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군대 내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이유

  • 등록 2021-07-12 오전 5:50:00

    수정 2021-07-12 오전 9:20:11

[최영진 중앙대 국제정치학과 교수]공군 이중사 성폭행 은폐·무마 사건으로 국방부가 쑥대밭이 된 상태에서 또다시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국방부 직속부대 지휘관(준장)이 함께 근무하는 여군무원을 성추행한 것이다. 이때는 국방부가 정한 성폭력 피해 특별신고기간(6월 3일~30일)이었다. 군내 성폭력 예방을 위해 ‘민관군 합동위원회’가 출범한지 나흘 만의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일까. 언론에서는 전군지휘관회의가 북핵 때문이 아니고 성추행 때문에 열렸다고 비아냥거렸다. 야당에서는 서욱 국방부 장관이 책임져야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방부 장관이 물러나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성폭력 자체는 개인의 잘못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잘못이 발현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구조와 문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폭력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갖는 것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관련자들에 대해 징계 수준을 높이거나 성인지 교육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대처해왔다. 이러한 노력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본질을 건들지 못하기 때문에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인정하듯이 성폭력의 본질은 ‘권력’이다. 압도적인 권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성폭력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군대는 지휘관이 부하들의 승진순서를 결정하는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부사관과 같은 초급간부들이 그들이 염원하는 장기복무자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직속 상관이나 부대 지휘관의 평가에 목을 매야 하는 형편이다. 이들에게 지휘관은 ‘제왕적 존재’나 다름없다.

영관급 장교들도 마찬가지다. 한 단계 더 진급하기 위해서는 지휘관에게 잘 보여야 한다. 능력도 뛰어나야 하겠지만, 그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진급은 어렵다. ‘시키는 일 잘하고 순종적인’ 사람들만 살아남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지휘관이 과도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절대적 권력 구조에서는 ‘을’을 대상으로 하는 ‘갑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휘관의 절대적 인사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휘관의 인사권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군대에서 지휘관의 명령은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하들을 데리고 생활하는 지휘관만큼 그들을 잘 평가할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타당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전투지휘에 필요한 명령(군령)과 진급인사(군정)은 분리될 수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목숨을 건 전투상황일수록 지휘관의 명령은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아무 일이나 시킨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장병들은 2000년대 출생한 Z세대다. ‘까라면 까’라는 식의 명령으로 이들을 지휘할 수 없다. 납득할 수 있는 명령이 내려질 때 헌신적인 책임완수가 가능하다.

대학에서 교수의 성폭력이 거의 사라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절대권력을 행사하던 교수들에게 권력은 거의 사라졌다. 학점의 세부 점수가 공개되고 있다. 학생들은 강의평가나 그들만의 게시판을 통해 문제적 교수를 고발한다. 교수의 절대권력이 사라지자 성추행 사건도 현격히 줄어들었다.

이제 군도 달라져야 한다. 지휘관들이 행사했던 절대권력(인사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지휘관보다 동료나 부하들이 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다면평가가 공정성과 객관성 면에서 더 낫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지휘관의 인사권을 빼앗는다고 염려할 것 없다. 인사권에 의지한 초라한 절대권력보다 합리성과 전문성에 기초한 권위가 훨씬 효과적이다. 지휘관들이 부하들의 진급순위를 결정하는 오랜 관행과 결별할 때가 되었다. 군이 정말 성폭력을 근절하고자 한다면 인사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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