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세계시민] 나치 학살의 또 다른 희생자들

  • 등록 2024-01-15 오전 6:25:00

    수정 2024-01-15 오전 6:25:00

[이희용 언론인·본사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1월 27일. 소련군의 한 부대가 폴란드 남부 아우슈비츠(폴란드어로는 오시비엥침)의 강제수용소에 들어섰다.

‘ARBEIT MACHT FREI(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적힌 정문을 지나자 부대원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피골이 상접한 수천 명의 병자였다. 수용소 곳곳에는 사람의 뼛가루와 머리카락 등이 자루에 담겨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수백 구의 시신도 발견됐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인체에 치명적인 청산가스 치클론B가 다량으로 발견된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인명을 살상하려고 독가스를 사용한 흔적이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1933년 3월 뮌헨 인근에 다하우수용소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독일과 점령지역에 수십 곳의 강제수용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강제노역과 교화, 정치적 반대자와 유대인 등의 격리가 목적이었다가 1942년부터는 대량 학살을 위한 이른바 절멸수용소를 지었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된 사람은 모두 3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유대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나치 수용소에서 이뤄진 집단 학살을 홀로코스트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120만 명가량의 희생자를 낳은 아우슈비츠는 홀로코스트의 상징으로 꼽힌다.

학살의 진상이 드러나자 인류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희생자 규모나 학살 방법도 놀랍고 끔찍하지만, 특정 민족이나 사회적 약자 등을 혐오 대상으로 낙인찍어 아예 말살하려고 한 것은 문명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토록 잔인한 악행에 선량한 이웃과 평범한 사람들이 가담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웠다.

이 사건은 수많은 보고서와 논문 등을 통해 분석되고 조명됐으며, 문학·연극·미술·음악·영화·방송다큐멘터리 등으로 꾸며져 널리 알려졌다. 가해자인 독일은 지금까지도 반성과 추모를 거듭하고 있고, 모든 국제사회도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고 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정문. ‘ARBEIT MACHT FREI(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적혀 있다.
2차대전 종전 60주년을 맞은 2005년 11월 1일, 유엔총회는 소련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진주한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로 제정하고 이듬해 첫 행사를 열었다. 오는 27일은 아우슈비츠 해방 59주년 기념일이자 제19회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이다.

나치의 광기에 희생된 집단이 유대인만은 아니었다. 러시아인·폴란드인·세르비아인 등 슬라브족, 공산주의자, 집시, 장애인, 동성애자, 여호와의 증인 신도 등이 독가스실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기억은 선택적이고 역사는 기억과의 전쟁이다. 유대인들은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 적극적인 선전과 홍보, 끈질긴 전범자 추적, 유대인에 대한 서양인들의 오랜 부채 심리 등을 동원하고 활용해 자신들을 제노사이드(종족 학살)의 대표 희생양으로 부각하는 데 성공했다. 홀로코스트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건국도 어려웠을지 모른다.

반면에 숫자도 적고 힘도 없고, 심지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고 무시당하는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의 희생은 아무도 추모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 베를린의 쥘터호텔 앞 버스 정류장에는 이곳이 전범자 아이히만이 대량 학살을 지휘했던 장소임을 상기시키는 사진과 설명이 붙어 있다. 옆에는 18세기 유대교 랍비 발셈 토프의 설교 문구가 새겨져 있다. “구원의 비밀은 기억에 있다”

이제는 유대인 말고 다른 학살 피해자들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과 혐오, 테러와 학살을 멈출 수 있다. 그것이 모든 인류가 구원받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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