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습니다]①"시민단체, 후원·수혜자 간 파이프라인…새거나 녹슬면 안돼"

국내 첫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 유원식 회장 인터뷰
"자금 신속집행·쌍방향 정보공개…투명성이 DNA 돼야"
"정의연 사태에 일부 후원중지, 곧 다시 기부 늘어날 것"
"기부자 헤택 늘려줘야…유산기부 위한 稅지원 늘려야"
  • 등록 2020-06-15 오전 1:11:00

    수정 2020-06-15 오전 6:40:48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비영리단체(NPO), 특히 기부금을 받아 일하는 자선단체는 후원자와 수혜자를 연결시켜주는 파이프라인과 같습니다. 중간에 누수가 생겨선 안되고 내부에 녹이 슬어서도 안됩니다. 단체가 출발할 때 가졌던 순수성과 투명성을 잘 유지해야 하느냐가 결국 그 단체의 존폐가 좌우하는 핵심이 됩니다.”

유원식 기아대책 회장


31년 역사를 가진 국내 최초 국제구호개발단체이자 국내 대표 NPO 중 하나인 희망친구 기아대책을 이끌고 있는 유원식 회장은 14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기부금 유용 의혹을 낳은 정의기억연대 사태와 관련, “NPO에게 투명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기부하는 후원자들도 (자신이 지원하는) NPO의 사업 목적과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되 해당 단체에 실제 기부금 집행내역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상호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유원식 회장과의 일문일답.

-기업에서만 일하다 비영리단체(NPO)의 수장으로 합류하게 된 계기는.

△평균 연령이 늘면서 인생을 90년 산다고 보면 첫 30년은 배우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고 경제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시기다. 다음 30년은 직장과 사회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시기다. 그러다 마지막 30년은 자녀도 독립하고 직장을 그만 두면서 그동안 배운 지식과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시기다. 처음부터 살면서 각 단계별 계획을 세웠다. 1979년 대학 3학년 때 이재서 현 총신대 총장과 함께 발달장애 아이들을 돕는 밀알선교단(현 밀알복지재단)을 같이 만들었다. 1981년에 삼성전자에 입사한 후 이후 33년간 IT분양서 일했고 그 중 17년 간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했다. 일하면서 밀알복지재단을 틈틈이 도왔고 이후 6년간 단체병 어린이 지원단체인 메이크어위시도 도왔다. 그러면서도 일에서 매너리즘도 느꼈고 나름 성공했지만 공허하기도 했다. 고민하다 2014년 오라클에 사표를 냈고 마침 헤드헌터로부터 제안을 받고 기아대책 회장 공개채용에 지원하게 됐다. 2015년 3월1일부터 회장직을 맡았다.

-NPO 수장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나.

△기업체 CEO와 마찬가지로 경영능력이 있어야 한다. 기부금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모금을 잘해야 하고 단체의 존재의미에 맞는 사업을 만들고 이를 잘 해내가야 한다. 또 최근엔 국내 NPO도 해외사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글로벌 마인드와 언어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NPO의 순수성과 투명성을 어떻게 유지해 나가도록 하느냐다. 이 두 가지를 잃지 않도록 조직을 끌고 가야 한다. 자신은 물론이고 조직원들이 순수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투명성은 아무리 강조하게 지나치지 않는다.

-NPO에게 투명성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는 후원자와 수혜자를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파이프라인이다. 그런 만큼 중간에 누수현상이 생기면 안되고 내부에 녹이 슬어도 안된다. 그래서 투명성이 우리의 DNA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선단체 중 투명하고 정직하게 일하고자 하는 기관 50여곳이 모여 함께 일하고 가이드라인도 만드는 한국자선단체협의회가 있는데, 이렇게 함께 일하다보면 투명성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혼자 하려다보면 한 번 문제가 생기면 겉잡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몇 가지를 늘 강조한다. 우선 수입(input)과 지출(output)이 같아야 한다. 중간에 돈이 새면 안된다. 수혜자를 선정하는 일에도 다른 불순한 의도가 들어가지 않는다. 또 기부를 받은 뒤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사업을 통해 지출을 하고자 한다. 돈을 갖고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빨리빨리 보내도록 한다. 쌍방향성을 가지도록 한다. 우리 사업을 통해 수혜자가 어떻게 성장했고 도움을 받았는지 후원자들에게 수시로 알려주고자 한다. 이러다보니 기아대책은 국내 NPO 가운데 기업후원 비율이 아주 높은 편이다. 기업 입장이라면 단체 투명성과 사업 효과성, 리더십 구성을 우선적으로 보는데, 그런 기업 후원비율이 높다는 건 이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사람들 간 거리두기가 실시됐지만, 착한 임대인 운동이나 착한 소비운동, 선결제 운동,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등 오히려 남을 배려하는 일이 늘었다.

△우리 국민들은 액티브하고 똑똑하면서도 나눔에 대한 DNA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나 우리 사업의 취지를 잘 설명하면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연다. 생각지도 않았던 후원을 많이 한다. 기독교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 영국 등에서 나눔이 많다고 하지만 이들은 종교적인 성향과 각종 세제햬택 등 제도적 뒷받침이 잘 돼 있다. 그런 제도적 지원이 부족한데도 우리나라는 나눔에 있어서는 세계적으로도 앞서 있는 나라다.

-최근 정의기억연대 사태로 인해 혹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가 한풀 꺾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런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기부금이 영향을 받는 게 사실이다. 후원자들 중에서 일부는 연락해서 후원을 중지하겠다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 민족은 나눔에 대해 선한 생각을 가진 국민들인 것 같다. 국민 수나 경제규모 등을 감안할 때 후원금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과거 `어금니 아빠`로 불린 이영학씨 사건 때도 그랬지만, 후원자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좋은 의도가 왜곡되는 듯하니 서운함이 클 것이다. 후원 중지는 그런 섭섭함의 표시다. NPO들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안타까움의 표시가 많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한 두달 정도는 영향이 있지만 다시 기부금이 늘어나는 경향성을 보여왔다. 우리 같은 NPO들이 더 잘해야할 것이다.



-기부단체들의 투명하지 못한 운영이 도마 위에 오르는데, 어떤 문제가 있는가.

△대부분 단체는 잘하고 있다. 다만 일부에서 문제점을 드러내는데, 단체 수장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일부 있지만 다수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잘 갖추지 못한데서 오는 문제다. 우리 NPO들이 가지는 조직의 영세성 탓인데, 구조적으로 잘 갖춰진 곳이 많지 않다보니 이런 문제에 취약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건 대다수가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원자들도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후원자는 일단 해당 역할과 책임(R&R)을 바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정의연 문제만 해도 후원자들이 선의를 가지고 지원했지만 실제 정의연이 어떤 사업을 하는 곳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정의연을 둘러싼 의혹이 많은데, 그 비판의 핵심은 정의연이 자신들의 존재 의미나 사업방향에 맞게 후원금을 집행했는지에 맞춰져야 한다. 통상 많은 NPO들이 눈물이나 감성에 호소하는 자금 모집 방식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만 보고 후원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단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고 사업목적을 확인하고 이사회 의사록이나 미션 스테이트먼트 등을 잘 읽어 보고 이해해야 한다. 그 단체의 미션과 비전을 잘 봐야 한다. 또 후원한 이후에도 단체로부터 피드백을 정확하게 받아야 한다. 연간 리포트 등을 냉정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1년간 모금해서 어느 영역에 얼마를 썼는지를 정확하게 요구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NPO도 긴강잠을 갖고 서로 성장할 수 있다.

-기부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제도 개선은 어떤 게 있을까

△몇년 전 후원금에 대한 세금 환급시스템이 바뀌었는데, 사실 과거에 비해 세제혜택을 오히려 줄이는 식이었다. 기부하는 사람들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또한 유산기부라는 개념이 있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으로 전 재산이나 재산 일부를 기부하거나 유산을 받은 유족이 기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산기부가 0.5% 정도에 불과한 반면 영국은 33%에 이르고 미국도 8% 수준이다. 영국만 봐도 유산 중 10% 이상을 기부하면 상속세를 10% 감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절세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이런 제도를 벤치마킹해 유산기부가 늘어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아울러 현금 외에도 주식과 부동산이 새로운 기부형태로 자리잡고 있는데, 주식을 기부해서 세금이 더 나오는 경우도 있다. 유가증권이나 부동산에 대해서도 정부가 세제 혜택을 줘서 기부를 독려했으면 좋겠다. 이로 인해 국가 세수가 줄 수 있겠지만 정부와 NPO가 함께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보편적 복지를 많이들 얘기하는데, 정부가 해서는 반드시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와 NPO 활동이 균형을 이루며 가야 한다. 이같은 입법이 국회에서 잘 이뤄지도록 21대 국회에도 나눔의 문화가 확산됐으면 한다.

-끝으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우리 직원들이 구호개발 영역에서 전문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고액 후원자 한 분이 이를 위해서 순수교육을 위해서 쓰라고 지정후원을 해줘 이를 활용해 내외부 역량교육을 강화해 각자 전문영역을 만들려고 한다. 이제는 구호단체 직원들도 외부 후원자들이 전문가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 우리 직원 스스로도 그렇게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업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만들고 싶다. 30년간 글로벌 컴퍼니에 있다보니 속도감이 굉장했는데, 기업이 결과지향적이라면 NPO는 존재의 의미에 무게를 많이 두기 때문에 속도의 차이가 크다. NPO는 조직원들이 동의 못하는 일에는 진도가 안 나가게 돼 있다. 내부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해 의사결정하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만들고자 한다. 사업과 모금과 경영지원에서도 인프라를 갖추고자 한다. 기부금을 많이 모은 회장이었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인프라를 갖춘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빠빠 빨간맛~♬
  • 이부진, 장미란과 '호호'
  • 홈런 신기록
  • 그림 같은 티샷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