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좌관이다] “국회의원의 대본, 악보 쓰는 그림자”

20대 국회, 4~9급에 인턴까지 2700명 근무
정책·정무·행정 크게 나누지만…세상만사가 ‘업무’
‘세상 바꿀 기회’ 갖지만…스트레스 상당
“소명의식 낮아진 분위기에 씁쓸하기도”
  • 등록 2019-06-20 오전 6:00:00

    수정 2019-06-20 오후 2:45:39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최근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국회의원 보좌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보좌관이란 직업이 조명받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국회의원들 뒤에 가려져 있던 이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리얼 정치플레이어’로 그려지면서다. 흡사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격이다. 드라마 주인공이 될 만큼 특별하지만, 극 속의 주인공만큼 화려하지만은 않다는 게 보좌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업무적 성취도 높은 직업…다양한 인물군 포진

‘보좌관’이란 엄밀히 말해 의원실의 4급 직원을 가리킨다. 국회의원 1명당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9급 비서 각 1명, 인턴 등 총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는데 이들을 ‘보좌진’이라고 총칭한다. 20대 국회엔 300명 의원에 총 2700여명이 일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좌진은 의원실마다 다르지만 대개는 직급마다 역할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4급 보좌관은 정무, 정책을 맡거나 지역구를 챙긴다. 5급 비서관은 보통 의원실에서 정책 실무를 가장 많이 맡고 있다. 의원들이 속한 상임위원회의 피감기관 동향을 살피면서 상임위 회의 준비, 법안 발의 등을 도맡는 이들이 많다. 지역구를 관리하는 비서관을 따로 두기도 한다. 6급 이하 직원들은 보좌관, 비서관의 지시에 따라 정책 분야와 지역구 현안 챙기기, SNS를 통한 의원 홍보, 회계관리를 포함한 행정, 손님 접대 등 ‘갖가지’ 일을 나눠 맡는다.

크게 나눌 수 있을 뿐, 실제로 보좌진의 업무는 자로잰듯 나눌 수도 없고 한계도 없다. 세상만사가 다 국회로 모이게 되니 반복적인 일 외에도 언제 어떤 일이 맡겨질지 모르는 상태로 보좌진들은 생활한다.

국회의원의 출신이 다양하듯 보좌진들도 전공, 출신 모두 제각각이다. 과거엔 정치에 뜻을 둔 정치외교학과 전공자나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많이 유입됐다면, 최근 들어서는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들나 대기업을 다녔던 이들, 대학강사까지 각계의 ‘고급’ 인재들이 영입되거나 스스로 문을 두드린다.

보좌진이란 직업이 각광받는 이유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때문이다. 정책 제안을 하고 법안을 만들고, 정부 실정과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쳐 바로잡는 등 업무적 성취도가 높은 직업으로 꼽힌다. 야당의 한 현직 비서관은 “스포트라이트는 국회의원이 받지만 의원의 대본을 써주고 악보를 그려주는 건 우리들 몫”이라며 “법안이 통과되거나 국정감사에서 ‘한 건’ 했을 때는 말 못할 정도로 뿌듯하다”고 했다.

사회적인 시선도 좋은 편이다. 여당의 한 비서관은 “국회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왜 없겠나, 국회 밖 식당이나 술집에서도 일부러 국회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월급은 급수에 따라 260만원(9급 비서)에서 630만원(4급 보좌관)까지 차이가 있고, 여기에 정근수당과 명절휴가비 등 상여금도 있다. 수당은 근속연수에 따라서 달라진다. 한 전직 보좌진은 “연초면 정근수당(1월과 7월 지급), 설 수당이 나와 쏠쏠하다”고 전했다.

국감 땐 ‘과부하’…팩스 한 장으로 해고당하기도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여느 직업 못잖게 고충도 상당하다.

먼저 보좌진이란 직업은 계약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비정규직이란 점에서 불안정성이 크다. 의원은 국회사무처에 팩스 한 장을 넣는 것으로 보좌진을 즉각 ‘해고’(면직)할 수도 있다.

어떤 의원 밑에서, 어떤 보좌진들과 함께 일하게 될지도 복불복이다. 이 때문에 국회 직원들이 익명으로 모이는 페이스북 ‘여의도 옆 대나무숲’엔 의원과 동료를 ‘성토’하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지난 17일엔 한 현역 보좌진이 “의원들이 의정활동과 하등 관련 없는 온갖 잡다한 일을 보좌진에게 지시한다. 아침밥 차리기, 집 택배수령, 속옷 챙기기 등 일일 거론하기도 창피할 지경”이라며 “의원은 무슨 권한으로 보좌진을 사노비 마냥 업신여기나”라는 글을 남겼다.

일부는 ‘공노비’로도 칭하지만, 일부는 이처럼 ‘사노비’ ‘머슴’이라고 자조할 정도로 의원 보좌의 고충을 토로하는 목소리엔 여야가 없다. 지난 패트스트랙(신속처리 안건) 정국 때엔 ‘방패막이’ 논란이 일었던 자유한국당 보좌진들 사이에서 “우리가 이젠 용역까지 한다”는 말도 나왔다. 바른미래당의 한 비서관은 “의원실은 의원이 사장이고 나머지는 직원인 소기업과 같다”며 “의원 눈치보기와 심기 의전에 바쁜 방이 있고, 보좌진들간 알력다툼에 스트레스 받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의정활동의 꽃이라 불리는 국정감사 때는 보좌진들의 업무가 ‘과부하’ 상태로 치닫는다. 일부 의원은 성과를 못낸 보좌진들에 ‘물갈이’를 단행하는 때로, 보좌진들이 하나같이 심신 피폐를 호소하는 시기다. 한국당 한 보좌관은 “내가 가을 옷을 언제 샀는지 기억이 안나더라. 가을마다 국감하느라 회관에만 있어서 놀러갈 때 입을 옷은 필요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보좌진들 사이에서 ‘회사원’화를 경계해야 한단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10년 경력이 넘는 한 보좌관은 “요샌 세상을 바꾸겠다든지 하는 소명의식보단 어떻게 하면 안 잘리고 버틸까를 생각하는 직원들도 많아졌다”며 “특수공간인 국회를 일반 회사처럼 다니는 이들을 보면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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