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놀 줄 모르는 장관들의 이상한 휴가

  • 등록 2016-08-04 오전 6:00:00

    수정 2016-08-04 오전 11:26:52

[세종=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강원도 춘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방문해 간담회를 열었다. 일자리·창업을 지원하고, 지역 경제 애로를 해소하기 위한 자리였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부산에서 열린 조선업 간담회에 참석해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을 설명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예천·의성·울산을 차례로 방문해 농촌 여행을 장려하고 농축산물 소비 촉진을 당부했다.

경제부처 장관들의 여름휴가가 이상하다. 사흘 안팎의 짧은 휴가를 내는 것은 기본이고, 휴가 기간 중 공식 일정을 몇개씩 소화하는 게 예사다. 각 부처는 이들이 휴가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경쟁적으로 홍보하기에 바쁘다.

따지고 보면 올해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장관들이 여름휴가 때 현장방문을 하고 간담회를 여는 것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관례처럼 굳어졌다.

5년 전 이명박정부는 달랐다. 2011년 여름 박재완 당시 기재부 장관은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서 휴가를 보냈고,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도 통영·거제에서 망중한을 즐겼다. 다른 장관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공식 일정은 없었다. 그 덕분에 관련 공무원들도 숨가쁜 일정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달라진 여름휴가 문화에 대해 경제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대통령의 휴가 스타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청남대에 머물면서 운동을 하고 휴식을 취했지만,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 저도 방문과 올해 울산 방문을 제외하곤 줄곧 관저를 지켰다. 그는 “대통령이 노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장관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장관이 짧은 휴가 기간에도 업무를 챙기는 것을 보면 아래 공무원들도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다”고 했다.

해외에선 국가 지도자들부터 적극적으로 휴가를 사용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는 8일부터 23일까지 보름 동안 휴가를 냈다. 그는 예년과 같이 매사추세츠주 휴양지 마서스 비니어드에서 골프를 치고 독서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8월 대부분을 휴가로 보내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포르투갈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달 19일부터 3주 휴가를 내고 이탈리아에서 휴식을 취했다. 장관을 비롯한 공무원들도 눈치를 보지 않고 장기 휴가를 내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

휴가는 생산성을 높일 뿐 아니라 내수 진작 효과도 크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올 여름 국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국민의 총 예상 지출액은 4조4018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정부도 휴가 사용을 권장하면서 국내 여행을 추천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주요 부처의 수장들은 쉬지도 않고 일만 하는 모순된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장관들의 휴가 중 업무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하급자들이다. 장관들의 현장 방문에는 통상 5~6명의 공무원들이 동행한다. 이들은 장관의 일정에 맞추느라 원하는 날짜에 휴가를 쓰지 못하는 것은 물론 모처럼 맞은 ‘무두절(상사가 자리를 비운 날)’을 날려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사무관급 공무원은 “장관이 휴가 중에 일을 하면 해당 업무 관련자들은 물론 운전기사, 비서, 심지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관리자도 줄줄이 일을 해야 한다”며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믿는 윗분들이 아직 많다”고 푸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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