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살인' 밝힌 檢 보완수사의 힘[기고]

  • 등록 2022-11-02 오전 5:30:00

    수정 2022-11-02 오전 5:30:00

조재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조재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필자는 2021년 7월 인천지검 제1차장검사로 부임해 이른바 ‘계곡 살인사건’을 수사 지휘했다. 이 사건은 경찰에서 송치된 지 6개월 넘게 방치돼 있었다. 부임하고 첫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부장검사와 주임검사 2명이 사건 해결에 의욕을 보였다. 들여다보니 피해자가 너무 비참하게 죽어간 사건이었다. 망자와 유족의 한을 어떻게든 풀어줘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스스로 계곡물에 뛰어들어 죽은 사건이고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서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실패를 예상하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나는 살인사건 수사로 사형확정 판결을 받아낸 몇 안 되는 검사였다. 2002년 양평 휴양림에서 일가족 4명을 살해하고도 범행을 부인하던 범인을 끈질기게 수사해 결국 사형 판결을 받아냈다. 당시 수사 노하우를 담은 파워포인트(PPT) 200장 분량의 강의안을 계곡 살인 사건 수사팀에 전달하고 숙지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주임검사 2명에게는 6개월 동안 다른 구속 사건을 맡기지 않았다. 이 사건에 전념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수사를 지휘하는 입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낮은 이 사건에 2개 검사실을, 그것도 장기간 투입한 것은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다른 검사들이 여타 사건 처리를 분담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수사를 시작하고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낭보가 날아들었다. 이은해와 조현수가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시도한 내용이 담긴 텔레그램이 복구된 것이다. 애초 경찰이 포렌식으로 발견하지 못한 증거를 검찰이 다시 포렌식해 발견했다. 두 사람이 2019년 2월께 양양 펜션에서 복어 독으로 피해자를 죽이려고 했는데 반응이 없자 서로 나눈 대화 내용이었다. 매우 신빙성 있는 증거였다. 용인 저수지에서 피해자를 죽이려고 했다는 증인도 확보됐다. 현장에 동행했던 지인이 이은해에게 피해자를 담그지(죽이지) 말도록 경고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범행을 감행했다.

피해자는 이은해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심리적으로 완전히 제압돼 있었다. 지인에게 돈을 빌렸고 갚지 못해 친분관계는 모두 단절됐다. 재산은 모두 이은해에게 넘어갔다. 피해자에게는 이은해만이 세상으로 열려 있는 창이었다. 이은해에게 매달려 살다가 가평 용소계곡에서 이은해의 지시로 계곡물에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우리가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가스라이팅을 인정했고, 이은해를 사이코패스로 진단했다. 이은해와 조현수는 첫 조사에서 증거를 보자 놀라서 도주했다. 수사팀은 대검을 설득해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해 진행하고 곧 둘을 검거했다. 검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법원은 지난달 27일 이은해에게 무기징역을, 조현수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하고 살인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2019년 6월30일 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3년이 더 지났지만 늦게나마 정의가 실현됐다. 이제는 망자의 한이 풀려 영면에 들기를 바란다. 유족도 고통스러운 불면의 밤이 그치길 바란다. 함께 분노하고 가슴 졸인 국민도 일상을 되찾길 바란다. 필자는 23년의 공직 생활을 이 사건으로 마무리했다. 이 사건은 검수완박 국면에서 검찰의 보완수사 권한을 지켜냈다. 내가 몸담은 검찰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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