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부족해” “압사 두려움 느껴”…바뀐 게 없다[이태원참사 한달]①

광역버스 입석금지·안전요원 증원 등 ‘땜질’
9호선 급행열차·골드라인,‘지옥철’ 여전
좁은 골목 불법 증축, ‘반짝’ 관심 후 변화없어
“경각심 이어가야…밀집해소 목표 둬야”
  • 등록 2022-11-29 오전 6:00:00

    수정 2022-11-29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소현 황병서 이용성 기자] “미친 거 아냐? 왜 밀어요!”

28일 오전 7시20분께 서울 지하철 여의도역. 꽉찬 채로 막 도착한 9호선 급행열차에 승객들이 몸을 비집자 열차 안에 있던 한 승객이 외쳤다. 이후 “왜 성질을 내냐”, “더는 밀지 마라”며 승객들 간에 고성이 오갔다. 결국 형광 조끼를 입고 경광봉을 든 안전요원이 “뒤로 나오세요”, “다음 열차 타세요”라고 제지하고 나서야 실랑이는 일단락됐다.

300명 넘는 사상자를 낸 ‘이태원 압사 참사’ 후 한 달, 우리 사회는 여전하다. 지자체가 부랴부랴 대규모 인파가 예상되는 축제를 취소하고, 수도권 광역버스의 입석을 금지하고, 전철역과 행사장 등에 질서유지 안전요원과 경력을 배치하는 등 애를 써도 우리 사회 곳곳의 ‘밀집’은 일순간에 해소되지 않는다. 특히 1000만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은 인구밀도는 1㎢당 1만5699명으로 다른 6개 광역시보다 최소 3.6배, 최대 14.8배나 높다.

이 때문에 밀집에 따른 안전사고 위험을 막기 위해선 중장기적으로 ‘분산’을 목표 삼아야 하지만, 현재 정부의 대책들은 ‘땜질식’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28일 오전 김포골드라인(사진=황병서 기자)
참사 후 한달…‘밀집 포비아’ 안고 전철탄다

‘지옥철’은 이태원 참사 후에도 손꼽히는 ‘안전사고 위험지대’다. 여의도역의 경우 출퇴근 시간 등 혼잡도가 높은 시간에 안전요원 배치 인원을 기존 12명에서 39명까지 늘렸지만, 옴짝달싹 못하는 전철 안의 사정은 바꾸지 못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여의도로 출근하는 김모(25)씨는 “출근하는 사람들 전부 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정말 필사적으로 탄다”며 “안전요원이 조절한다지만 출근시간엔 다음 열차를 타려 해도 사람 많은 건 어차피 똑같으니까 비집고 타게 된다”고 말했다.

달랑 ‘2량’짜리 열차인 김포골드라인(김포도시철도)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열차가 급정거라도 하게 되면 사람들이 한쪽으로 우르르 쏠리면서 부딪혀 다치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수 년째 문제점이 지적돼왔지만 개선은 더디다. 직장인 황모(34)씨는 “이러단 압사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고 했고, 다른 직장인 김모(20)씨는 “산소가 부족하단 느낌이 들 때가 있다”며 “체구가 작은 여성이나 노약자들은 상대적으로 손 하나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에 자주 노출돼 위험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매일 지옥철에 타야 하는 이들은 이태원 참사의 트라우마로 인한 ‘밀집 포비아(공포)’를 토로하기도 한다. 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에서 만난 이모(30)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엔 똑같은 일이 골드라인에서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을 안고 탄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밀집’의 위험성을 체감했던 때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당시엔 기업들이 재택근무제, 유연근무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으로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분산했다. 여의도역 한 승무원은 “코로나19 한창 때엔 출근시간에도 주말처럼 승객들이 적었다”며 “코로나19가 풀리면서 혼잡도가 예전으로 돌아왔고 이태원 참사 후에도 비슷하다”고 했다.

“경각심 놓지 말아야…인구 분산정책에 방점 둬야”

서울 마포구 홍대 한 골목길(사진=이용성 기자)
인파가 몰리는 거리들의 불법구조물 문제는 참사 직후에만 ‘반짝’ 경각심을 샀을 뿐, 다시 잊혀지는 분위기다. 좁고 경사진 용산구 이태원의 참사 골목은 해밀톤호텔의 불법증축이 골목 폭을 더 좁혀 참사를 키웠단 비판 받았다. 이태원 일대는 물론 마포구 홍대입구 근처, 성동구 성수 카페골목 등에도 인파가 몰리는 좁은 골목길이 많아 안전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이날 이데일리가 돌아본 마포구 홍익로3길은 차양막으로 영업 장소 범위를 넓힌 가게들 풍경이 여전했다. 각종 입간판과 상품 진열대도 거리에 튀어나와 있었다. 국토교통부 건축행정시스템에 따르면 마포구 홍익로3길 19건물은 2017년 11월 판넬영업으로 10㎡ 무단 증축돼 구청이 적발했지만, 아직도 시정되지 않았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고, 차량까지 드나들면 밀집도는 더욱 높아지는 곳이다.

인근 클럽거리도 마찬가지였다. 클럽거리 골목에 있는 마포구 잔다리로8 화진건물도 1층 뒤 천막과 철파이프 18㎡ 무단증축을 지난해 8월 24일 적발됐지만, 아직 그대로였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관련 부서에서 꾸준히 조사를 진행했고, 적발하면 시정조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제2의 이태원 참사’를 막으려면 땜질식 대책을 넘어선 실질적 변화를 이끌 중장기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제언했다. 예컨대 광역 출근버스의 안전을 위해 대체수단도 없이 입석만 없애면, 한시간 반 기다려야 출근버스를 탈 수 있는 이들의 공감도 받을 수 없단 것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망각하게 되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줄어들 텐데 그때가 제대로 관리를 해야 할 시점”이라며 “재택근무 등 근무형태 다양화를 정부가 독려하고, 길게는 공공기관의 추가 지방이전 등 지방 분산정책을 추진해야 수도권 밀집도를 낮추고 안전사고 확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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