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수의 경세제민]규제완화시 명심해야 할 것

  • 등록 2022-07-14 오전 6:15:00

    수정 2022-07-14 오전 6:15:00



[유지수 국민대 전 총장·명예교수] 요즘 경제적으로 대내외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현상에 시달리며 경기침체에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주요 정책수단의 하나로 윤석열 정부는 규제철폐를 논의중이다.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철폐하게 되면 당장의 효과는 어떨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하다.

다만 규제철폐를 추진하면서 명심해야 할 사안이 있다. 당장의 가시적 실적보다는 어떤 경우에 어떤 규제를 선별적으로 완화할것인지 또는 아예 폐지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무분별하게 규제를 철폐하다 보면 자칫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규제완화나 폐지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만 여기에 시장참여자들의 정직성과 도덕성도 깊이 고려해야 한다.

한때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이 경제를 살릴 전가의 보도인 것처럼 여기던 때가 있었다. 1990년대말 2000년초 ‘닷컴 버블’ 땐 인터넷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묻지마 투자금이 몰려 들어왔다. 이러다 보니 상당수 기업이 회사 간판만으로 투자를 유치하려고 했다. 물론 이 중 일부는 실적을 내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기업이 성장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중도에 거품이 꺼지며 소멸했다.

세상을 변화시킬 경이적인 기술로 소개되는 기술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요즘에는 기술에 대한 과대평가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는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실현 가능성이 낮은 기술을 과대 포장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수년 전 미국에선 투자업계를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피 한 방울로 여러 개의 건강검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었다고 해서 1조원 가까이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이 있었다. 결국 이는 거짓으로 밝혀졌고 여기에 투자한 많은 사람이 손실을 입었다. 해당 스타트업의 창업자는 엘리자베스 홈스로 한 때 ‘여자 잡스’로도 불렸다. 사람들은 그녀의 학벌(스탠퍼드대 중퇴)과 화려한 언변, 지적인 외모에 현혹됐다. 만약 당시 언론이 이를 집중 취재해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피해자는 천정부지로 늘어났을 것이다.

규제완화 시에는 이를 악용하려는 기회주의자들의 활동 범위를 오히려 확대해주는 게 아닌지 항상 경계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잠재적 범법자로 보는 것도 문제인 것처럼 모든 사람이 정직하다는 가정 아래 규제를 푸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규제를 풀어도 정직하고 건전한 경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확신 하에 이를 추진해야 한다. 거짓과 왜곡은 민주주의는 물론 자본주의의 가장 큰 적이다.

이는 도박과 투기를 통한 경제성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가상화폐와 같은 새로운 경제 수단의 출현도 마찬가지다. 가상화폐가 과연 국가·사회·시민에게 긍정적 효용을 주는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지금은 금융기관을 통해 정부 규제의 틀 속에서 모든 금융거래가 이뤄진다. 가상화폐는 금융기관과 정부의 중앙통제를 벗어나 개인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가상화폐는 이상주의자가 만든 제도이지만 이마저도 기회주의자들에게 악용당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기회주의자들은 돈벌이를 위해 시장을 교란한다. 가상화폐도 이들의 돈벌이 대상이 되자 일확천금의 마케팅에 현혹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기존의 금융권에선 상상조차 못했던 높은 수익률에 이성을 잃고 유혹에 빠져든 셈이다. 그러나 높은 수익률은 항상 위험을 수반한다. 테라와 루나가 전형적인 사례다. 애초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예치금에 최대 20%란 터무니없는 이자를 제공한 것이 화근이었다. 테라와 루나와 같이 알고리즘으로 수요 공급을 조절하는 기법은 이미 다른 가상화폐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더 많은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코인을 예치하면 돈을 주는 소위 ‘앵커프로토콜’에 20%란 비현실적 이율을 제공한 것이 화근이 돼 결국 몰락하게 됐다.

가상화폐가 마치 탈중앙화로 인간에게 거래의 자유를 줄 것처럼 포장한 사람들은 건전한 경제 생태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가상화폐의 가치도 ‘떼돈을 벌고자 한 사람들에게 플랫폼을 만들어 줬다’는 것 외에는 달리 찾기 어려울 정도다. 가상화폐 공간에는 가상화폐의 거래와 인증방법에 관한 투자자들이 알 수 없는 어려운 용어들로 가득 차 있다. 가상화폐 거래는 중앙통제 시스템이 없어 거래의 기록·인증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복잡한 절차와 생소한 용어가 만들어진 셈이다.

블록체인도 거래를 기록하기 위한 디지털 장부에 불과하다. 남을 현혹하려는 사람일수록 투자 유치 시 복잡한 용어를 써서 자신을 혁신가로 포장한다. 이런 이유로 정책결정자들은 알고리즘 등의 기술적 용어에 현혹돼 무분별하게 규제를 풀어주면 안 된다. 자칫 2000년대초의 닷컴버블 때처럼 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건전한 경제 생태계에선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가능하면 시장 참여자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규제만 작동하는 게 좋다. 그러나 기만과 한탕주의가 언제든 경제 생태계에 만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손질은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규제완화는 정직하고 건전한 시장 참여자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다. 규제완화가 대세인 만큼 실적내기에 급급해 무작정 규제를 풀어준다면 기회주의자들에게 활개 칠 공간만 내주게 된다. 규제를 완화하 든 아예 규제를 철폐하든 건전한 경제성장이 가능하도록 그 어느 때보다 현명한 판단력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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