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60명 사는 마을에 영화관?…그린벨트 규제 '졸속' 완화

규제 풀린곳 도심과 멀고
규모 작아 실효성은 미미
허허벌판에 PC방 건립
전형적인 '탁상행정' 논란
  • 등록 2014-07-07 오전 7:00:00

    수정 2014-07-07 오전 7:00:00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여기가 그린벨트 규제 완화로 수혜 입은 지역 아닌가요?” 지난 4일 오후 찾아간 서울 서초구 신원동 ‘새정이마을’. 마을 근처에 자리잡은 J공인중개사 사무소 홍영식(가명) 대표는 기자의 질문에 답답하다는 듯 한숨부터 내쉰다.

새정이마을은 청계산 자락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에 조성된 주거지역이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그린벨트 규제 완화로 수혜가 예상되는 지역이라며 기자에게 소개해 준 취락지구(그린벨트 내 주거지를 정비하기 위해 지정한 곳) 중 서울 강남지역에서 땅 면적이 가장 넓은 곳이기도 하다.

앞서 지난달 말 국토부는 그린벨트에 들어서 있는 기존 주택·창고·공장 등을 영화관이나 PC방·골프연습장·찜질방 등 수익성 있는 시설로 변경가능토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르면 오는 12월부터 그린벨트 내 기존 건축물의 용도 변경이 쉬워지는 것이다. 새정이마을 같은 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덜고 소득도 늘리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그린벨트 내 기존 건축물을 영화관이나 PC방·골프연습장 등으로 쓸 수 있게 하겠다며 내놓은 규제 완화 방안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시장의 빈축을 사고 있다. 서울 서초구 신원동의 그린벨트 내 주거지역인 새정이마을 입구에 안내판이 서 있다. (사진=박종오 기자)
하지만 이날 둘러본 현장 사정은 딴 판이었다. 새정이마을은 앞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불과 2㎞ 떨어진 곳엔 그린벨트를 풀어 짓는 아파트인 보금자리 주택이 준공을 앞두고 있다. 그렇다해도 영화관이나 PC방·골프연습장 등을 짓기엔 도심과 멀고 마을 규모도 턱없이 작았다.

건물 60여개 동 대부분이 330㎡(100평) 남짓한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PC방을 차리자니 수요가 부족하고, 골프연습장을 들이기엔 부지가 작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급기야 기자가 동네를 제대로 찾긴 한 것인지 주변 중개업소에 문의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땅 주인들 전화가 빗발쳤어요. 지금은 다들 실망해서 완전히 잠잠한 분위기입니다.” 홍 대표는 현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홍씨 얘기처럼 시장 반응이 시큰둥한 건 정부 계획에 현실성이 떨어져서다. 그린벨트 내 기존 건축물의 용도 변경 범위를 대폭 확대(30여종→90여종)해도 뒷받칠 ‘수요’가 없다. 당초 이번 조치의 최대 수혜지로 꼽힌 곳은 주택이 비교적 많이 모여 있는 그린벨트 내 취락지구다. 그러나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의 취락지구 336곳(2010년 말 기준)에는 주민 2만1640명이 거주한다. 지구당 고작 64명 꼴에 불과하다. 이보다 규모가 큰 취락지구는 이전 정부들이 그린벨트 규제를 풀면서 대부분 주거지역 등으로 변경된 상태다.

여기에 그린벨트 내 건축물의 면적 제한과 이중규제 격인 지자체의 도시계획 등도 실효성을 반감시킨 요인이다. 정순국 수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그린벨트 내 건물을 골프연습장이나 노인 요양원 등으로 개발하려 해도 땅이 작거나 실제로 쓸 수 있는 면적이 좁다보니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지역도 분위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 전체 행정구역 면적의 70% 이상이 그린벨트인 과천, 하남 등이 대표적이다. 과천 별양동 K부동산 관계자는 “취락지구 대부분이 그린벨트에서 이미 해제됐고 논·밭·임야 등만 묶여 있어 호재될 만한 곳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근호 제일공인중개사사무소(경기 하남시) 대표는 “허허벌판에 PC방을 차리게 해주는 것보다 차라리 용적률 등 그린벨트 내 건축 규제를 완화해 주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환경운동연합은 정부가 입법예고 등 법이 정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건너뛰고 규제 완화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발표한 것을 문제 삼아 서승환 국토부 장관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중적인 잣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린벨트를 풀어 지은 보금자리주택의 경우 분양 계약자의 불법 분양권 전매나 전·월세 임대 거래가 판을 치고 있지만 현재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반면 현 정부 들어 기존 그린벨트 지역은 해지불가 원칙을 세워놓고 용도변경 등 생색내기만 하고 있어 앞뒤가 안맞는다는 지적이다.

부동산업계 한 전문가는 “이번 규제 완화도 결국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가 보지 않고 책상 앞에서 만든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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