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괴팍한, 하지만 특별한 일본의 오심 감독

  • 등록 2007-07-25 오후 4:43:31

    수정 2007-07-25 오후 5:00:08

[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2007 아시안컵에서 이비차 오심(66) 일본 대표팀 감독이 눈길을 끌고 있다. 언론과의 전쟁도 불사하는 거침없는 언변에 기행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우승후보 호주를 압도하면서 일본을 4강까지 끌어 올리는 지도력을 발휘하는 등 연일 화제를 만들고 있다.

오심 감독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4강전을 하루 앞둔 24일 가진 기자회견. AFP 로이터 등 외신들이 "오심 감독은 ‘찾아서 파괴하는 모드’로 언론과의 전쟁을 지속했다"고 할 만큼 화끈한 입심을 과시했다.

그는 특별한 악의가 없는 질문에도 “좋은 질문이 아니다” “유감스럽다” “반복되는 어리석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내가 여기 앉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독설을 날렸다.

“사우디와의 과거 기록이 선수들의 사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고 묻자 “역사를 이야기하지 말고 미래, 아니 당장 내일 경기를 말하는게 낫다”고 일축하고는. 결승에 대한 질문에는 “미래를 이야기할 때는 과거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되돌려 쳤다. 거의 기자들을 농락하는 수준이었다.

‘희생양을 찾으려 하지 말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나에게 사우디는 시스템도 없는 팀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가“ 는 답변이 나오는 기자회견을 두고 외신은 마치 ’고양이와 쥐의 싸움‘ 같다고도 했다.

▲베스트 셀러 ‘오심의 말, 말 말’
오심 감독의 이같은 거침없는 언사는 이번 대회에서 뿐만이 아니다. 독일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한 지코 전 감독으로부터 사령탑을 이어받은 그는 취임하면서부터 일본축구에 쓴 소리를 쏟아 냈다.

일본축구협회와 감독직 계약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일본축구는 착각을 하고 있다. 빨리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일본이 세계 챔피언이 되고 싶다면 나 말고 다른 감독을 찾아라”고 포문을 열었다. “지금의 일본은 할 수 있는 축구와 하려고 하는 축구 사이에 갭이 너무 크다. 월드컵 본선에 출장할 수 있었던 것 만으로 만족해야 한다”고도 했다.

단순히 일본 축구를 폄훼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브라질축구 따라잡기와 같이 너무 높은 이상을 내거는 오류를 범했으며 이제는 현실을 직시, ‘일본 특유의 정신력과 육체적인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일본식 축구를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하기 직전에는 “일본이 우승할 수 없는 이유를 1000개나 말할 수 있다.”며 “일본축구가 안고 있는 객관적인 상황을 보고 목표를 판단해 달라”고 말해 일본 축구계를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또 조별리그 1차전에서 카타르와 1-1로 비기자 “악착같이 뛰지 않았다”면서 “아마추어같은 녀석들”이라고 선수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일본 대표팀의 에이스 나카무라 순스케는 당시 “경기 직후 감독이 거의 미친 듯이 화를 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심 감독의 솔직 화끈한 화법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모양이다. 대표팀 감독 부임 후 그의 말을 담은 ‘오심의 말들’이라는 책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 있다.

▲기행의 연속
오심 감독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비단 말때문만도 아니다.
호주와의 8강전이 승부차기로 이어지자 오심 감독이 슬그머니 사라진 뒤 라커룸에서 초조해 하는 모습이 TV에 잡혔다. 퇴장당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으나 마음이 약해서 승부차기를 볼 수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오심 감독은 “승부차기를 싫어한다. 내 심장에 좋지 않다. 일본이 아니라 고향인 보스니아에서 죽고 싶다”고 밝혀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 감독이 스스로 벤치를 떠나는 장면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는 천연뎍스럽게 “내가 승부차기를 지켜보면 패하는 징크스가 있다”면서 “우리가 이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라커룸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껑충껑충 뛰었다”며 어린아이 같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돌출행동은 감독 부임 후 가진 첫 경기에서부터 나왔다. 지난해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가진 데뷔전에서 경기가 종료되기도 전에 통역에게 ‘화장실’이라는 말만 던지고 벤치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경기는 일본이 2-0으로 이겼지만 ‘기뻐하는 선수들이 돌아온 벤치에는 감독이 없었다’고 일본 언론은 당시 황당한 상황을 전했다. 이후 “선수들이 뛰지 않았다. 이 경기에서 얻은 교훈은 달리는 것”이라고 밝혀 경기 내용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행태였다.

▲최용수가 가장 좋아하는 지도자
그럼에도 불구, 선수단내에선 별다른 잡음이 나오지 않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독특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휘어잡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 J리그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시절 오심 감독과 함께 했던 최용수 FC 서울 코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심 감독은 선수들에게 최고의 전술가이자 아버지였고 친구였다”고 회상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믿을 수 있는 지도자, 오심 감독 같은 스승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가 그동안 조련한 일본 축구도 이번 대회에서 탄탄한 전력을 과시하고 있다. 오심 감독은 참가 16개국 중 가장 늦게 대표팀이 소집되는 등 훈련 시간이 부족하다며 불만을 터뜨렸지만 핌 베어벡 한국 감독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팀으로 일본을 꼽았을 정도였다. 베어벡 감독은 “일본은 경기를 풀어가고 진행하는 부분을 쉽게 해나간다.”며 “결승에 진출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순 없으나 현재까지는 일본이 가장 눈에 띈다”고 했다.

보스니아 출신의 오심 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유고를 8강에 진출시켜 세계축구계의 이목을 끌었고, 2003년 J리그에 입성, 지바를 2005년 리그컵 우승으로 이끈 지도력을 인정받아 일본 국가대표 사령탑까지 맡게 됐다. 오심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됐을 때 일본 언론은 “오심 감독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그리스, 오스트리아, 일본에서 그가 맡은 팀을 모두 정상에 올려 놓았다”며 큰 기대를 나타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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