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 영향을 묻는 한국의 애널리스트들에게 일본 반도체 소재기업이 보인 반응이다. 정치적 이슈가 기업에 아무리 불리하게 흐른다 해도 한국 기업들이 기술력이 뛰어난 일본 반도체 소재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란 뜻이다. 강한 자신감이 묻어나는 멘트다.
그런 일본 기업들을 만나고 온 두 애널리스트는 현상황이 오히려 한국 기업들에 기회라는 확신을 가졌다. 일본 기업이 이렇게 안일하게 받아들이고 있을때야말로 반도체 소재 국산화의 적기며, 차근차근 일본 제품을 대체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지난달 일본 소재기업을 탐방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온 NH투자증권의 김병연 글로벌투자전략팀장과 박주선 연구원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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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공식 제외한 지는 한 달, 한국향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출심사를 강화한 지는 두 달이 지난 시점인 지난달 중순. 김 팀장과 박 연구원이 일본을 찾았다. 박 연구원은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일본 통이고, 김 팀장은 오랫동안 투자전략을 짜면서 다양한 해외 변수를 분석해온 전략가다. 두 사람은 3박 4일의 일정으로 어드반테스트, THK, SUMCO, 나브테스코 등 반도체 소재 및 산업용 기계 관련 기업 10여곳과 만났고, JSR 등 기업과는 컨퍼런스콜을 진행했다. 또 미즈호종합연구소 등 일본 현지의 경제연구소와도 만나 백색국가 제외 관련 얘기를 나눴다. 참고로 산업용 기계는 아직 규제 대상은 아니지만 추가 규제시 피해가 클 뿐만 아니라 일본 의존도가 높은 분야다.
김 팀장은 “최근 기관투자자 사이에서도 소재 국산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일본 기업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며 “한국이 정말 국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국산화를 한다면 실질적으로 어느 기업부터 수혜를 입을지 분석하기 위해 일본 기업을 직접 찾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본 기업은 소재 국산화가 거래선 다변화의 시작인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박 연구원은 “일본 기업들은 ‘일본 제품이면 절대 안된다는 입장이냐 아니면 거래선 다변화로 가는 흐름이냐’고 물어왔다”며 “한국이 국산화를 통해 일본을 이기겠다고 하면 일본 기업들은 버틸 수 있다고 보는데, 거래선 다변화의 첫걸음이라면 걱정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기술력 격차는 상당해도…“일본이 안일한 지금이 국산화 기회”
일본의 기술력은 그들이 자신만만할 만큼 대단했을까. 두 연구원은 ‘솔직히 기술력 격차는 부인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온도·습도 및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제품의 카테고리나 글로벌 고객사와의 네트워크 레벨이 한 차원 높았단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력이 소재 국산화를 어렵게 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김 팀장은 “일본 기업들의 자신감은 바꿔 말하면 오만함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들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반격의 기회”라며 “당장 반도체 테스트장비 등은 한·일 간 기술격차가 적고, 이미 국내 기업들의 일부 공정에 이용되고 있어 국산화하는 데 부담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산업용 로봇 등 기술격차가 이미 상당히 벌어진 부분에 대해선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지원해주며 중·장기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소재 국산화보다도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줄어드는 것이란 전언이다. 2018년 방일 한국인 소비액은 5881억엔으로, 한국향 반도체 수출액 5214억엔보다 더 많은 까닭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에만 기댈 순 없는 법. 결국 소재 국산화 흐름은 지속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김 팀장은 “법원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을 강제로 매각하기 시작한다면 또 한·일 무역갈등이 커질 수 있다”며 “백색국가 제외 이슈가 다소 소강된 지금을 반격의 기회로 삼고 국산화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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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선 연구원은… △1991년생 △일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졸업 △2019년 NH투자증권 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