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전성기' 맞은 74년 태극당…"온고지신 통했다"

서울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의 성공적인 변신
창업주 故 신창근씨의 장손, 신경철 전무이사가 3대째 경영
70~80대 노인부터 20대 젊은이들이 찾는 '뉴트로 성지'로 떠올라
  • 등록 2019-04-23 오전 5:30:00

    수정 2019-04-23 오전 5:30:00

태극당 매장에서 손님들이 빵을 사들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이윤화 기자)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이러다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일 매출이 0원인 적도 있었으니까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궈놓은 ‘태극당’을 포기할 수 없어 필요한 부분을 조금씩 손보고 바꾸다 보니 ‘빵지순례 성지’로 떠올랐네요.”

74년에 걸쳐 3대째 빵집 ‘태극당’을 운영하고 있는 신경철(34) 전무이사는 지난 2012년 유학길에 오르지 않고 서울 중구 장충동 본점에서 계산대 업무부터 도왔다. 장손으로서 태극당을 물려받기 위해 제과·제빵을 배우려했지만 그에 앞서 가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고 싶었다. 계산대에서 매일 매출을 확인하던 신 전무는 충격에 빠졌다. 내방객 대부분은 60대 이상 단골손님에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으면 매출이 ‘0원’인 날도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는 역사와 명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태극당은 창업주인 고(故) 신창근 씨가 1945년 광복 후 일본인이 운영하던 제과점 ‘미도리야’를 인수해 서울 중구 명동에 처음 문을 연 빵집이다. 당시 신 대표는 우리민족의 이상을 담고자 이름을 ‘태극당’이라고 지었고, 브랜드 로고도 무궁화로 만들만큼 애국심이 강했다. 또 대한제과협회 및 제과학교의 설립에 동참하는 등 대한민국 제과·제빵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제빵업계의 큰별’이라 불린다.

태극당은 1973년 지금 본점이 위치한 장충동으로 옮겨 온 후 74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종로, 혜화 등 서울시내 10여 군데 지점을 둘 만큼 전성기를 누렸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에 밀려 본점만이 남은 상태였다.

2015년 리모델링 전 태극당 내부 모습.(사진=태극당)
설상가상으로 2013년 2대 사장이자 아버지인 신광렬(65) 대표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건 신 전무에게 주어진 숙제이자 책임이었다. 그는 우선 가게를 둘러보며 공장 시설부터 인테리어까지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꼼꼼히 확인했다. 혼자 감당하기엔 어려운 일이 많았고 누나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신 전무는 경영 전반 업무와 외부업체 협력 등 대내외 업무를 총괄하고, 큰누나인 신혜명(38) 부장이 마케팅 업무를 전담했다. 둘째, 셋째 누나인 신혜종(36) 부장, 신혜민(35) 주임은 각각 인사, 커스텀 서비스를 맡았다.

태극당을 놀이터 삼아 자라온 남매들이 의기투합하니 오래된 빵집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70년이 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는 역사적 강점을 살리되, 낡고 노후한 시설은 바꾸고 손님들이 오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물려받은 대부분의 유산을 공장 설비 교체, 카페 확장·인테리어 등 시설보수에 사용했다. 2~4층 곳곳에 나뉘어 있던 공장 시설을 층별로 체계화하고 1층 매장과 2층엔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 공간도 만들었다. 2015년부터 1년여 간의 새 단장을 마치자 평일 매출은 최대 10배가 뛰었다. 지금은 70~80대 노인부터 20대 젊은이들이 찾는 ‘뉴트로 맛집’, ‘빵지순례(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유행하는 빵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성지 순례에 빗댄 말) 명소’로 떠올랐다.

빵아저씨 이야기 동화책. (사진=태극당)
미대에서 조소과를 전공한 신혜명 부장은 제각각이던 제품 포장, 로고를 무궁화로 도식화해 깔끔하게 바꿨다. 서체개발 전문회사 산돌과 협력해 만든 ‘태극당 서체’로 웹사이트도 단장했다. 2017년엔 장차북스와 함께 창업주 신창근 대표의 스토리를 담은 어린이 동화책 ‘빵아저씨이야기’를 출간했다. 또 힙합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에게 유명한 스트릿 패션 브랜드 ‘브라운 브레스(Brown Breath)’, 이탈리아 스니커즈 브랜드 ‘수페르가(SUPERGA)’ 등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신혜명 부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제빵 기술에 능한 장인이셨지만 요즘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마케팅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었다”면서 “태극당이 단지 빵집을 넘어서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통일된 브랜드 가치를 키워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였다”고 말했다.

신혜명(앞줄 맨 왼쪽) 부장, 신경철(뒷줄 첫 번째) 전무이사와 태극당 직원들.(사진=태극당)
하지만 태극당 내부에 옛 모습은 최대한 보존하려 노력했다. 태극당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색 간판, 샹들리에, ‘납세는 국력이다’ 등 창업주의 경영정신이 깃든 표어도 계산대에 그대로 두었다. 무엇보다 태극당의 시그니처 메뉴들을 강화하는데 힘썼다. 신 전무는 “유행하는 메뉴를 넣거나 빼지 않고 태극당이 자체 개발한 모나카 아이스크림과 남대문 전병, 1968년 젖소 700마리를 키우는 목장을 세워 만든 순우유 100% 태극식빵, 버터케이크, 단팥빵, 야채사라다(샐러드빵) 등 대표 메뉴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면서 “특히 저희를 믿고 70년 넘게 태극당을 위해 일해 준 제빵계의 장인들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태극당에는 반세기 이상 ‘한결같은 맛’을 지켜온 직원들이 있다. 아이스크림 만드는 한청수 부장(66년 입사), 전병을 전담하는 김영일 부장(68년 입사), 이성길 공장장(75년 입사)이 대표적이다. 1970~80년대 케이크 맛과 모양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이들이 있어 드라마 ‘응답하라1988’ 등 다양한 TV 프로그램과 영화에 제작 지원을 할 수 있었다.
2015년 내부 리모델링 이후 태극당 1층 모습.(사진=태극당)
신 전무는 올해를 ‘태극당 제2의 도약의 해’로 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근 을지로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아크앤북’에 숍인숍 형태로 입점한 것에 이어 2~3군데 직영매장을 더 늘릴 계획이다. 지금의 태극당 전통 제빵 기술을 전수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위탁생산 업체들과도 꾸준히 외부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신 전무는 “100년 뒤에도 태극당은 ‘많은 것을 바꾼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남았으면 한다”면서 “아들에게 태극당을 물려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기반이 탄탄한 브랜드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자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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