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혁신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 등록 2022-06-17 오전 6:15:00

    수정 2022-06-17 오전 6:15:00

[박용후 관점디자이너]얼마전 플랫폼 회사 대표들과 저녁자리를 가졌습니다. 각자 맡은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대표가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혁신에는 유효기간(expiration date)이 있는 것 같아요. 서비스 초창기 앱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고, 버튼 몇 번 눌러서 음식을 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하고 찬사를 보내던 이들이 이제는 그 기업을 질타합니다. 찬사와 열광이 왜 갑자기 찬기운이 도는 냉담한 반응으로 바뀌었을까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혁신에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순간 머리 속에 ‘번쩍’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비스 초창기 쏟아졌던 혁신에 대한 찬사는 일상의 습관이 되고나면 그 수명을 다하게 된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잊고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순간 깨닫게 된거죠.

예를 들어 ‘세상에 없던 은행’을 표방하며 세상에 선보인 카카오뱅크는 기존 은행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느낌으로 고객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고객들은 열광했습니다. 앱을 통해 택시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에, 음식에 대한 리뷰를 보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똑똑하고 편하게 주문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고객들은 고마워했고, 그 혁신의 주체들에게 응원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서비스들은 일상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혁신적인 대출비교 플랫폼으로 꼽히는 핀테크기업 핀다도 ‘세상에 없던’이라는 표현을 그들의 서비스 앞에 붙여 그들의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없다던 그 서비스도 일상의 습관 속으로 들어와 자리잡게 되면 그 혁신은 아주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 순간부터 ‘혁신의 유효기간’은 끝이 나게 되는거죠. 그래서 기업은 끊임 없이 관점을 바꾸고, 다르게 보기를 통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숙명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되나봅니다.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물론 수많은 조직이 한 목소리로 ‘혁신’을 외칩니다. 이렇게 우무쭈물하다가는 망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하던 일들을, 지켜왔던 것들을 바꿔보려고 엄청 애를 씁니다. 그래서 그런지 ‘혁신’이라는 단어는 우리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장하려는 주체들에게 무엇인가를 바꿔야 한다는 중압감은 어찌보면 본능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또한 세상이 바뀌는 속도를 체감하면 그 두려움과 중압감은 더 커지게 됩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혁신도, 성장을 위한 ‘혁신’도 ‘그것이 갖고 있는 본질(本質)과 핵심(核心)’을 망각하면 혁신에 대한 시도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세상에 없던 은행’도 ‘은행’이라는 본질을 벗어날 수 없고, 세상에 없었던 어떠한 혁신적인 서비스도 그 업(業)이 갖고 있는 본질을 벗어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즉 본질이 빗겨나간 혁신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본질이 가진 가치가 어떻게 바뀌고 진화하는지 핵심을 잘 살펴야 하고, 혁신을 통해 핵심가치의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어야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꿔야 한다는 거대한 중압감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실수가 바로 지나온 것들을 모두 싸잡아 ‘낡은 것’ ‘바꿔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되면 문제는 심각해지기 시작합니다. 자칫 좋은 쪽으로 바뀌기보다는 그간 잘 쌓아온 소중한 것들을 무너뜨릴수도 있습니다.

그들 앞에 있는 것들은 지나온 세월동안 그 주체 스스로가 힘들게 쌓아온 것들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으로 인해 성장하거나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들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다보니 더 중요한 것들이 생기고, 상황이 달라져 중요도나 가치가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지나온 것들을 모두 바꿔버려야 할 대상으로 삼는 경우 어쩌면 반드시 지켜야 할 보석같은 것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보석에 먼지가 쌓였다고 버리지 않는 것처럼 그동안 지켜왔던 것들이 보석인지 쓰레기인지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짜 보석이라면 먼지를 털어내고 반짝반짝 닦아 잃었던 빛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요. 혁신도 이것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혁신을 말할 때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먼저 정하라”고 조언합니다. ‘옛날 것을 연구하여 새로운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의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이라는 말도 이런 의미와 궤를 같이합니다. 혁신은 본질의 가치를 잊지 않으면서 같은 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혁신의 과정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선명한 이미지가 머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차근 차근 꾸준히 지치지 않고 바꿔나가야 미래는 바뀝니다. 그렇게 바뀐 미래를 우리는 혁신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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