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 물고기 남자가 헤엄치는 한국 사회

심사위원 리뷰
극단 몽중자각·김성진 연출 연극 '물고기 남자’
거대 자본주의로 인간성 상실된 현대사회 재현
  • 등록 2022-02-03 오전 6:00:00

    수정 2022-02-03 오전 6:00:00

(사진=극단 요지경, 몽중자각)
[김건표 대경대 교수] 20년이 넘어 대학로 해수면으로 돌아온 ‘물고기남자’(극단 요지경·몽중자각, 연출 김성진)는 ‘자본독식주의’로 오염된 죽음의 물속을 헤엄치며 삶의 아가미로 허우적대는 한국사회 전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강백 작가가 집필해 1999년 초연된 작품으로, 이후 김성진 연출에 의해 2022년 선돌극장(1월 12일~30일)에서 재탄생했다. 죽어야 살아갈 수 있는 기형적인 거대 자본주의로 인해 인간성이 상실된 현대사회를 사실적 언어로 타격한다.

대한민국은 고도성장으로 자본의 비계가 탄력적으로 비대해졌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물고기남자’가 헤엄치며 전진할 수 없는 얼음덩어리의 사회다.

(사진=극단 요지경, 몽중자각)
잔잔한 물길도 삼킬 것만 같은 양식장 내부가 무대 전경이다. 야전 침대 두 개가 보이고 이영복이란 인물이 전파가 잡히지 않는 라디오를 만지작대며 극은 시작된다. 소리는 분절된 채 두 남자가 살아가는 양식장과 통신이 두절되는 전파소리만 이따금씩 잡힐 뿐이다.

유람선 파라다이스호를 타고 남해 바다로 관광을 떠난 두 남자 김진만(박신후, 오문강 분)과 이영복(선욱현, 허동수, 전정욱 분). 이들은 물고기가 잘 자란다는 브로커(류지훈, 김관장, 명인호 분)의 꾀임에 넘어가 양식장을 사들였다. 사실 그 곳은 적조현상 때문에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는 곳으로, 인간과 물고기가 살아갈 수 없는 절망의 세상이다. 브로커는 적조로 망한 두 남자의 양식장을 적조가 없어지면 비싸게 되파는 수법으로 수 많은 인간을 현혹해왔다. 지본과 부(富)에서 소외된 인간들이 바라보는 파라다이스호의 희망은 절망으로 채워진다. 현실을 탈출하고 싶은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굴러가는 세상은 적조현상을 구경나온 인간(관광객)으로 늘 넘쳐난다.

그러나 파라다이스호를 타고 죽음의 적조현상을 구경나온 관광객들은 암초에 부딪혀 죽음에 빠져든다.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잠수부들은 생명을 살리는 것보단 유가족에게 시체를 찾아주는 대가로 받는 보상금에 더 목말라 있다. 극중 인물 김진만이 막대갈고리로 죽은 자를 건져내는 장면도 쓴 웃음이 터진다. 시체인 줄 알았지만, 남해바다 한가운데 바위에서 발견돼 목숨을 건진 한 남자(윤관우 분)가 “내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라고 묻자 김진만은 “부모를 빼면 아무도 없어. 죽어야 사는 세상”이라고 되받아친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남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죽어야 누군가는 살아갈 수 있는 절망감이었다. 결국 그는 수조에 물을 채우며 죽음을 택하고 그렇게 물고기 남자가 된다.

(사진=극단 요지경, 몽중자각)
수조 속 물고기 남자는 거대한 파라다이스호 자본의 유혹이다. 광고로 사람들을 유혹해 불러들이고, 유혹에 탑승해 파라다이스호를 찾은 관광객들은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다. 자본에 현혹돼 양식장을 사들이는 사람은 물론, 유람선이란 거대 자본의 유혹에 탑승한 인간들도 죽음을 맞는다는 은유의 표현이다. 죽음만이 도사리는 승자독식 자본주의 세상이다.

작가, 연출가로 주로 활동한 선욱현은 9년 만에 배우로 돌아와 이영복이란 인물을 재현하며 자본에 함몰되지 않는 인간의 체온을 묵직하게 그리고 채웠다.

그나마 물고기 남자가 돼버린 남자(윤관우 분)를 유일하게 인간의 체온과 연민으로 바라본 극중 인물 이영복이 있었기에 죽음의 도사림 속에서도 물고기 남자가 헤엄치며 살아가는 한국사회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김건표 대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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