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노믹스 1년)②낮은 데로 임하소서

구조조정..위로부터 고통분담
"서민 일자리 대책에 MB노믹스 명운이 걸렸다"
  • 등록 2009-02-22 오전 9:01:00

    수정 2009-02-22 오후 12:19:54

[이데일리 오상용기자] 2008년 10월24일은 금융시장 참여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주가는 연초대비 딱 반으로 부러지며 900대로 주저앉았고 환율은 1500원을 향해 뜀박질했다. 붕괴와 패닉 공포라는 단어가 여의도 증권가를 휘저었고 금융시장의 시계바늘은 마치 10년전으로 돌아간 듯 했다. MB정부 출범 8개월을 하루 앞뒀던 금융시장 풍경은 그렇게 살벌했다.

4개월이 흘러 MB정부도 출범 첫 돌을 눈앞에 두고 있다. `747`의 자신감에서 벗어나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MB노믹스`도 성숙기로 접어들 나이다. 주변 여건은 딱히 나아진 게 없다. 글로벌 경기의 가파른 추락과 급감하는 수출, 움츠러든 내수, 출렁이는 금융시장은 또다른 위기설을 불러오고 있고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와 직장을 구하지 못한 구직자의 시름은 깊어가고 있다.

험난했던 1년을 지나오며 MB노믹스의 사제들은 무엇을 배웠고 얼마나 성숙해졌는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닫혔던 귀를 열어 난국을 타개할 준비가 됐는가. 전문가들은 "답이 잘 보이지 않을수록 머리 숙여 범부(凡夫)의 지혜를 구하고 국민들의 도움을 구하는 게 먼저"라고 조언한다. 경제위기로 국민들의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지금, 낮은 데로 임할수록 정부 정책의 진정성도 회복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 구조조정..위로부터 고통분담

출범 1년 MB정부의 화두는 구조조정이다. 잠재 성장능력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경제의 곪은 부위를 얼마나 과감하고 신속하게 도려내느냐가 관건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업은 퇴출될 것이고 직장에서 밀려나는 실직자도 늘어날 게 분명하다.

구조조정은 고통스런 과정이다. 그래서 정확한 진단과 적합한 처방 못지 않게 고통을 나눠지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성공의 열쇠다. 10년전 환란 때도 사회대타협에 기반한 고통분담이 위기극복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10년전의 경험은 국민들에게 `서민들의 고통전담과 부유층의 성과독식`이라는 이분법적이면서도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위로부터의 고통분담이 없었다는 인식 때문이다. 위에서 짐을 나눠지려 하지 않으니 고통은 밑으로만 전가됐다. `2009년 위기탈출`의 방식도 10년전의 판박이가 되지 않을까 국민들은 역정을 내고 있다. 그래서 `짐을 나눠지겠다`는 결심에 앞서 도대체 나라꼴이 왜 이렇게 되었냐며 분풀이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솔선수범이 해법이다. 구조조정과 고통분담은 사회지도층, 정부 고위층, 기업 오너와 경영진이 먼저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명분을 쌓고 설득력도 얻는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조금 다르게 전개되려 한다. "공기업 신입사원의 초임연봉은 최고 30% 깎겠다는 마당에 공기업 낙하산 인사들의 월급봉투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사회 초년생의 월급은 30% 깎겠다는 정부가 장·차관 연봉은 10% 반납하겠다는 식이라면 조금 억울하지 않은가"라는 국책은행 관계자의 넋두리가 시기어린 불평만은 아니다.

◇ 위기는 누구를 위한 기회인가

경제위기는 한바탕 빚잔치다. 한쪽의 노른자위 자산이 반값에 처분되고 다른 한쪽의 과실담기가 끝나야 금융시장은 비로소 새로운 부(富)를 부풀리기 위해 열심히 빚을 놓는다. IMF위기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자산이 땡처리 되는 것을 지켜봤고 몇년 후 누가 돈을 먹고 튀었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그래서 지금의 전 지구적 위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대로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발등의 불도 꺼야 하지만 산업기반을 지키면서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서둘러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은 옳다.

분명 다가올 에너지위기에 대비해 신재생에너지산업은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하고 미국과 유럽 선진국이 글로벌스탠다드로 들이대기 시작한 `녹색 잣대`에도 보조를 맞춰야 뒤통수를 맞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녹색성장이라는 정부 정책의 방향은 타당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제시하는 미래 청사진이 국민들에게 피부로 와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이 고달파서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이 줄고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마음에 여유가 없다.

나라밖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가장의 실직으로, 가족의 해체로, 빈곤층의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차단하는 게 먼저다. 현재의 생존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성장을 논할 수는 없다. 글로벌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자는 대통령의 구호가 `국민이 처한 위기의 해결`과는 동떨어져 보일 때 민심은 돌아서고 사회는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

◇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익명을 요구한 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그런 측면에서 지금이야말로 (정부정책이) 낮은 데로 임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는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MB정부의 경제정책이 계층간 갈등의 골을 키운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위기의 쓰나미가 밀려오는 상황에서 정부는 정쟁을 부추기는 편가르기식 정책으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고, 시시각각 옥죄어 오는 금융위기를 때로는 극복의 대상이 아닌 여론무마용 방패로 활용하기도 했다는 지적이다.

다만 "올해 경제운용방향을 일자리 창출·유지와 사회적 약자인 빈곤층 지원에 맞춘 것은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올 한해 서민을 위한 일자리대책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짜여지고 충실히 집행되느냐에 따라 MB노믹스의 명운이 갈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세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정책 소비자들의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민감한 법안을 밀어붙일 때마다 대통령과 경제부처 수장은 `이렇게 하라고 국민이 뽑아준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일부 지지층이 국민을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대형 유통업체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경제한파 속에 국민들의 마음까지 얼어붙지 않도록 추경을 통해 더 많은 돈을 풀고 중소기업의 딱한 사정도 해결해주기로 했다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만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이 풀린다 하니 벌써부터 `눈먼 돈`을 먹겠다고 달려드는 이가 하나 둘 나타나는 게 걱정이다. 일부 공무원은 빈곤층에 돌아가야 할 정책자금으로 수십억원대 잇속을 채웠다. 외환위기 당시 처럼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투입된 혈세를 유용하거나 중소기업 지원금을 빼돌리는 이들이 다시 등장할 지 모른다. 시위대와 네티즌에게 추상같았던 MB식 법치와 준엄한 법의 잣대가 제대로 날을 세워야 할 때가 비로소 온 것이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사실은 인형?
  • 사람? 다가가니
  • "폐 끼쳐 죄송"
  • '아따, 고놈들 힘 좋네'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