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전쟁영화가 던진 성찰

정재형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 등록 2020-03-11 오전 5:00:00

    수정 2020-03-11 오전 5:00:00

서구에선 전쟁영화가 한창이다. 전쟁영화는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와 미래를 성찰한다.

‘미드웨이’(2019)로부터 시작한 전쟁영화는 ‘조조 래빗’을 거쳐 ‘1917’까지 이어졌다. 두 편은 제2차 세계대전을, 한 편은 제1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했다. 세 편의 영화는 각각의 다른 색깔로 현재 미국인이 느끼는 전쟁에 대한 공포를 그린다.

‘미드웨이’는 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바꾼 명 해전을 다룬다. 영화는 미드웨이 전투에서 만약 미국이 일본에 졌다면 세계질서가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상상하게 한다. 식민 지배를 받았던 경험의 한국으로서는 더욱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놀랍게도 미국은 일본에 전력이나 정신력에서 졌으나 우연히 전투에서 승리한 것처럼 그려진다. 미드웨이 전투에 진 이후에도 일본은 격렬한 저항을 했고 결국 미국은 원폭 투하라는 독약처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하면 전쟁은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권력욕과 집요함에 치가 떨린다.

히틀러가 유럽전선에서 패한 것도 운이라면 운이다. 롬멜 같은 명장과 최강의 첨단 병기들, 엄청난 카리스마의 히틀러와 일심동체가 된 독일병사들의 충천하는 사기, 독일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 승승장구하던 독일이 패배하리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히틀러가 패한 주된 원인은 소련과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한 후 급격히 전력이 약해진 데 있다. 소련군이 강해서가 아니다. 과거 나폴레옹을 이긴 러시아인들처럼 이번에도 소련인들은 운 좋게 독일을 궁지에 몰아넣어 전멸시켰다.

노르망디의 패배 역시 운이 작용했다. 독일의 무적요새인 그곳으로 연합군이 상륙한다는 것은 전쟁 상식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라이언 일병구하기’의 도입부에 나오지만 무차별적인 기관총세례에 나무토막처럼 나자빠지는 미군 병사들의 죽음은 무모함 그 자체다. 상식으로 시작했던 독일의 전쟁은 알 수 없는 혼돈 속에서 연합국의 승리를 가져왔다.

‘조조 래빗’은 그 혼돈의 전쟁 말기 독일을 다룬다. 망해가던 그 시기에도 여전히 히틀러의 광기에 사로잡힌 채 독일 국민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박해받는 유태인 소녀와 아무 것도 모르고 나치를 찬양하는 천진난만한 독일 소년의 관계를 그린다. 영화는 전쟁이 순진한 국민을 범죄와 극악무도의 반 인간주의로 끌고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1917’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한 병사의 외롭고도 부조리한 싸움을 그린다. 그는 전령으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삶과 죽음의 경계인 전쟁터를 넘나든다. 그가 삶을 유지한 것은 오로지 행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떤 논리적 설명으로도 그의 생존을 설득할 수 없다. 그는 살기 위해 도망갈 수도 있었으나 끝까지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전쟁터를 달린다. 거대한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냉정한 군대와 전쟁의 논리 앞에서 복잡하고 섬세하게 성찰하는 생명체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아이러니다.

주인공 병사는 내면적으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또 다른 싸움터에 놓여 있었다. 영화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어가는 사람이 많은 전쟁터에서 과연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이 모든 전쟁영화들이 소환하는 문제는 전쟁이란 무엇이고,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이다. 답은 각자의 몫이지만 이 영화들은 한 목소리로 전쟁이 얼마나 인간과 세계를 퇴보시키는가를 말한다. 전쟁을 통해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은 허물어져 원점이 된다. 이제 좀 살아보려는 우리가 영화를 통해 과거 전쟁들을 진지하게 성찰해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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