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前 대우회장 입 열다

"올해 내 나이가 몇인 줄 압니까? 재기해도 5년 이상은 힘들거요"
  • 등록 2008-03-08 오전 10:26:42

    수정 2008-03-08 오전 10:26:42

[조선일보 제공] 서울역 근처에 있는 대우재단 접견실에서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기다렸다.

김 전 회장이 가끔 들른다는 사무실은 전체적으로 별다른 장식이 없는 밋밋한 분위기였다. 전날 약속 시간을 잡느라 통화했을 때 그의 목소리는 당당하고 우렁찼다. 그는 "일단 무슨 얘기를 할지 만나서 의논을 좀 해봅시다. 그리고 인터뷰는 자리를 좀 옮겨서 하지요"라고 했다.

맨주먹으로 시작해 대우그룹의 신화를 일군 재계 2위의 재벌총수 김우중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경영'을 외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거의 6년 만에 지치고 병든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법정과 구치소, 병원을 오가다가 지난해 말 특별사면됐다. 그러나 18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은 그대로 남아있다.

대우그룹이 몰락해버린 후 그는 좀처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2005년 귀국 이후엔 더더욱 그랬다. 환자복 차림으로 법정을 오가는 모습만 공개됐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잊지 않았다. 그가 숨으면 숨을수록 그가 무엇을 하는지 더더욱 알고 싶어했다.

어떤 사람들은 "김우중이 자유로워졌으니 이제 또 무슨 일을 벌여 우리를 놀라게 할까"라고 기대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김우중이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라고 회의한다. 성공과 몰락의 과정이 모두 기적 같고 거짓말 같은 이 18조원의 사나이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근황을 궁금해하는 인물이 되었다.

김 전 회장은 전화를 끊기 직전 "그래요. 내일 봅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데려오지 말고 혼자 오십시오"라고 했다. 사진기자와 함께 오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사진기자를 건물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김 전 회장을 만나러 갔다.

그는 짙은 밤색 플라스틱 테 안경에 회색 스웨터와 회색 바지 차림으로 접견실에 들어섰다. 턱엔 희끗희끗한 수염이 꽤 길게 자라 있었다. 피부는 투명하도록 맑아 보였다. 수척했지만 병색은 아니었고, 조용했지만 강인한 기운이 느껴졌다. 약간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아직 담배를 못 끊었어요."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내더니 가느다란 담배를 하나 뽑아 입에 물었다.

"좁은 병실에 오래 갇혀있는 동안 너무 답답하니까 자꾸 담배를 피우게 되더라고요. 내가 원래 술도 마시지 않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달리 하는 일도 없고 그렇잖습니까."

1999년 6월 12일 김 전 회장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그때 그는 갑자기 마음을 바꿔 차후에 다시 한번 상세한 인터뷰를 할 테니 기사를 잠시 보류해달라고 했다. 넉 달 후 그는 중국 옌타이 대우차 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잠적해 긴 유랑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많은 일이 일어났다. 김우중은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대우그룹은 해체됐다. 1999년 10월 출국해서 2005년 6월 귀국할 때까지 그는 약 5년 8개월 동안 유럽과 동남아를 떠돌며 도피 생활을 했다. 외국에서 그를 목격했다는 소식이 수시로 국내에 전해지곤 했다.

김 전 회장이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말이요. 우리 집사람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요. 내가 집사람에게 아직은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도대체 설득이 돼야 말이지. 그래서 차라리 강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나중에 하자고 직접 설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이렇게 나온 거요."

뜻밖의 난관에 기운이 빠졌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저를 설득하는 건 더 어려우실걸요."

오래 전부터 부인 정희자 여사에게 인터뷰 기회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정 여사는 어렵사리 남편을 설득했다면서 이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김 전 회장은 부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나오기는 했는데 인터뷰는 할 수 없다고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부부는 이날 아침 댓바람에 언쟁을 벌인 모양이었다. 정 여사가 "이왕 만나기로 했으니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도 매고 나가서 사진이 잘 나오게 하라"고 하자, 김 전 회장이 화를 벌컥 내며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에게서 스며 나온 화난 듯한 기운은 아마 이 싸움의 여진이었을 것이다.

―10년 전에도 나중에 인터뷰한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잖아요.

"그땐 내가 그리 될 줄 몰랐지요."

―그럼 이번에 그 약속을 지키시지요.

"지금은 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으로서 반성하며 지낼 시기에요. 자꾸 나서서 무슨 말을 해서 그게 화제가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오해가 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풀어질 겁니다."

―사면을 받으셨으니 인터뷰 정도는 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사면 받은 지 이제 겨우 두 달 됐습니다. 사람들 눈엔 저 같은 사람이 자꾸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게 결코 좋게 보일 리가 없어요. 조용히 지내야지요. 그냥 시간이 가게 둡시다. 어떤 일이 이뤄지려면 다 때가 있더라고요."

이쯤 해서 그가 인터뷰를 거부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가기는커녕 자신의 건강과 요즘 생활에 대해 더 열심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인터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는 인터뷰라고 생각하는 대화가 계속되었다. 김 전 회장은 취재수첩도 못 열게 하고 볼펜도 손에 쥐지 못하게 했다. 사진기자를 부르겠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펄펄 뛰었다.

아무 연락이 없자 애가 탄 사진기자는 계속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 잘 안 되나요?" 김 전 회장은 내 휴대폰이 몇 번이나 부르르 떨며 대화를 방해하자 "그 전화 좀 치우라"며 역정을 냈다. 그는 할 말이 너무나 많았다. 나는 사진기자에게 "일단 올라와보라"고 문자를 보냈다.

김 전 회장은 자신의 근황을 브리핑하듯 차근차근 설명했다.

"내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건강과 가족입니다. 얼마 전에도 담석제거 수술을 했어요. 오래 전에 뇌수술, 위암 수술, 전립선 수술을 한 적이 있고, 얼마 전엔 심장, 신장, 백내장 수술을 했어요. 일단은 몸을 추스르는 게 나한테 제일 중요하지요. 게다가 집사람도 건강이 좋지 않아요. 나도 집사람도 많이 걸어야 해요.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산으로 운동을 하러 가는데 거기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잘 가지도 못해요. 어디 지방에 가서 조용하게 살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라서요."

―사무실엔 매일 나오십니까.

"가능하면 밖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집에 있으면 자꾸 잠을 자게 되고 그러면 밤에 잠이 안 와요. 그래서 수면제를 먹으면 나중엔 잘 듣지 않으니 양이 자꾸 늘어서 안 되겠더라고요. 낮에 활동을 많이 하면 밤에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김 전 회장은 부인과 가족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일이 취미이자 놀이이고 생활이며 건강의 비결이었던 일중독자가 갑자기 가족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이야기하니 낯설었다.

"내가 집사람에게 잘하려고 해요. 젊었을 때 사업한다고 돌아다니느라 가족들을 잘 돌보지 못했어요.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런데 사람 마음에 한이 남아 있으면 안되지요. 그래서 웬만하면 뭐라고 하지 않고 집사람이 하자는 대로 해요. 가족이 화목해야지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그래야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재기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자주 나오던데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준비는 무슨 준비를 합니까. 올해 내 나이가 도대체 몇인 줄 아십니까? 일흔두 살이에요. 뭘 시작한다 해도 5년 이상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재기를 한다면 자원과 사람 등 필요한 것이 많은데 지금으로선 힘들지요. 그리고 오래 세상과 동떨어져 있어서 요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요. 그걸 먼저 배워야지요."

―최근에 외국에 가려고 하다가 출국금지가 돼서 답답해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한 일 아닙니다. 못 나갈 수도 있는 것이고…. 저는 그런 일이 자꾸 화제가 되는 걸 원치 않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 에서 새만금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았던 강현욱 전 전북도지사를 만나서 "조언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다면서요.

"새만금 사업은 예전에 대우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내 주변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 기사가 자꾸 나오는데 도대체 나와 가깝다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어쨌든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려고 합니다. 눈에 띄지 않게 지내려고 해요."

―북한 남포지역 경제특구 장관 제의를 받으셨다면서요?

"그건 중국과 미국의 입장이 어떤지가 제일 중요한 문제지요. 그리고 제가 지금 북한에 가서 그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명박 대통령과는 잘 아시지요?

"이 대통령이 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일을 많이 해본 사람이니까요. 우리나라가 잘돼야지요."

그는 법적·정치적으로는 사면됐을지 모르지만, 아직 여론과 민심의 사면은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설친다' '나선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사렸다. 김 전 회장이 말 하나 행동 하나에 이토록 조심스러운 것은 그의 마음속에 원대한 무엇인가가 자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 사람이다.

―최근에 영화 '추격자'를 보러 가셨다면서요.

"아들이 영화 관련 일을 하니까 집사람이 한번 가보자고 해서 갔지요. 영화관에 가본 게 20년 만인지 30년 만인지 생각도 안 나요. 예전엔 그런 델 가본 적이 아예 없으니까요."

김 전 회장의 막내아들 선용씨는 영화 '추격자'의 투자를 맡은 벤티지 홀딩스 이사로 재직 중이다.

―아들의 사업에 조언도 하십니까.

"영화는 제가 잘 모르는 분야니까 조언하긴 어렵지요. 요즘 영화계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고 해서 걱정스러워요. 그런데 아들은 그렇게 상황이 나쁠 때 바닥에서 시작하면 큰 경쟁자가 없어서 오히려 더 낫다고 그럽니다."

김 전 회장에게 영화가 재미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요즘 TV 드라마를 보면 가족을 중시하는 것 등 긍정적인 소재들이 많은 것 같다"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전엔 늘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변하는 걸 보면 결국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소재를 원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그쪽으로 가는 것 아니겠어요?"라고 했다.

―재벌 총수에서 수감자까지 천국과 지옥 같은 상황을 다 겪었는데, 어떻게 그 일을 다 감당하십니까.

"나는 원래 돈을 벌려고 일을 한 것이 아니었어요.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돈을 벌었던 것이지요.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내 인생에 한이 없어요.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봤으니까요."

―그래도 5년 8개월 동안 외국에서 숨어 다니다 보면 생각이 많았겠지요.

"사실은 절에 가서 2~3년 머무르며 지나간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나는 그동안 경제를 통해서만 모든 것을 봤으니까요. 이제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외국서 유랑 생활 하시는 동안 그런 생각 안 하셨습니까?

"내내 아팠고 여유가 없었지요."

―인생을 보는 눈은 확실히 달라졌을 텐데요.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책을 많이 읽으시지요?

"그동안 한 1000권 읽었을 겁니다."

―그럼 이제 책을 쓰실 때가 됐네요.

"쓰면 아마 분야별로 나눠서 다섯 권은 써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우리 세대가 하지 못한 일이 후진을 키우는 일입니다. 앞서간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후진을 키우는 일을 하고 싶어요. 다행히 예전에 세워둔 학교가 곳곳에 있고 재단에서 학술사업도 잘하고 있어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지요."

김 전 회장과의 인터뷰 약속이 잡힌 후 1989년에 출판된 그의 밀리언셀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다시 읽었다. 160만 부가 팔렸고 16개국어로 번역된 책이다. 저자의 인생은 그 후 숱한 굴곡을 겪었지만, 그가 던졌던 메시지는 여전히 피를 끓게 하는 데가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라"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추구하라"는 말은 지금 읽어도 가슴이 뛴다. "안주하는 것은 패배를 뜻한다." "이만하면 됐다는 적당주의를 단호히 거부하라"는 말은 정신이 번쩍 나게 한다.

그런데 이 책엔 새벽 다섯 시에서 밤 아홉 시까지 일하자는 '파이브 투 나인'식 생활, 가족들 생일도 챙겨주지 못하고 일만 하는 삶, 오로지 성공과 성장만 생각하는 인생이 담겨있다. 치열하게 '김우중스러운' 삶엔 행복이나 삶의 질이 없다.

―사는 데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

"자신감이지요. 얼마 전에 키신저가한국 왔을 때 한번 보자고 해서 만났어요. 그 나이에 그 먼 여행을 다 다니고 사람들도 얼마나 많이 만나는지 일정이 빡빡한 것 같더라고요. 자신감 있고 부지런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자꾸 나가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봐야 해요. 그래서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기존의 방식으로 해선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비서가 문을 열고 "병원에 갈 시간이 됐다"고 했다. 재떨이엔 담뱃재와 꽁초가 그득했다. 이날, 작년 대장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 중인 부인 정여사가 마지막으로 항암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김 전 회장은 "다른 데로 전이되지 않아 치료가 빨리 끝났다"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그는 일어서면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거래'를 시도했다. 이번 인터뷰를 기사화하지 않으면 다음에 진짜 멋진 인터뷰를 약속하겠다고 했다. 대신 이번에 기사를 쓰면 앞으로 자신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쩌면 다시는 김 전 회장을 만나지 못할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로 했다. 기자와 한 시간 동안 만난 후 기사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정도로 그가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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