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고시원서 화재 8명 사망

지하 노래방 불, 순식간에 고시원으로
“기름 냄새 심하게 나” 방화 가능성
대부분 스티로폼 탄 가스에 질식사
  • 등록 2006-07-20 오전 7:50:28

    수정 2006-07-20 오전 9:28:25

▲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4층짜리 고시원 건물 지하 노래방에서 화재가 발생해 고시원 거주자 등 8명이 숨졌다.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관이 고시원 밖을 내다보고 있다.
[조선일보 제공] 숙소로 편법 운영된 고시원의 밀집된 구조가 대형 참사를 불렀다.

잠실의 4층짜리 고시원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는 지하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길이 시작됐지만, 정작 피해는 3·4층에 거주하던 고시원 거주자들이 입고 말았다.

고시원의 빽빽한 방들과 비상구마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건물 구조 속에서 불길과 연기는 계단을 타고 올랐고, 고시원 거주자들은 퇴로가 없었다. 고시원에는 밤에 일하고 낮에 쉬는 일용직 근로자, 유흥업소 종업원 등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어서 대낮에 발생한 화재에도 피해가 컸다.

◆부상자, 대부분 추락하다 다쳐

현재 대치동의 베스티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부상자는 7명. 대부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어 대화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고시원 주인 부부인 이광수(68)씨와 아내 정영자(65)씨는 3층에서 뛰어내려 목을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아들 이모(43)씨는 “너무 순식간에 연기가 올라와서 계단으로 내려갈 수가 없었고, 창문으로 뛰어내렸다”며 “어머니는 당시 충격으로 인해 의식이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기를 확인하러 직접 계단을 내려가던 고시원 총무는 목숨을 잃었다고 증언했다.

서울의료원에 입원한 김모(여·38)씨는 “화장품 영업을 하다가 잠시 쉬러 고시원에 들어왔다 연기가 시커멓게 올라오자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리다 다쳤다”고 말했다.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뷰티예술학부 휴학 중인 배영비(20)씨. 작년 초 경남 거제에서 올라와 근처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고, 메이크업 학원에서 특수분장을 배우던 학생이다. 화재 당시 이웃주민들이 사다리를 놔줬지만 1층까지밖에 닿지 않아 결국 3층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현재 뇌출혈로 수술을 받고 있다.

화재 당시 고시원에는 35명이 있었다. 이 중 16명은 안전하게 빠져 나갔고 8명은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안전하게 빠져나간 16명 중 3명은 주민들이 사다리를 1층 가게의 간판에 대고 아슬아슬하게 구해낸 사람들이다.

신천역 주변 유흥가 근처에 자리잡은 이 고시원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곳을 값싼 월세방처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3층은 여성 전용 고시원으로 주로 20대가 거주했고, 4층은 남자 전용 고시원으로 40대 이상도 많이 살고 있다고 했다.

◆경찰·소방당국 “방화 가능성 크다”


▲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 4층짜리 건물에서 불이 난 뒤 이 건물 3~4층 나우고시텔에 살던 한 여성이 이웃주민에 의해 구조되고 있다.
이번 불은 방화로 추정된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3가지 이유를 들었다.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때 노래방에서 기름냄새가 심하게 났고, 불길이 10분도 안 돼 순식간에 치솟아 4층까지 올라갔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또 “노래방 업주가 만취상태에서 횡설수설했다”고 전해 업주에 의한 방화나 실화로 불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목격자들의 진술과도 일치한다. 한 목격자는 “불이 나자마자 양복을 입은 2명의 30대 남자가 심하게 다투면서 노래방에서 올라온 것을 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노래방 주인이 술에 취해 노래방을 빠져 나온 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2층에 있던 건설회사 직원인 신모(60)씨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유리 출입문 사이로 불길과 연기가 순식간에 구름처럼 몰려와 ‘불이야’라고 소리치면서 직원들이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 송파경찰서는 이날 브리핑에서 “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과학수사팀에서 나와 정밀감식을 한 뒤에야 발화 원인에 대해 특정해서 말할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벌집’ 고시원이 또 대형참사

갑작스러운 불이었지만 대형참사가 난 데는 고시원의 고질적인 ‘벌집’ 구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고시원은 천장이 2m가 조금 넘을 정도로 낮고 2평짜리 작은 방이 3층에 34개, 4층에 36개 있을 정도로 밀집돼 있었다. 한 소방관은 “고시원에 올라가 봤더니 벽들은 불연재도 쓰지 않고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며 “이런 구조에서는 불이 닿기만 해도 순식간에 번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3층에서는 방 안에서 불길을 피하지도 못하고 숨진 사람이 3명이나 됐다. 스프링클러나 소화기 등 화재를 막는 장비는 제대로 배치돼 있지도 않았다.

주민들은 노래방의 과도한 인테리어 때문에 질식가스가 더욱 많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김모(여·52)씨는 “이 노래방은 일반 노래방과는 달리 각 방을 에스키모 이글루(얼음집)처럼 꾸며 놓았고, 방 안은 천으로 된 소파와 나무·식탁을 비롯해 가연성 물질로 꾸며져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노래방의 내부 인테리어는 대부분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스티로폼이 기름과 함께 타면서 검은 매연을 계속해서 위쪽으로 뿜어냈다. 사망자들은 대부분 이 매연에 질식했다. 한 주민은 “안전점검만 제대로 했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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