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시위의 자유 vs 행복추구권 ‘충돌’…이대로 괜찮나

[집시법 갈등 고조]②
정치권, 권력자 보호 위한 개정안 봇물
국민 전체 아우를 법 개정 필여
소음 규제 강화는 당장 가능
  • 등록 2022-06-08 오전 5:10:00

    수정 2022-06-08 오전 5:10:00

[양산=이데일리 이소현 조민정 김윤정 이수빈 기자] “문재인 개XX, 양아치 XX야!”

지난 3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욕설 집회’는 여전했다. 집회 차량의 확성기 소리는 약 300m 떨어진 마을회관까지 울려 퍼졌다. 경찰은 사저 앞 집회에 첫 ‘금지’ 통고를 했지만, 앞서 허가받은 보수 단체와 신고가 필요 없는 보수 유튜버 수십여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달 10일부터 24시간 내내 숙박하며 1인 시위 중인 최모(65)씨와 유튜버 등이 사저를 향해 계속 욕설을 퍼붓자 경찰이 제지에 나섰고 이에 반발해 항의하는 통에 현장은 난장판이 됐다.

50년을 평산마을에서 살아온 70대 주민 A씨는 “주말엔 검정 풍선에 상여까지 들고 온다”며 “조용한 마을이었는데 소란해져 못살겠다”고 토로했다. 평산마을 주민 55명은 ‘동네 집회 금지’ 내용의 진정서를 경찰서에 제출했고, 주민 10명은 극한 소음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3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문 전 대통령 사저 앞에 집회차량이 확성기를 통해 방송하고 있으며, 건너편에서는 한달째 ‘24시간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조민정 기자)
‘집회·시위의 자유’ 필요하지만…애꿎은 시민 피해는

집회·시위로 인한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심화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선 서울 용산 청사 앞, 양산 평산마을의 문 전 대통령 사저 앞은 이전에 없던 집회·시위로 들끓으면서 새로운 문제지역이 됐다.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누리려는 이들 탓에, 주민들은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 피해를 입고 있는 형국이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존중하는 문화와 더불어 집회·시위에 따른 제3자의 피해를 고려하는 시민 문화가 절실하단 지적 속에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손봐야 한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용산구 인근 오피스텔, 아파트 등 ‘7개 단지 협의회’ 5000여 가구는 최근 용산구청 등에 “주거 지역 부근 집회를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냈다. 윤 대통령 취임일인 지난달 10일부터 31일까지만 용산경찰서 관할 집회가 66건을 기록하는 등 대통령 집무실 인근 집회로 일상생활에 피해가 커지자 집단행동에 나선 셈이다. 용산서 관계자는 “집회가 늘면서 국민신문고 채널로 주민들의 항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용산·양산의 집회·시위 급증에 정치권도 나섰다. 국민의힘에선 대통령 집무실 반경 100m 이내를 집회·시위 금지구역으로 명시하는 내용의 법안을 냈다. 윤 대통령이 공동주택인 아크로비스타에서 출퇴근하는 점도 감안, 공동주택 앞 옥외집회·시위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안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전직 대통령 사저를 집회·시위 금지 장소로 포함하는 법안이 나왔다. 집회·시위상의 명예훼손·모욕 행위, 신체·정신에 장애 유발할 정도의 소음 발생하는 행위 등을 처벌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제출했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 앞을 집회 금지구역으로 포함하는 법안 외엔, 인근 주민들을 위한 배려라기보다 전·현직 대통령을 위한 ‘불필요’한 법안들이란 평가도 많다. 공동주택 앞은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 조치로 충분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이미 ‘당했던’ 사저 앞 집회·시위를 이제와서 막겠단 건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란 것이다. 집회·시위상의 모욕 행위 등은 현행법상 명예훼손·모욕죄로도 처벌할 수 있다. 권력자들을 보호하려는 이 법안들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국민 모두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집시법 개정 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최근 시민들이 가장 큰 불편을 호소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도로점거 시위, 365일 상시 집회가 벌어지는 국회와 관공서, 대기업 본사 앞의 시위 등에 따른 시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집회·시위 양상이 다양해지며 제3자의 권익이 심각한 침해를 받고 있어 관련법 개정이 필요해졌다”며 “주거지 인근 확성기 사용 여부, 도로 행진 허용 여부 등을 세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3일 남대문~서울시의회 도보 행진 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횡단보도에서 멈춰서서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윤정 기자)
모두 위한 법 개정 논의해야…엄정한 법 집행도 필요

현행 집시법의 엄정한 집행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각종 시민사회단체의 집회·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불법·탈법·꼼수 행태가 커졌다는 인식에서다.

사실 경찰은 표현의 자유와 소음의 경계에서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실정이다. 집시법에 근거해 현장에서 직권으로 소음을 측정하고 있지만, 이를 역이용하는데 도가 튼 ‘시위꾼’들은 기준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고 있다. 경찰은 10분간 발행한 소음의 평균값을 측정하는 ‘등가소음도’와 순간소음이라도 85데시벨을 넘으면 규제하는 ‘최고소음도’ 규정을 활용하지만, 적발은 드물다. 경찰청 ‘연도별 소음 측정 현황’에 따르면 2020년 1만9544회의 소음 측정 결과 분리조치는 1회에 그쳤으며, 유지·중지는 1267회(6.5%), 기준 이하는 1만8276회(93.5%)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소음 기준을 측정해봐도 넘지 않아서 딱히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또 기자회견을 빙자하거나 걷기운동을 가장한 ‘꼼수’ 집회도 골칫거리로 꼽힌다.

박찬걸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여러 집회로 시민 불편이 커서 충분히 공권력을 동원해 제재할 법한데도 경찰의 대처는 소극적”이라며 “국민적 저항과 피로도가 계속 높아지는 단계에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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