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씻으며 쿠데타를 결의한 세검정[땅의 이름은]

종로구 신영동 세검정은 인조반정 주역이 자리에 모여
칼 씻으며 서로 의지 확인..광해군 폐위하고 인조 등극
구기터널로 이어진 은평구 불광동 독박골도 한몫한 장소
부처의 서광이 비친다는 불광동, 외세 침입도 막아낸 전설
  • 등록 2023-10-28 오전 5:00:00

    수정 2023-10-28 오전 5:00:00

[이데일리 전재욱 기가]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과 종로구 구기동을 잇는 구기터널. 예나 지금이나 터널을 지나면 금세 창의문(자하문)을 거쳐서 곧장 경복궁에 이른다. 터널 안쪽에 자리한 구기동 일대는 청와대 사람들이 직주근접으로 삼을 만큼 경복궁과 닿아 있다. 물론 불광동은 과거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북한산 자락을 넘어야 했지만, 수도 서북부에서 한양 도심으로 향하는 길목임에는 변함이 없다.

세검정.(사진=서울시)
터널을 경계로 들어선 동네를 들여다보면 구기동에 인접한 신영동에 세검정(洗劍亭)이 자리한다. 세검정은 1747년 조선 영조 23년에 세운 정자다. 북한산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쉬어가려고 지은 정자인데 1941년 불타버렸고, 지금 남은 정자는 1977년 복원한 것이다.

세검정 지명이 유래한 여러 설 가운데 인조반정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1623년 일어난 인조반정은 조선 역사상 손꼽히는 쿠데타다. 폭정을 일삼는 광해군을 폐위하고자 서인 세력이 주도했다. 이로써 능양군이 왕위를 이어받아 인조에 올랐다. 당시 반정 주역들이 대사를 결의하고자 칼(검)을 씻은(세) 자리가 지금의 세검정이라는 것이다.

인조반정 얘기에서 불광동이 빠질 수 없다. 쿠데타는 왕이 기거하는 경복궁 코앞(세검정)에서 결의가 이뤄질 만큼 결사적이었지만, 문인(서인)의 의지만으로는 이루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실력을 행사할 무인이 필요했다. 능양군(인조)이 손을 내민 이가 원두표 장군이었다. 이로써 원두표 장군은 인조반정에서 가담해 대사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원두표 장군이 기거하던 데가 지금의 불광동 독박골이었다고 한다.

쿠데타의 성패는 비밀 유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두표 장군이 반정에 가담하면서 자연히 독박골에 사람 왕래가 잦아지면서 이런 우려가 커졌다. 산속에 때아닌 사람이 북적거리자 주민들이 의아해한 것이다. 산에서 만난 나무꾼이 연유를 묻자, 원두표 장군은 “염병을 치료하려고 좋은 공기를 마시러 왔다”고 둘러댔다고 한다. 전염될 것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이후 근처를 피했다고 한다. 사람 눈을 피할 수 있었으니 기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독박골은 지금으로 치면 지하철 3호선 불광역에서 구기터널을 잇는 진흥로를 기준으로 좌우 북한산 기슭 일원을 일컫는다. 지명이 어쩌다 유래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산에 돌(독)이 많아서 아니면 지형이 항아리(독)를 닮아서라는 등 여럿이다. 불광동(佛光洞) 지명에서 독박골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불광동은 부처의 서광(불광)이 비치는 곳이라는 의미다. 북한산 자락은 여러 사찰이 들어서 불교색이 짙은 지역으로 꼽힌다. 그 한복판에 독박골이 자리한다.

독박골에 자리한 불광사는 사찰 유래를 설명하면서 이런 전설을 소개한다. ‘옛날 독박골은 나라에 올리는 항아리를 굽는 터였는데, 몽고군이 우리를 침입한 당시 독박골 항아리에 반사된 부처의 광명이 아군의 병력인줄 오해하고 퇴각했다.’ 외세로부터 침입을 막아낸 독박골은, 인조반정 당시는 내부로 향하는 칼날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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