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사냥꾼` 日최고 갑부로..손정의 소프트뱅크사장

  • 등록 2007-10-13 오전 9:49:18

    수정 2007-10-13 오전 9:49:18

[조선일보 제공] 나라마다 ‘대표 부자’가 있다. 한국에 이건희 삼성 회장, 미국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있다면, 지금 일본을 대표하는 부자는 손정의(孫正義·50·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사장이다.

경제잡지 ‘포브스’는 지난 5월 발표한 세계의 부자 랭킹에서 손 사장을 일본 1위에 올렸다. 재산 평가액은 58억달러(약 5조4000억원). 제조업의 나라 일본에서 디지털 정보혁명의 풍운아가 최고 부자로 등극했다. 손 사장의 성공담은 우리 시대 ‘부(富)의 권력이동’을 상징적으로 웅변해준다.

보수적인 일본 재계에서 손 사장은 이단아요, 질서 파괴자였다. 그는 기업 사냥을 백안시(視)하는 일본에서 질풍노도 같은 M&A(인수합병)로 사업영역을 확장해왔고, 미국식 경영수법과 직설 화법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그에겐 ‘호언장담형(型)’ 에피소드가 유난히 많은데, 초년 시절 일화로 유명한 것이 ‘귤 궤짝 연설’이다.

1981년 9월. 도쿄 이치가야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소프트뱅크가 탄생했다. 직원이라곤 아르바이트생 2명뿐. 회사 문을 열던 날, 24세의 손 사장은 ‘직원 조회’를 소집했다. 2명을 세워놓고 연단 대신 귤 궤짝 위에 올라가 일장 연설을 쏟아냈다.

“5년 안에 매출 100억엔을 올리고, 수만 명을 거느리는 거대기업이 된다.”

당장 먹고 살 형편이 막막한 처지에 거대기업 운운했으니 상상만 해도 과대망상 같은 풍경이었을 것이다. 기가 질린 직원 2명은 곧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다. 아르바이트 사원마저 등을 돌렸던 소프트뱅크는 세계 800여개 기업, 직원 1만여명을 거느리는 거대한 디지털 제국을 구축했다.

맨손에서 거부(巨富)를 축적한 사람은 많다. 손 사장이 달랐던 것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성공을 확신하고, 이기는 게임을 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어법(語法)대로라면 ‘승률(勝率) 70%의 게임’, 성공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사한 것이다. 승률 70%의 비결은 비전과 통찰력이다. 그는 정보혁명의 숨소리가 까마득했을 26년 전에 이미 거대한 파도를 감지하고, 파급 경로 곳곳에다 남보다 앞서 투자를 해놓았다. 1996년 설립 1년도 채 안된 야후의 가치를 확신하고 35% 지분을 불과 100억엔(지금 환율로 환산하면 약 790억원)에 사들인 일도 있다.

아무 곳이나 투자한 것이 아니다. 승률 70%의 진짜 비밀은 ‘인프라(기반시설) 전략’에 있다. 그는 디지털 세계의 인프라 공급자가 되겠다는 전략을 취해왔다. 디지털 정보공간에서 누구나 이용해야 하는 인프라를 장악함으로써 정보혁명의 큰 흐름 전체를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로·철도·항만이 현실 세계의 인프라라면, 디지털 공간의 인프라는 정보 콘텐츠가 모이고 흘러다니는 기반을 말한다. 즉 손 사장은 인터넷·통신 네트워크 같은 정보의 ‘도로’나, 포털·미디어 같은 정보의 ‘입구(入口)’를 확보해 부의 원천을 장악하려 한다.

인프라를 쥔 사람은 그 산업이 성장하는 한 성공이 보장된다. 자동차 회사 몇 개가 망해도 고속도로 사업자는 통행료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원리다. 이것을 손사장은 ‘중립성의 법칙’이라 부른다. 불확실한 개별 요인에 좌우되지 않고 큰 흐름을 타는 곳, 즉 인프라에 투자함으로써 성공 확률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손 사장의 기업 사냥은 6개 분야를 축으로 한 디지털 인프라 기업에 집중돼왔다. 야후(인터넷 인프라)에 투자하고, 컴덱스(전시회 인프라)며 야후BB(브로드밴드 인프라), 보다폰 재팬(무선통신 인프라) 등을 사들여 디지털 세계의 곳곳에 포진하는 거대한 인프라 기업군(群)을 구축했다.

손 사장은 부분적·국지적 포지션보다 전체적 역할을 선호한다. 그는 디지털 혁명 전체를 조감하며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규정한다. 그의 야심의 크기는 다음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나는 일개 배우보다 디지털 혁명 전체를 기획하는 연출가가 되고 싶다. 빌 게이츠나 루퍼트 머독(뉴스 코퍼레이션 회장)이 아무리 훌륭한 수퍼스타라 해도 그들이 춤추는 무대는 내 것이다.”(전기 ‘손정의 바람이 분다’)

인터넷 버블이 한창이던 시절, 한 인터뷰에선 이런 말도 했다.

“소프트뱅크는 플레이어(선수)가 되지 않는다. 일류 선수를 모아 게임을 기획할 뿐이다.”(1998년 6월)

그랬던 손 사장이 이번 인터뷰에선 연출가(인프라 제공자)뿐 아니라 플레이어(콘텐츠 생산자)도 되겠다며 야심의 폭을 한층 넓혔다. 비유하자면, 축구장을 운영하면서 선수로도 뛰겠다는 것이다. 그는 인프라-플랫폼-콘텐츠로 수직계열화되는 ‘디지털 종합그룹’의 꿈을 꾸고 있었다.

손 사장은 도쿄 시오도메의 소프트뱅크 본사 접견실에서 노타이 셔츠 차림으로 기자를 맞아 주었다. 도쿄만(灣)의 아름다운 전망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방이었다. 그는 디지털 혁명이 가져올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선도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했다.

-2002년 서울에서 인터뷰를 한 이후 5년 만에 뵙습니다. 5년 전에는 인터넷이 그룹의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주력이 통신으로 바뀐 느낌이 듭니다.

“소프트뱅크 창립 때부터 나의 비즈니스 주제는 한결같았습니다. 그것은 정보혁명의 리딩 컴퍼니(선도기업)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비전 위에서 처음엔 소프트웨어 유통사업을 했고, 인터넷 브로드밴드 휴대전화로 사업을 계속 확장해왔으나 사실은 전부 같은 것입니다. 즉 정보혁명을 선도하겠다는 기본전략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휴대전화도 앞으로는 ‘인터넷 머신’이 될 것입니다. 즉 인터넷에 들어가는 입구가 PC이기도 하고 휴대전화이기도 한 것입니다.”

―정보혁명의 인프라를 장악한다는 전략인가요?

“그렇습니다. PC든, 휴대전화든, TV든 간에, 이것을 다 망라하는 디지털 인프라 회사가 되려 합니다. 그 인프라의 기반 위에 인터넷 포털 같은 플랫폼도 제공하고, 그 위를 떠다니는 콘텐츠까지 풀세트로 통합해서 제공할 것입니다. 즉 정보혁명에 관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려 합니다.”

―과거엔 플레이어(콘텐츠 생산)보다는 연출자(인프라 사업)가 되겠다고 했는데 전략이 바뀌었나요?

“둘 다 하겠다는 겁니다. 다만 우선순위로 치면 인프라가 선(先)이지요. 콘텐츠란 수많은 플레이어가 활약하는 무대입니다. 성공해도 부분적인 성공이요, 실패해도 나중에 만회가 가능합니다. 반면 인프라는 3, 4개 회사가 완전히 지배하는 분야입니다. 선점당하면 후발자의 추격이 힘들지요. 그래서 먼저 인프라의 넘버원 포지션을 취하겠다는 것을 최우선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 위에 플랫폼과 콘텐츠를 충실하게 제공하려 합니다.”

―글로벌하게 본다면 소프트뱅크의 최대 경쟁자는 누구입니까?

“역시 구글이죠. 구글이 지금은 플랫폼과 콘텐츠뿐이고 인프라는 없지만 앞으로는 휴대전화 같은 인프라도 할 것으로 봅니다.”

―손사장이 세운 인생 50년 계획에 따르면 지금 대승부를 할 시점인데, 무엇입니까?

“지난 8월이 저의 50세 생일이었습니다. 이제 50대로 접어 들었으니 벌여놓은 승부들을 완성하는 단계로 넘어가야지요. 1조엔, 2조엔 규모의 투자를 해서 큰 승부를 거는 것은 보다폰 매수로 대체로 일단락됐습니다. 이젠 브로드밴드와 모바일 인프라를 쥐고 있고, 콘텐츠도 갖고 있으니 이것을 확실히 발전시켜 넘버원 포지션을 갖는 것이 지금부터 10년간의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 지난해 초 보다폰(영국의 무선통신회사) 일본법인의 매수는 2조엔짜리 거래여서 리스크가 대단히 컸을 텐데요.

“일본의 M&A(인수·합병) 사상 최대였죠. 현금 매수로는 세계 두 번째라고 합니다. 실패했다면 그룹 전체가 망했을 정도로 리스크가 큰 딜이었죠. 내 비즈니스 인생에서 가장 큰 승부였습니다. 그러나 승부수를 던져 보다폰을 인수했기 때문에 우리는 모바일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 그런 거대한 딜이나 중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따집니까.

“중요 결정을 할 때 30년 뒤의 관점에서 판단합니다. 즉 30년 뒤 우리가 가야 할 큰 전략적인 비전을 설정해놓고,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이 사업이 필요한 도메인(사업영역)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이죠. 중장기 미래에서 거꾸로 역산(逆算)해오는 겁니다.”

― 기업 인수의 딜레마는 탐나는 기업일수록 값이 비싸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기업을 인수할 때 그 분야의 넘버원이나 넘버원이 될 수 있는 기업을 타깃으로 합니다. 이익을 많이 내는 회사가 오히려 매수하기 쉽습니다. 가격은 비싸지만 그 기업을 밑천 삼아 쉽게 자금 조달을 할 수 있으니까요. 보통 돈 못 버는 회사가 값이 싸니까 매수하기 쉽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거꾸로입니다. 돈 못 버는 회사는 문제점도 많고 트러블 요인도 많아 신경 쓸 일이 더 많습니다.”

― 손 사장은 평생을 승부사로 지내왔습니다. 큰 경영자가 되려면 두둑한 배짱이 필요한가요.

“나는 무모한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보다폰 재팬을 매수할 때도 3000회의 시뮬레이션을 한 끝에 사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계산을 아무리 해도 최후엔 판단이 필요하지만, 좋은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경영이란 긴 마라톤과도 같아 때로는 실패할 수 있지만 치명적인 실패를 해서는 안됩니다. 과학을 통해 실패할 확률을 최대한 줄여야죠.”

그는 손자병법을 자기류로 발전시킨 ‘신(新)손자병법’〈키워드〉을 만들어 경영 지침으로 삼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70% 이상 이길 자신이 있을 때 뛰어든다는 ‘승률 70% 법칙’을 제시하고 있다.

― 어떤 경영자는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합니다. 무엇이 성공과 실패를 가릅니까.

“옳은 이념을 추구하고, 옳은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손자병법에선 승리의 5대 조건으로 도(道·대의명분), 천(天·천시), 지(地·지리), 장(將·장수), 법(法·법제도)을 제시했지요. 이 다섯 가지 요건을 밸런스 있게 구현하지 않으면 좋은 경영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 손 사장은 미국의 대학 교육을 받았고, 미국식 경영모델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생각은 동양적이네요.

“테크놀로지는 미국식, 철학은 동양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왼쪽 뇌는 미국적 과학으로, 오른쪽 뇌는 동양적 철학으로 무장하려고 노력합니다.”

― 손 사장이 그리는 30년 뒤 정보혁명의 미래상은 무엇입니까.

“30년 뒤에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능력이 지금보다 약 100만배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PC, 휴대폰, TV 등을 통해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할 고도의 능력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21세기는 지식과 지혜의 부가가치가 부를 좌우하는 시대입니다.”

― 그때 소프트뱅크는 어떤 회사가 돼 있을까요.

“우리는 21세기의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리딩 컴퍼니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네트워크의 인프라와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 그리고 콘텐츠 그 자체도 갖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통합된 지식정보의 토털 서비스업체가 되는 것이죠. 그때가 되면 소프트뱅크그룹은 전 세계에 5000개 이상의 회사를 거느리고 있을 겁니다.”

― 그 동안 정보혁명의 리더십은 미국이 장악해왔습니다. 앞으로는 어떨까요.

“미국은 대단히 뛰어난 정보혁명의 진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도 성장을 계속할 겁니다. 하지만 역시 잠재력은 아시아, 특히 중국·인도 시장이 대단히 큽니다. 중국·인도 시장에서 성공하는 회사가 최후에는 세계 최고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선 다가올 정보혁명에선 아시아 회사와 아시아의 인물이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 장기적 관점에서 일본 경제는 어떻게 봅니까. 1980년대 ‘재팬 애즈 넘버원(일본이 최고)’의 시대처럼 강한 경제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좀처럼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관여하는 정보산업 분야에서 일본을 한번 더 쇄신하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일본이 과거 같은 조립형 제조업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것은 이제 무리입니다. 역시 하이테크 정보산업 분야에서 승부를 보아야 하는데, 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조금은 찬스가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 투자를 늘릴 생각은?

“한국에서 훌륭한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고 있고, 한국의 젊은 기업가들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국을 높게 평가합니다. 지금은 소규모 투자를 했지만, 더 늘려가고 싶습니다. 젊은 인터넷 계통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싶습니다.”

― 손 사장에게 부(富)란 무엇인가요.

“돈이란 단지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도구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것은 지겹지 않을까요. 내가 인생을 바치고 싶은 것은 정보혁명을 일으켜 사람들을 더욱 풍요롭고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21세기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차피 (지금 가진 돈도) 다 못쓰니까요(웃음). 사치를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골프라든지 와인 정도일 텐데, 써봤자 얼마나 쓰겠습니까.”

― 골프는 여전히 싱글 핸디를 유지합니까.

“제 공식 핸디캡은 2.8입니다. 비(飛)거리는 나이가 들어가니까 조금씩 줄어드는데, 한 250~260야드 정도 나갑니다.”

― 골프의 라이벌은?

“한국에서는 LG 구본무 회장이 호적수지요. 삼성의 제이 리(이재용 전무)도 참 잘 치더군요. 두 사람과는 날에 따라 이겼다 졌다 합니다.”

그는 골프광으로 유명한데, 도쿄 아자부(麻布)의 저택에는 그린 경사가 조절되고 비와 바람 같은 악천후도 재현할 수 있는 골프 연습장까지 갖추고 있다. 라이프 베스트 스코어를 묻자 “69타”라고 했다.

― 웬만한 중소기업 대표도 회장 타이틀을 다는 직함 인플레이션의 시대입니다. 소프트뱅크도 이제 대그룹이 됐는데 왜 아직 사장 직함을 갖고 계십니까.

“오퍼레이션(현업)의 현장에 좀더 있고 싶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현장 일을 할 겁니다. 지금도 사장 타이틀은 달았지만 사실은 부장이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디테일한 일을 하지요. 기술개발·영업에서 디자인·설계, 광고 선전까지 현장의 젊은 사원들과 같이 뒹굴며 일을 합니다.”

― 그런가요. 거대 전략, 큰 비전만 관여하는 줄 알았는데요.

“물론 벤처캐피털 투자 같은 것은 비전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맡기지만 브로드밴드와 통신만큼은 직접 관여하는데, 이 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을 정도입니다.”

― 현장 업무에 관여하려면 시간이 모자라지 않습니까.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일합니다. 저로선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취미 비슷한 것입니다. 귀가한 후에도 집에서 PC로 회사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업무를 봅니다. 바쁘지만 즐거우니까 문제 없습니다.”

― 저녁에는 외부와의 교제나 접대 자리가 많겠지요.

“아닙니다. 회사 내 직원들과의 미팅이 대부분입니다. 밖에서 식사 같은 것 잘 안 합니다.”

― 그래도 대외관계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 안 합니다. 담당 책임자는 있지만 소프트뱅크는 정부하고도 별다른 접촉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네마와시’(일본말로 사전 조율이라는 뜻)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업적과 달리 손 사장의 안색에선 누적된 피로가 느껴졌다. 감기 기운일까, 얕은 기침도 했다. 인터뷰를 끝낼 시간이 다가와 기자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 지금 빌딩은 셋방살이(임대)라면서요. 그렇게 이익을 내는데 왜 사옥을 사지 않습니까.

“빌딩 살 돈이 있다면 한 푼이라도 더 본업에 투자하고 싶군요.”


◆ 인생 50년 계획 = 손 사장이 10년 단위로 설계한 인생 플랜. ‘20대에 깃발을 올리고, 30대에 수천억엔 단위의 군(軍)자금을 마련하고, 40대에 큰 승부를 펼쳐, 50대에 완성한다’는 내용이다. UC버클리대 유학생이던 19세 때 결혼식 후 부인 앞에서 설파했다고 한다.

◆ 신(新)손자병법 = 손 사장이 기존의 ‘손자병법’에다 자신의 생각을 섞어 개작한 비즈니스전략 지침. ‘일류가 될 사업만 손대고, 공격·수비의 균형을 갖춰 시스템으로 승부한다’(一流攻守群) ‘전체를 조감하며 정보와 전략을 세우고 70%의 승률에서 싸운다’(頂情略七鬪) 등의 내용이다.

孫사장은 한국계 3세

손정의 사장은 한국계 3세다. 대구 출신의 조부가 일제 때 건너와 규슈(九州) 사가현에 터를 잡았다. 대부분의 재일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손 사장도 젊은 시절 정체성(正體性)의 혼란을 겪었다.

그가 한국계임을 처음 실감한 것은 유치원 시절이었다고 한다. 동네 아이가 “조센진(朝鮮人)”하며 돌을 던졌다. 머리에서 피가 흘렀지만 한국계라는 이유로 맞은 것이 더 충격이었다. 17세까지 그는 한국계임을 숨겼고, 야스모토 마사요시(安本正義)로 통했다.

그가 정체성을 되찾은 것은 미국 유학(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시절이었다. 이때부터 비로소 그는 일본 이름을 버리고 한국식 본명으로 돌아왔다. 본인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지만, 폐쇄적인 일본 사회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고초는 상당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의 치열한 승부사 기질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생도, 사업도, 한판의 승부로 보고 전술과 병법(兵法)을 강조한다. “비즈니스에서 1등이 아니면 패배나 똑같다”는 유별난 ‘일등주의’로도 유명하다.

34세 때 일본 국적(國籍)으로 바꾸었다. 이유는 “여권 수속이 불편했기 때문”(1997년 2월 ‘와이어드’ 인터뷰)이라고 했다. 그는 “내 본적은 인터넷”이라며 정신적 무(無)국적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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