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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정모(29)씨는 지난 주말 부산에 사는 어머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취업을 못해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어서다. 8년 전인 2009년.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 원하던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무엇이든 다 해낼 것 같았다. 그러나 높기만 한 취업 문턱은 정씨의 패기와 자신감을 조금씩 집어 삼켰다.
정씨는 추석 연휴 동안 일한 지 5개월 된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도맡아 하고 있다. 편의점 사장님은 연휴에 고생한다며 추석 전날과 추석 당일 시급을 평소보다 2000원 더 쳐주기로 했다.
정씨는 “취업 여부를 묻는 친척들과 애써 괜찮은 척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고향에 가느니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버는 게 더 났다”며 “취업에 성공한 뒤에 당당하게 고향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추석 연휴 귀향 대신 아르바이트 나선 취준생
단군 이래 가장 긴 연휴라는 10일짜리 추석 연휴. 그러나 취업준비생들에겐 남의 일이다. 얼굴을 맞댈 친척들이 던질 걱정과 잔소리를 듣느니 고시텔에서 공부삼매경에 빠지는 게 되레 속 편하다. 일부는 추석연휴 구인난에 허덕이는 편의점 등에서 ‘고액’ 아르바이트로 연휴를 보람차게(?) 보내기도 한다.
해커스영어 사이트가 취업 준비생 756명을 대상으로 ‘취업준비와 병행하고 있는 것’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7.94%가 ‘알바와 병행한다’고 답했다. 이어 ‘학교와 병행한다(26.59%)’ ‘알바·학교와 병행한다(10.32%)’가 뒤를 이었다. 반면 ‘취업 준비에만 집중한다’는 응답자는 3.97%에 그쳤다. 취업준비생 10명 중 7명이 취업 준비와 알바를 같이하는 셈이다.
해커스 관계자는 “취업 준비 기간과 연령대가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아르바이트와 같은 경제 활동에 뛰어든 취업 준비생들이 적지 않다”며 “취업난이 장기화로 취업 준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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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추석 알바 채용관’ 메뉴를 별도로 만들어 운영 중인 아르바이트 소개 포털사이트에는 연휴기간동안 일할 사람을 찾는 단기 알바 채용공고가 4000여건이나 쏟아졌다. 추석 연휴 동안 알바를 하겠다는 구직 게시물도 수 백건에 달했다.
추석연휴 동안 반려견 도우미 아르바이트 중인 대학생 김모(27·여)씨는 “평소 강아지를 좋아하는데다 명절 때 하는 알바 시급이 8000원~1만원으로 평소보다 높다”이라며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용돈을 버는 게 나을 거 같아 나왔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양모(30)씨는 “연휴 동안 인근 대형마트에서 일당 6만원짜리 주차장 아르바이트 중”이라며 “명절에 쉬고 싶기도 하지만 사흘만 해도 지금 사는 원룸 월세(40만원)의 반 가까운 돈을 벌 수 있어 망설이지 않았다”고 답했다.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거나 친척들의 잔소리를 피해 알바를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 상반기 공채 때 대기업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남모(28)씨는 “명절에 친척들의 잔소리를 들을 생각하니 차라리 알바를 하는 게 났다”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명절 스트레스가 뭔지 몰랐는데 이제는 그 기분이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 이어지면서 가족 친지가 모이는 명절을 기피하는 청년들이 알바를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취업난 해소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