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간·묘지 위에 판자집 짓고 살았던 피란민[알면 쉬운 문화재]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세계유산 잠정목록 올라
'우암동 소막 피란 주거지' 등 9건
한국전쟁기 1023일 동안 피란수도 역할
당시 역사적 상황 간직한 유물…보존 가치 있어
  • 등록 2023-10-28 오전 7:00:00

    수정 2023-10-28 오전 7:00:00

우리 ‘문화재’에는 민족의 역사와 뿌리가 담겨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듯이 수천, 수백년을 이어져 내려온 문화재는 우리 후손들이 잘 가꾸고 보존해 나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죠. 문화재는 어렵고 고루한 것이 아닙니다. 문화재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쉽고 친근하게 배울 수 있는 문화재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부산에는 소막사(외양간)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주택과 일본인 묘지 위에 지어진 주거지가 있어요.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만든 마을인 ‘우암동 소막 피란 주거지’와 ‘아미동 비석 피란 주거지’인데요. 최근 이 두개의 유산을 포함한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Sites of the Busan Wartime Capital)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리면서 세계유산센터 공식 누리집에 게시됐어요. ‘세계유산 잠정목록’은 앞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예비목록이에요. 최종 등재를 위해서는 문화재청의 우선등재목록 선정을 비롯해 등재신청 대상 선정, 유네스코 현지 실사 등 국내·외 절차들을 거쳐야 합니다.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은 피란수도의 정부유지와 피란생활, 국제협력 기능을 수행했던 9개 연속 유산으로 구성돼 있어요. △경무대 △임시중앙청 △아미동 비석 피란 주거지 △국립중앙관상대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기지 △유엔묘지 △우암동 소막 피란 주거지 등인데요. 해당 유산들은 한국전쟁기의 급박한 상황에서 피란수도로서 기능을 해온 부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특출한 증거물이에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유물들이기에 보존 가치가 있죠.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발발했던 한국전쟁 기간 부산은 무려 1023일 동안 ‘피란수도’로서 역할을 했어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던 부산은 주택과 식량이 부족한 상황을 감내하며 수십만 명을 품는 포용력을 보여주었죠.

‘우암동 소막 피란 주거지’(사진=문화재청).
묘지 위에 조성된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는 피란민들의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드러나는 상징적인 유산이에요. 1906년 일본인 공동묘지로 처음 조성됐다가 해방 이후 방치된 묘지 시설을 피란민들이 사용했죠. ‘비석주택’은 생존을 위해 일본인 공동묘지의 석축 위에 판자, 신문지, 포장지 등을 사용해 지은 판자집이에요. 피란민의 긴박했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구조물이죠. 기존 일본식 묘지의 축대나 구조물을 크게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했고, 지금도 주민들이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어요.

‘우암동 소막 피란 주거지’에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소막사 등 40여 동의 공간을 피란민들의 거주 공간으로 활용했어요. 초기에는 집 밖에 부엌이 있었고, 바깥의 공동화장실을 사용할 정도로 열악했어요. 휴전 이후에는 부산 인근의 피란민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피란민 마을을 형성하게 됐죠. 소막마을은 현재까지도 원형의 틀을 유지하고 있고 주변의 골목길, 우물 등은 당시 피란생활상을 온전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피란민과 그 후손들을 포함한 주민들도 여전히 그 일대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사진=문화재청).
‘경무대’와 ‘임시중앙청’은 피란수도의 정부 기능을 상징하는 유산들이에요. ‘경무대’는 한국전쟁 당시 급박하게 부산으로 이동한 대통령의 관저, 집무실, 각종 외교 업무공간으로 긴급 활용됐어요. ‘임시중앙청’은 국정 최고 의결기관을 비롯해 다수의 정부 핵심 부처가 사용했던 유산이죠. 피란수도의 정부중앙청사로서 피란민에 관한 정책들이 입안·실행된 장소였어요.

부산 남구에 있는 ‘유엔묘지’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군 전사자 묘역이자 한국전쟁 당시 참전용사들에 대한 추모가 이뤄지는 장소예요. 현재 한국군 37명을 포함한 11개국 2300여 구의 유해가 안장돼 있어요. 기상을 관측·조사했던 정보 발신처 ‘국립중앙관상대’와 구호물자가 입항했던 ‘부산항 제1부두’, 국제원조와 군사작전수행의 핵심 시설이었던 ‘하야리아기지’ 등도 당시 피란수도로 기능했던 부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긴급히 대통령 관저로 사용했던 ‘경무대’(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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