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당국이 주주환원정책의 일환으로 배당을 얼마로 할지 배정정책 목표치를 공시하도록 요구하는 경우는 여러 나라에서 흔히 있지만, 주가 관련 재무비율(ROE, PBR)의 중기 목표치와 이행 전략을 공시하도록 하는 사례는 미국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경영 패러다임을 성장(매출) 중심에서 주주가치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일본 정부의 자본시장 선진화 의지가 일본식 자본주의 특유의 금융정책으로 구체화한 제도 개선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기업밸류업프로그램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다소 파격이고 고무적이다. 경제민주화정책 흐름이 형성된 이래 정책 초점은 줄곧 일반주주의 권리 강화, 최대주주 의결권(감사위원) 제한, 스튜어드십코드 등 주로 투자자의 주주권과 행동주의 활성화에 맞춰졌다. 정작 자본시장으로부터 저평가를 받고 있는 당사자인 기업에게 변화를 직접 요구하는 제도 개선 사례는 찾기 쉽지 않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이런 점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의 지평을 투자자에서 기업으로 확장하는 의미가 있다.
물론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일본도 최근 절반 정도의 프라임 기업만 목표치를 공시함에 따라 기업 명단을 공개하는 챙피주기(name & shame) 수단까지 동원하며 공시를 독려하고 있다. 규모가 작고 PBR이 낮은 기업이 주로 공시에 참여하고 도요타 등 글로벌 대기업은 공시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우리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매우 높은 대기업이 많다. 아무리 자본효율이 낮고 저평가 돼 있어도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기업은 변화에 노출되는 것을 꺼릴 것이다. 행동주의펀드들의 캠페인 타켓이 SM이나 태광산업 등 일부 케이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소유분산 기업이나 금융지주, 중견기업에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 의무 공시가 자율공시의 일본과 다른 점이긴 하나,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대기업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책 방안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