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기관 뭐했나" 독립적 왕실위 질책에…당국 바뀌었다

왕실위원회 보고서로 금융당국 비판
"감독당국, 적발 실패…벌금도 적다"
알고리즘으로 시장조작 행위 적발 시스템 개발
국내선 문제였던 CFD 안전장치 만들고…홍보도 금지
  • 등록 2023-11-27 오전 6:00:00

    수정 2023-11-27 오전 6:00:00

[호주(시드니·멜버른·브리즈번)=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호주의 상징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증권가가 있는 브릿지 스트리트로 들어가는 길은 일방통행 도로다. 바로 길 건너에 보이는 목적지를 두고도 10분 거리를 돌아가야 하는 코스다. 불법유턴에 대한 유혹이 크지만 , 그런 시도는 없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벌금이 480호주달러(약 41만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국내 불법유턴 벌금이 많아야 7만~8만원 수준인 것과 비교되는 금액이다. 호주에서 만난 시장 한 시장관계자는 “준법의식은 강한 처벌에서 시작한다는 원칙 때문”이라며 “주식 시장에도 이 같은 원칙이 자리를 잡으며 주가조작 사태에 대한 우려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호주의 자본시장에 이 원칙이 처음부터 제대로 뿌리를 내렸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교란 행위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다. 호주의 자본시장에서 주가조작에 대한 처벌이 강화한 건 호주 왕실위원회의 보고서 덕분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시장교란 행위와 허술한 규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가 호주의 자본시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평가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주가조작 처벌 강화 배경엔 ‘왕실위원회 보고서

호주증권투자위원회(ASIC)가 주가조작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계기는 지난 2019년 호주 왕실위원회의 질책이다. 당시 왕실위원회는 금융회사들이 시장 교란 행위를 일삼는데도 규제당국이 법적인 처벌을 거의 하지 않는 등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왕실위원회는 금융권 전반에 퍼진 관행을 지적했다. 금융상품 판매와 수익성만 목표로 한 나머지 기업의 이익 추구가 최우선이고 고객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뒷전이라는 질책이 보고서에 담겼다.

관리감독 기관인 ASIC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금융기관이 내부적으로 위법행위를 감지하지 못해 감독 당국에 제대로 보고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지만, 검사 기관이 위법행위를 적발하는 데 실패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특히 왕실위원회는 ASIC가 법원에 요청한 벌금이 터무니없이 적었다고도 꼬집었다.

왕실위원회 지적 후 시장교란 감시시스템 강화·CFD 규제도

보고서 발간 이후 호주 금융시장은 발칵 뒤집혔고 당국은 서둘러 제도 개선과 시스템 구축에 나서기 시작했다. 왕실위원회의 질책에 ASIC는 내부자 거래를 감시하고 시장 조작을 보다 효과적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 아르테미스’를 마련했고 알고리즘을 통해 의심스러운 거래 패턴이나 위법 행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프로젝트 아르테미스로 ASIC는 내부자거래 등 시장조작 행위를 보다 효과적으로 잡아낼 수 있도록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호주 공공서비스(APS) 분야에서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 상을 받기도 했다.

사라 코트 ASIC 부의장은 “투자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시장교란 행위를 해결해 시장을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내부자거래와 시장조작을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ASIC는 올해 우선 과제로 ‘소셜미디어를 사용한 펌프 앤 덤프 근절(가격을 끌어올린 후 내다파는 전략)’을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라덕연 사태로 문제가 된 차액결제거래(CFD) 서비스에 대해서도 ASIC는 선제적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투자자가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도 매수와 매도 차익만 결제하는 장외파생상품이라 위험성이 큰 만큼 호주는 지난 2021년 CFD 거래 규칙을 도입했다. 레버리지 비율을 제한하고 CFD 거래를 일반 투자자들에게 홍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ASIC에 따르면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한 지 6개월 만에 개인투자자 순손실을 이전 대비 91% 줄였다.

“정치적 이해관계 엮이면 제도 개선 쉽지 않아”

ASIC 등 호주의 금융 당국이 주가조작 처벌 등 제도 개선과 시스템 도입에 발 빠르게 나설 수 있었던 이유로 관계자들은 왕실위원회라는 독립된 견제장치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하고 있다. 호주 연방 차원에서 출범하는 왕실위원회는 사법부나 행정부와는 독립적으로 공공의 이익과 관련한 사안이 발생하면 실태 조사에 나설 수 있는 기구다. 공청회를 열고 증인을 소환하며 증거를 요청할 권한이 있다. 왕실위원회가 정부 안팎의 전문가들과 협의해 지적한 사안은 호주 의회로 올라간다.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갖춘 왕실위원회의 지적에 금융 당국이 빠르고 효과적인 개선책을 내놓았다는 얘기다. 존 워커 호주·한국 경제협력위원회(AKBC) 회장은 “정치인들이 문제 제기를 하면 사건의 실체보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진 공격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며 “문제제기가 올바르려면 왕실위원회처럼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집단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주 대표 금융회사인 맥쿼리의 한국법인 회장을 지낸 워커 회장은 국내 시장에 대해 “한국에선 특정 정당이 유리한 쪽으로 자본시장의 문제를 지적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정치적 의도로만 지적하면 어떤 것도 개선하지 못한다”고도 조언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존 워커 AKBC 회장.(사진=김보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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