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교수가 새해 던지는 사유…허무란 무엇인가

‘질문하는 학자’의 화두는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사는 법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308쪽|사회평론
  • 등록 2023-01-11 오전 6:40:00

    수정 2023-02-08 오전 2:42:06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사상사 연구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묻는 사람’이다. 한국 사회에 ‘OOO은 무엇인가’란 화두를 던져 온 그는 질문을 통해 본질에 닿으려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그가 이번에는 새 질문을 들고 돌아왔다. 최근 출간한 인문에세이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사회평론)에서 꿈 앞에 번번이 좌절하는 인간이 허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모색한다.

전 지구적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3년째 이어지고 있고, 전쟁의 고통과 장기 불황의 불확실성으로 삶의 고단함이 현실을 잠식하고 있는 틈. 마침 이 타이밍에 ‘허무’라니…. 2023년 읽어볼 만한 첫 책으로 이만큼 시의적절한 도서가 또 있을까 싶은 것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사진=사회평론).
책은 인류의 보편적 문제인 ‘허무’에 대한 오랜 사유의 결과물이다. 삶의 허무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함께할 것인지 김영민만의 시선으로 포착하고 재해석했다. 작가가 애초에 “허무와 더불어 사는 삶을 주제로 산문집을 내겠다는 마음”을 먹고 발표해 온 글들을 엮었다.

최근 서울 선릉역 인근 북토크 현장에서 만난 김 교수는 인생을 가리켜 “허무하다”고 직설했다. “허무가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면서도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출발은 중국 북송(北宋) 시대 문장가인 소식(소동파)의 ‘적벽부’에서 영감을 얻었다. 책이 문학과 그림, 영화 등 수많은 예술 작품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서문에 “허무와 직면한 내 생각의 기록인 동시에 ‘적벽부’에 대한 유연한 주석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이유다. 부록에는 ‘적벽부’의 원문과 함께 김 교수가 직접 해석한 ‘번역문’이 실려 있다.

‘적벽부’는 소식이 유배 시절 양쯔(揚子)강을 유람하며 지은 글이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그 유명한 ‘적벽대전’을 회상하며 장구한 자연과 달리 짧고 덧없는 인생을 깨닫고 시름을 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류의 보편적 주제인 허무를 다룬다.

소식(蘇軾·1037~1101)이 ‘적벽부(赤壁賦)’를 지은 것은 유배지에서였다. 유배지에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마음도 달랠 겸 해서 친구들과 함께 임술년(1082년) 음력 7월 16일에 적벽을 찾아 뱃놀이를 한 후 ‘적벽부’를 지었다. ‘적벽’은 조조(曹操)와 주유(周瑜)가 ‘적벽대전’을 치른 곳으로 유명한 장소인데, 소식은 이곳에서 영웅들의 과거 모습을 회상하면서 인생무상을 노래한다.

작중 화자인 소식은 ‘손님’과 함께 적벽 아래 배를 띄워 노닐면서 술 잔을 기울인다. 손님은 한때 ‘일세의 영웅’이었다 몰락한 조조의 운명을 떠올리며 삶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절감한다. 이에 소식은 “불변의 관점에서 보자면 만물과 나는 모두 다, 달리 무엇을 부러워하리오?”라며 “밝은 달은 귀가 취하면 소리가 되고, 눈이 마주하면 풍경이 되오. (중략) 이것이야말로 조물주의 무진장(고갈되지 않는 창고)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길 바이외다”라는 답을 들려준다.

김 교수는 인간에게 희망, 선의, 의미가 언제나 삶의 정답은 아니라고 말한다. “‘허무하니까 인간이 비참하네’가 아니라 ‘허무해도 삶은 향유할 만하다’는 긍정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책에 쓴 문장처럼 ‘허무는 영혼의 피 냄새’와 같은 것이고,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며 “이게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 같은 것이라면 잘 응시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인간은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인 만큼, 이 진실을 직시하면 여러 세속적 가치나 명예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차가운 직시야말로 허무와 공존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는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란 제목을 붙였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자신을 ‘산책 중독자’라고 전한다. 다만 어떤 목적을 갖고 산책에 나서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나는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삶을 살고 싶지, 삶이란 과제를 수행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한다.

“사람마다 다양한 재능이 있습니다. 혹자는 살아남는 데 일가견이 있고, 혹자는 사는 척하는 데 일가견이 있고, 혹자는 사는 데 일가견이 있죠. 잘 사는 사람은 허무를 다스리며 산책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의미 없는 루틴으로 채워진 일상은 삶의 리듬을 부여하잖아요. 그런 삶을 원합니다.”

김영민식의 유머와 통찰 덕분에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게 인생의 허무와 마주하며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에 미처 싣지 못한 그림들과 적벽부 해석을 담은 확장판 ‘인생의 허무를 보다’(사회평론)도 최근 펴냈다. 2023년 새날에는 “‘중꺽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가 아닌, 마음 같은 건 좀 꺾여도 된다”고, “목적 없는 삶도 때론 괜찮다”며 스스로를 돌보게 하는 ‘인생의 책’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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