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척' 남자들의 유치한 모습

아트선재센터 '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전
한국·터키·이집트 작가 25명 참여
내면 억압하는 남성 역차별 다뤄
설치·사진·영상·조각 등
  • 등록 2015-01-02 오전 6:41:20

    수정 2015-01-02 오전 6:41:20

이스라엘 작가 로미 아키투브의 ‘댄스’. 앙리 마티스의 ‘춤’을 패러디해 남성성의 본질을 묻고 있다(사진=아트선재센터).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기둥 전체가 스틸사진으로 도배돼 있다. 사진 속에는 고깔모자를 쓴 꼬마의 생일축하 파티, 여름 휴가지에서의 바비큐 식사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의 표정이 담겨 있다. 이동용 작가의 설치작품 ‘아버지’다. 사진 속 인물은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빠들이 찍은 가족사진이라는 점이다.

부자관계처럼 보이는 어른과 아이가 야트막한 언덕을 사륜구동 자동차로 계속 오르려 한다. 미끄러지기가 일쑤지만 마침내 굉음을 내며 언덕을 오른다. 차 안에 있던 어른과 아이는 환호하며 ‘사내들만의 웃음’을 주고받는다. 야엘 바타나의 영상 ‘언덕의 왕들’은 자동차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남자들의 세계를 담았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그만의 방: 한국과 중동의 남성성’ 전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다가 묘한 파토스를 느끼고 나올 수 있는 전시다. 김지현·박재영·이동용·오인환·홍영인 등 한국작가와 이스라엘의 야엘 바타나, 이집트의 칼레드 라마단, 터키의 아흐메트 오구트 등 중동작가 총 25명이 설치·미디어아트·사진·조각 등을 통해 ‘남성성’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출발은 ‘페미니즘’이다. 여성성은 페미니즘을 통해 여러 담론으로 발전하며 미술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에 반해 남성성은 ‘마초’ ‘가부장’ 등 단편적으로 거론했을 뿐 미술계에 생산적인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성적인 존재로서의 남성성보다는 사회·정치적인 존재로서의 남성성에 주목해보자는 기획이 만들어진 것. 덕분에 전시는 이른바 남성의 색슈얼리티를 다루는 작품보다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남성이 어떤 역할을 하고 고민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의 레바논관 작가였던 아크람 자타리는 1970년대 레바논의 한 사진관에서 사진을 수집했다. ‘게바트 광고사진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두 소년’이란 제목으로 전시한 작품에는 비키니 차림의 여배우의 실물크기 사진을 여러 방향에서 껴안아 보는 소년들이 담겨 있다. 공공장소에서 남녀의 신체접촉을 터부시하던 중동사회에서 소년들은 사진관의 여배우 사진을 통해서나마 이성적인 호기심을 해소한 것이다.

여성 앞에서는 강한 척하지만 정작 자신들끼리 있을 때는 유치한 남성 모습은 한국이나 중동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이란 이유로 오히려 차별을 당한다는 ‘자괴감’도 비슷하다. 그런 남성들이 군인이 되고 아버지가 돼 자신의 내면을 억압하는 모습 역시 교집합을 이룬다. 전시장을 나올 때 애잔한 파토스가 따라오는 이유다. 성인 3000원, 학생 2000원. 25일까지. 02-739-8945.

이동용 ‘아버지’. 작가는 지인들로부터 수집한 수백장의 가족사진으로 기둥을 만들어 카메라 렌즈 뒤에서 가족을 향해 셔터를 누른 아버지를 상상하도록 했다(사진=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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