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마켓워치]<20>저무는 인텔 제국, 기로에 선 삼성

7나노 공정 지연 공식화한 인텔, 10나노 이어 또 굴욕
공정 미세화서 최적화로 전환 후 `기술의 인텔` 흔들
AMD보다 공정 몇세대 뒤처져…파운드리 위탁 불가피
`누구에게 맡길까` TSMC와 삼성전자 놓고 저울질
TSMC 밀어주기보단 양분 가능성…삼성에도 중대기로
  • 등록 2020-08-01 오전 7:15:11

    수정 2020-08-01 오전 7:15:11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7나노미터 공정이 충분한 수율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이에 기반한 중앙처리장치(CPU) 제품 생산이 당초 예상보다 6개월 정도 미뤄지게 됐습니다. 자체 공정에도 계속 투자하겠지만, 외부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있었던 인텔의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밥 스완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이 같은 발언을 한 뒤 전 세계 반도체산업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실적 발표일 정규장을 60달러 수준에서 마친 인텔 주가는 연이어 하락세를 보이며 47달러선까지 주저 앉았습니다. 1주일만에 주가가 20% 이상 하락한 겁니다. 반면 CPU에서 치열한 경쟁관계인 AMD 주가는 같은 기간 59달러에서 78달러까지 32%나 올랐습니다. 주로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인텔과 경쟁하는 팹리스(Fabless)업체 엔비디아 주가도 5% 가까이 올랐습니다. 그뿐 아니라 제품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든 영엽에 관여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의 양대축인 삼성전자 주가도 7% 올랐고,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TSMC도 17.4% 상승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텔 주가만 빠졌고 인텔과 경쟁하거나 협력하는 다른 반도체업체들은 일제히 상승세를 탄 셈입니다.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경쟁자의 불행은 나의 행복인 것은 당연한 것이고 심지어 협력사의 불행도 나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잠재적 행복이라는 게 절감되는 상황입니다.

사실 1992년 세계 최초 64메가비트(Mb) D램 개발을 삼성전자에 넘겨주고 연말 D램시장 세계 1위 자리를 넘겨주는 고비도 있었지만, 인텔은 IDM에서 끝내 왕좌를 되찾는 등 창사 이래 50년 이상 `반도체 제국`의 철옹성을 쌓아왔습니다. 그러던 지난 2016년 반도체 공정 미세화와 설계도인 아키텍쳐(기간기술)를 교대로 향상시킨다는 이른바 `틱톡전략`을 폐기하면서 인텔의 위상은 흔들렸습니다.

당시 인텔은 수익성과 공정 최적화에 집중하는 `파오(Process-Architecture-Optimization)전략`으로 이를 대체했습니다. 당시 공정이 10나노 이하까지 정밀화하면서 더이상 불화아르곤(ArF) 기반의 노광장비를 쓸 수 없게 되자 파운드리업체들은 네덜란드 ASML사가 독점 공급하는 극자외선(EUV) 장비를 경쟁적으로 들여왔습니다. 반면 다른 팹리스 물량을 받아오는 파운드리와 달리 자체 제품만 생산하는 인텔에게 대당 2000억원에 육박하는 이 장비는 가성비 낮은 사치품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파오전략은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인텔의 파오전략을 깬 건 대만 TSMC, 한국의 삼성전자와 같은 파운드리업체들이었습니다. 이 두 업체는 치킨게임을 불사할 정도로 한 해 수십조원씩을 써가며 공정의 초미세화 경쟁을 벌였습니다. 인텔에 한참 못 미치던 AMD는 이들 파운드리에 아웃소싱한 덕에 7나노 공정 CPU를 인텔보다 먼저 시장에 내놨습니다.

인텔과 AMD의 CPU시장 점유율 추이


지난 2017년까지만 해도 데스크톱 CPU에서 20% 약간 넘는 시장점유율에 그쳤던 AMD는 올 2분기에 46.8%로 인텔을 턱밑까지 따라 잡았고, 모바일(노트북)시장에서도 2018년 8%에서 올 2분기 14%까지 올라섰습니다. 그나마 보수성이 강한 서버용 CPU에서 인텔은 여전히 95% 가까운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공정 차이가 벌어질 경우 이 시장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인텔은 아직까지 10나노 공정 CPU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인텔은 10나노 제품 출시 일정을 연기한 데 이어 이번에 7나노 공정까지 6개월 늦추면서 미세공정에서는 AMD에 한참 떨어지는 경쟁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인텔은 특유의 설계기술 덕에 10나노 공정에서도 제품 회선폭이 경쟁사의 8나노을 보이고, 7나노에서는 경쟁사의 5나노와 맞먹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미세공정에서 몇 세대나 뒤떨어진 건 현실입니다.

실제 TSMC는 올 하반기에 퀄컴과 애플 칩을 5나노 기반으로 양산할 계획이고 2022년이면 3나노 기반 제품도 출시하겠다고 호언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이번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2분기 중에 5나노 양산에 착수했고 4나노 공정도 개발하고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반면 당초 2021년 중으로 약속했던 인텔의 첫 7나노 공정 칩 출하는 2022년말 또는 2023년초에나 가능하게 됐습니다. 스완 CEO는 “7나노 양산 시기가 미뤄진 만큼 고객들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우선 10나노 생산규모부터 늘리는 작업을 진행하겠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수세에 몰린 인텔의 선택은 결국 자체적으로 칩을 설계한 뒤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파운드리에 생산을 위탁하는 AMD나 엔비디아와 같은 길을 가는 식이 될 것 같습니다. 이미 기술력 경쟁에서 참패를 맛 본 인텔도 이런 가능성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번 컨퍼런스 콜에서 스완 CEO는 “향후 공정기술 로드맵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지만, 고객들에게 최고의 예측 가능성과 제품 성능을 제공하기 위해 자체 공정이 아닌 외부 파운드리를 활용한 공정, 또는 이 둘을 혼합한 방식을 모두 고려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파운드리를 활용해 뒤쳐진 미세공정을 단번에 따라잡으려 하는 것이죠.

올 2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흥미로운 건 인텔이 생산을 맡길 외부 파운드리업체가 어디일까 하는 대목입니다. 최근 파운드리업계 50% 이상 점유율을 독식하는 TSMC와 20% 약간 못미치는 점유율로 그 뒤를 좇고 있는 삼성전자 주가가 동시에 상승하는 건 이들 두 업체가 인텔 아웃소싱의 수혜가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파운드리시장에서의 경쟁력이나 기술력 등에서 TSMC가 앞서 있는 건 사실입니다. 특히 자국 언론 등까지 나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습니다. 지난주 대만 언론들은 인텔이 내년부터 CPU와 GPU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TSMC 7나노 공정을 최적화함으로써 6나노로 18만장의 웨이퍼를 위탁생산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미 AMD 제품을 위탁 생산하고 있는 TSMC는 인텔 물량까지 확보해 파운드리시장에서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크게 벌릴 수 있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인텔 물량을 모두 가져간다면 TSMC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70%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7나노 공정 수율도 확보하지 못한 인텔이 곧바로 6나노를 적용하기로 했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목으로 보여집니다. 특히 자존심 강한 인텔이 GPU는 몰라도 CPU까지 단번에 아웃소싱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그런 관측에 한몫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SMC가 인텔의 낙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정황들은 더 있습니다. 지난 6월 블룸버그가 보도했듯이 TSMC는 이미 5나노 공정을 적용해 한 달간 2만장의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는 120억달러 짜리 파운드리 공장을 애리조나에 건설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 공장 예정지는 인텔 애리조나 공장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내 공장 건설에 있어 최대 변수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현재 미국 정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대만 공장보다 더 들어가는 미국에서의 초과 생산비용을 메워 줬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리우 회장의 얘기대로라면 현지 공장 설립이 거의 임박한 셈인데요. 만약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인텔 입장에서는 자사 애리조나 공장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확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TSMC로서는 미국으로부터 보조금을 확보하고 미국 내 매출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이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TSMC는 최근 미국 정부의 화웨이 규제에 호응해 최대 고객인 화웨이로부터 신규 수주를 전면 중단했을 정도로 미국 편에 선 상황이라 정치적인 명분도 얻은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TSMC가 이미 삼성전자를 따돌리고 인텔 물량을 다 가져갈 것이라 보긴 어렵습니다. 우선 인텔이 TSMC에 7나노든, 6나노든 아웃소싱 물량을 준다 해도 TSMC가 이를 다 받아낼 유휴 생산능력이 되느냐 하는 점입니다. TSMC는 이미 인텔 경쟁사인 AMD의 7나노 CPU를 위탁생산하고 있는데 AMD는 내년에 추가 물량(20만장)을 맡겨 TSMC의 최대 고객사로 올라서겠다는 계획입니다. 또한 내년엔 5나노 애플 칩까지 위탁 생산해야 합니다. 이미 라인이 풀 가동되고 있는 TSMC로서는 화웨이 물량이 빠진다 해도 인텔의 대규모 물량을 다 받아내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애리조나 공장 건설 공사를 당장 시작한다 해도 가동은 2024년 쯤으로 예상됩니다.

게다가 글로벌 IT기업들은 부품이나 위탁생산을 복수의 기업에 분산 발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인텔이 아웃소싱 물량을 모두 TSMC에게 밀어주기보다는 삼성전자에게 나눠서 맡길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10나노 이하 미세공장 캐파


특히 7나노 공정까지는 TSMC가 앞선 게 사실이지만,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가 되겠다는 삼성전자가 5나노 이하 공정에서는 TSMC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인텔 입장에서도 두 회사를 놓고 열심히 저울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도 14나노 공정이 적용되고 있는 텍사스 오스틴 공장을 7나노 이하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인텔이 TSMC에는 GPU 위탁 생산을 맡기고, 삼성전자엔 CPU 생산을 맡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습니다. 이는 TSMC가 이미 인텔의 GPU와 모뎀 칩 일부를 위탁생산하고 있는데다 TSMC가 인텔 경쟁사인 AMD의 CPU를 대신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전망으로 보입니다.

다만 인텔의 이같은 아웃소싱 전략이 TSMC와 삼성전자에겐 자칫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할 겁니다. 그동안 14나노 칩만으로도 AMD의 7나노 칩과 경쟁하며 시장 지배력을 유지해 온 인텔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인텔이 자체 미세공정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 공정 격차를 따라잡는 시점에 자체 생산으로 선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됐 건 20여년 간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1위를 지켜 온 삼성전자로서도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인텔이라는 중요 고객을 TSMC에 송두리째 빼앗길 경우 비메모리 분야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반도체 비전 2030`의 동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 업체들은 메모리에서의 기술 격차를 1년 정도까지 좁히고 있는 상태니 말입니다. 최근 잘 나가는 반도체업체들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텔의 전향이 현실이 된다면 사실상 마지막으로 남는 IDM이 되는 삼성전자가 어떤 길을 걸을지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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