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기로에 선 성동조선]②자구노력 막은 노조, 표만 바라본 정치권, 비전 없었던 정부

노조 반발로 인력 구조조정 실패
정치권, 정리해고 막고 자금투입 종용
정부, RG발급 지원 등 손놓아 결정타
구조조정 컨센서스 역시 마련 안해
고부가가치 선박 기술 부재도 한몫
  • 등록 2019-06-20 오전 6:00:00

    수정 2019-06-20 오전 8:48:52

성동조선해양 주요 일지 [그래픽=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김범준 김정남 기자] 성동조선해양(이하 성동조선)이 세 차례에 걸친 매각 추진 불발로 파산의 기로에 섰다. 성동조선에 8년여간 총 4조원이 넘는 사실상 국민 혈세가 투입됐지만 인공호흡기를 낀채 식물인간 상태로 연명하면서 결국 남은 것은 빚 잔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구조조정 난맥상의 축소판인 성동조선 사태를 빚은 ‘5적(敵)’을 짚어본다.

①기술 낙후

2004년 설립된 성동조선은 한때 수주잔량(CGT) 기준 세계 8위 조선사였다. 하지만 후발주자인 중국 조선사들의 맹추격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0년 정홍준 창업주 겸 회장이 경영난에 대한 책임으로 물러난 뒤 그해 4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성동조선은 원유나 석유제품을 운송하는 중대형 탱커 등 일반상선이 주력이었는데, 중국 조선사들이 값싼 인건비를 무기로 시장을 장악해버렸기 때문이다.

손실이 나는 염가 수주를 통해서라도 유지해 보려고는 했다. 그러나 갈수록 부채는 늘고 수주 건수는 줄었다. 결국 성동조선의 신규수주는 2016년 이래 계속 ‘0건’이다. 성동조선은 최근 발주가 늘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선과 친환경 선박을 만들어본 경험도 기술도 없다. 이 때문에 국내 대형 조선사들처럼 재기를 꿈꾸기 어렵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잇단 성동조선 매각 유찰은 결국 기술력이 도태되면서 독자 생존할 경쟁력을 모두 잃어 기업가치가 없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②강성 노조

성동조선 노조의 근시안적인 태도도 골든타임을 놓친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노조의 입김은 지난해 법정관리 이후에도 계속됐다. 산업경쟁력강화 관계 장관회의(산경장)에 제출된 외부 컨설팅 보고서는 성동조선의 기능 조정을 위해 당시 1200명이던 인력을 400명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고정비를 줄여 매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것이다. 지난해 4월 법원이 회생절차를 시작하자 성동조선은 자체 인력 구조조정안을 내놓고 400여명으로부터 희망퇴직을 받았다.

희망퇴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정리해고 절차에 들어가자, 성동조선 노조와 지역 노동계는 크게 반발하고 나왔다. 결국 인력 구조조정에 실패하는 결과는 낳았고, 이는 세 차례 매각이 무산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한 인수·합병(M&A) 전문가는 “(성동조선에) 관심을 보였던 인수 의향자들은 하나같이 과잉 인력과 강성 노조를 부담으로 꼽았다”며 “노조의 비협조적 태도가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③정치권 압력

노동계의 반발 뒤에는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셈법도 깔려있었다. 지난해 지방선거로 당선된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발언은 상징적이다. “성동조선의 회생을 위해 희망퇴직을 추가로 할 필요는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고는 안 됩니다.” 이같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 이후 구조조정에 있어 노조 측에 힘이 실렸다는 분석이 팽배했다.

문재인 정부 뿐 아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성동조선을 살리기 위해 2010~2015년 2조7000여억원의 신규 자금이 투입된 데에도 지역·인적 관계가 있는 정치인들이 채권단을 압박해 지원을 이끌어 낸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따른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당시 금융권에서는 ‘성동조선에 지원하면 나중에 큰일난다’는 경고가 많았다”며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에서 (성동조선을) 어떻게든 지원해서 살려야 한다는 기조였기 때문에 시장논리에 어긋나더라도 정책금융으로 부었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④무능 정부

시장 논리가 아니라 노조와 정치권에 휘둘려 중소 조선업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갖지 못했던 정부의 무능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특히 신규 수주에 꼭 필요한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성동조선의 경영 정상화 역시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 판단이 없는 상황에서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채권단은 RG 발급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2월 2차 매각 당시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한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는 채권단의 안정적인 RG 발급이 거절되자 곧장 인수를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 교수는 “민간이 섣불리 할 수 없는 분야에 대한 정부의 역할과 지원은 분명히 필요하다”면서도 “그렇다고 시장경제가 정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⑤옛날식 구조조정 문법

“쓰러져가는 기업을 정부가 붙잡고 있으면 업황 회복기에 다시 살려낼 수 있다.” 과거 고속성장 과정에서 산업계에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던 논리다. 정부와 정치권, 노조 등의 입김이 먹힐 수 있었던 건 전통산업이 주류를 이루던 때의 구조조정 문법이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산업구조 자체가 바뀌는 대변환기라는 분석이 많다. 전통산업에 인공호흡기를 꽂고 마냥 기다리는 천수답식(式) 구조조정은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다.

신성환 한국금융학회장(홍익대 경영학부 교수)은 “구조조정에 임하는 국가기관의 인센티브는 성동조선을 회생시키거나 자금 회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게 아니라 일단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본다”며 “시장이 최선을 다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을 존중하고 밀어붙이지 않으면 구조조정 문제를 풀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회 전반에 시장논리를 중심에 두는 구조조정 컨센서스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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