 할 순 없습니다. 다만, 문제의 맥은 어느 정도 짚습니다. 맥을 잘 짚어야 시행착오가 적은 해법을 낼 수 있으니까요.”

환경부 장관이 된 그가 봉착한 물 문제는 ‘4대강’ 녹조였다. 올여름에도 무더운 여름이 예고되며 ‘녹조라떼’의 공포는 다시 고개를 들 전망이다. 그는 4대강 사업이 녹조를 심화시킨 원인이라는 시민사회단체의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보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고개를 저었다.

“보 해체 시 드는 비용을 국민이 부담하지 않는다면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이때 발생하는 비용 또한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 때문에 보를 유지하면서 물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방안이 지금으로선 최선입니다.”

그는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을 총동원해 깨끗한 4대강을 유지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지류·지천 관리를 통해 녹조의 원인물질인 인을 제거하는 작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녹조의 서식환경을 없애도록 댐·보 최적운영방안을 국토부, 농식품부와 함께 도출할 예정입니다.”

물산업 시장 매년 4% 성장..2025년 900조

세계 환경산업은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물 산업 규모는 세계 반도체산업보다 2배 이상 크다. 매년 4% 이상 성장한다. 2013년 560조원 규모이던 물 산업시장은 2025년에는 900조원대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 경쟁력은 걸음마 수준이다. 10인 미만 영세기업이 70%를 차지하고 있고 이들 상당수가 정수공정, 하수처리공정, 폐수처리공정에 집중돼 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물환경산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정욱 기자)
윤 장관은 “세계 환경산업의 핵심은 기계 장비산업”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환경산업이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몇 년 전 독일 뮌헨의 환경박람회를 방문해 꼼꼼하게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전시물 중 90% 이상이 환경 관련 기계장비더군요. 공정보다는 기자재산업의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환경 장비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고급 환경 기술 기자재 산업을 육성해 환경산업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국내에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사장되고 만다. 올해 안에 ‘환경오염시설의 통합관리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내 환경산업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라는 게 환경부의 기대다.

이 법안은 기업이 오염물질을 효과적으로 줄이면서도 경제성 있는 우수한 환경관리기법(최적가용기법)을 적용하도록 강제하는 한편 사업장별 입지 여건 등에 맞는 맞춤형 허가배출기준을 정해 지키도록 한 것이 골자다.

아울러 허가 조건 및 기준을 주기적으로 검토(5~8년)하되, 필요한 기술을 지원하는 등 합리적 규제를 통해 기업의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환경관리 수준을 높이는 게 목적이다.

“환경관리 수준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관련 기술도 발달합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좋은 환경기술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수출길도 열릴 것입니다.”

‘성불고’(誠不孤) 20년…마음을 얻다

그의 좌우명은 성불고(誠不孤)다. 논어 이인편(里仁篇)에 나오는 ‘덕불고 필유인(德不孤 必有隣·덕이 있는 자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에서 ‘덕(德)’을 ‘성(誠)’으로 바꿨다. ‘성실은 결코 외롭지 않다. 반드시 알아줄 때가 있다’는 의미의 성불고는 그의 평생의 지침이 됐다.

도대체 몇 년을 묵묵히 견뎌야 세상이 알아주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껄껄 웃으며 20년쯤 걸렸다고 했다. “곳곳에서 물싸움이 치열할 때 논두렁 밭두렁 막걸릿잔을 기울이며 주민과 이야기를 나눴죠. 끊임없이 노크했더니 처음엔 ‘죽일 놈 살릴 놈’ 했던 그분들이 제 우군이 되어주더군요. 저에게 ‘성불고’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는 청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대학 2~3학년 때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정하고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한우물을 파야 길이 열립니다. 어느 분야든 성실하게 정성껏 한 일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진정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자가 되고 싶다면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윤성규 장관은 195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공업전문학교, 한양대를 졸업하고 동대에서 환경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6년 건설부 7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이듬해 기술고시에 합격, 문화공보부에서 사무관으로 일하다 1987년 환경부 전신인 환경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폐수관리과장, 폐기물정책과장, 수질보전국장, 환경정책국장 등 환경부내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2005년에는 국립환경과학원장을, 2008년에는 기상청 차장을 맡았다. 2009년 3월 기상청 차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한양대 환경공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일하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환경부 장관으로 4년 만에 공직에 복귀했다. 박근혜 정부 최장수 장관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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