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 90. 러시아 돈세탁 옥죄기

  • 등록 2018-10-09 오전 6:00:00

    수정 2018-10-09 오전 6:00:00

영국 런던 전경(사진=이민정 통신원)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영국이 지난 3월 영국 솔즈버리에서 발생한 러시아 이중첩자 암살을 시도한 용의자로 러시아군 총 정보국 장교 출신 2명을 특정하고 러시아 정부를 배후로 지목했지만 이들 모두가 사건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용의자 2명은 이미 러시아로 돌아간데다 영국의 요청에도 러시아가 이들을 내주지 않고 있으면서 사실상 이들을 법정에 세우는 일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영국은 러시아를 압박하는 다른 수단을 찾고 있습니다. 부정부패 등으로 축재한 돈을 영국에 돈세탁 등을 목표로 들여오는 러시아 부호들의 자금을 막아버리겠다는 것이죠. 러시아에서 사업해 성공하려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해야 하고 이들의 자금은 푸틴 정권의 자산이나 영향력을 넓히는 데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이들 부호들과 관련된 기업들의 돈세탁 통로를 막아버리고, 검은돈이 여기저기 정당한 곳에 쓰일 수 있는 깨끗한 돈으로 둔갑하지 못하게 하면 푸틴에게도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영국범죄수사국(NCA)에 따르면 한 해 영국에서 세탁되는 검은돈은 900억파운드(약 133조원)에 달합니다.

러시아 신흥재벌을 일컫는 올리가르히는 돈세탁을 위해 영국, 특히 런던에 부동산을 많이 삽니다. 외국인의 런던 부동산 매매에 대한 규제가 비교적 느슨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런던 부동산을 사고팔면서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을 정상적인 돈으로 세탁하는 것이죠.

러시아 부호들이 런던 부동산을 돈세탁 창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고 영국 정부 차원에서도 러시아인들이 영국을 불법 돈세탁 장소로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긴 합니다. 솔즈버리 독살 시도를 계기로 돈세탁 억지 정책을 조금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죠.

도널드 툰 NCA 경제범죄 부문 국장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출처가 불분명한 부를 축적한 러시아인들을 주시하고 있다”며 “자금의 출처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자산을 압류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영국 취학 전, 초등, 중등, 고등 과정 등이 있는 사립학교도 검은돈의 세탁 처로 이용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사립학교의 연간 평균 학비는 한 학생당 약 1만7232파운드(약 2553만원)에 달하는데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이 학비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돈세탁과 사기죄가 밝혀진 나이지리아 델타 주 주지사였던 제임스 이보리도 자신의 세 딸을 영국 도르셋에 있는 연간 2만3465파운드 학비를 내는 사립학교에 보냈습니다.

영국 사립학교들을 대변하는 인디펜던트스쿨카운슬(ISC) 통계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2806명의 러시아 학생들이 사립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작년 1월 기준 3044명, 2016년 1월 3266명인 것과 비교해서는 줄어드는 추세에 있긴 합니다.

영국범죄수사국은 사립학교들도 돈세탁을 억제하기 위해 동참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만약 학생 학비의 출처가 의심된다면 적극적으로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죠.

툰 NCA 국장은 “사립학교의 신고는 몇 건에 불과하다”며 “학비의 출처가 정당한지에 대해 점검하는데 학교들이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국가의 감독을 받는 분야는 벌어들이는 돈에 대해 책임이 있고, 학교도 마찬가지”라며 “돈을 내는 고객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하고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면 신고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영국 투명성기구의 로버트 바링턴 디렉터는 “사립학교와 대학 학비는 검은돈의 세탁을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방해하는 틈새였다”며 “돈세탁 위험이 큰 국가 출신의 학생의 학비에 대해서도 거의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부정부패로 축적한 돈으로 자녀의 영국 교육을 사도록 허용하는 것은 단순히 돈세탁을 방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자녀를 글로벌 엘리트 집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립학교 측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보에 근거해 입학하는 학생들의 백그라운드 체크를 하고, 의심스러운 경우 신고도 하고 있지만 수사기관이 아닌 이상 자금의 출처의 정확히 파악하는데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고 항변했습니다.

학비뿐만이 아니라 주요 사립학교, 주요 대학 도시의 부동산도 돈세탁 창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부동산에이전트 단체인 NAEA프로퍼티마크의 마크 헤이워드 최고경영자(CEO)는 “올리가르히는 런던 부촌 지역인 켄싱턴에서만 주택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대학 도시들에서도 부동산을 매입하고 있다”며 “대학 도시 부동산 업체들은 외국인들이 친지 거주나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 구입을 문의해 오는 경우나 대면하지 않고 부동산 계약을 맺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자금세탁방지시스템(AML)에 알릴 수도, 알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들을 모두 단속하기에는 정부의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영국 국세청(HMRC)의 인력은 지난 2005년 10만4000명에서 작년 기준 5만8000여명으로 줄어들었고, 은행업 및 법률서비스업 등을 제외한 기업 및 부동산 등지의 돈세탁 적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은 200여명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력이 충분치 못해 돈세탁 적발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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