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중이온가속기가 열 과학기술 강국의 길

  • 등록 2022-02-23 오전 6:30:00

    수정 2022-02-23 오전 6:30:00

[용홍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시다. 숲에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사람이 덜 간 길을 택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구절이 특히 유명하다.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과학기술이 추구하는 가치와 근본적으로 닮아있다는 생각에 이 시를 자주 떠올리곤 한다.

용홍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대전 유성구 신동지구에는 가지 않은 한국 과학기술의 길을 개척하는 현장이 있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 원소에 대한 근원적 지식을 탐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1년 말 시작되어 1조 5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첨단 기초과학시설이다. 지금까지 쉽게 발견하지 못했던 희귀한 동위원소를 인공적으로 만들고, 빔으로 받아 연구에 활용하는 원리다. 희귀동위원소는 우주의 기원, 별의 진화과정을 밝히는 핵물리학에 주로 사용된다. 또한 암과 같은 난치병 치료법 개발, 방사성 의약품, 신소재 개발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 폭넓은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중이온가속기를 활용한 연구 성과가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중이온가속기 구축은 지난 10년간 핵심장치 제작과정의 기술적 어려움 등으로 몇 차례의 계획 변경이 있었다.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시도였기에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로 일정도 지연되었다. 하지만 그 같은 과정이 있었기에 기술과 경험이 하나하나 축적되었고, 작년 12월 말 저에너지구간 초전도 가속장치의 설치가 완료됐다.

이는 전체 과정에서 1단계 장치가 완성된 것으로, 자력으로 초전도가속 모듈을 직접 설계해 제작하고 성능 검증을 마친 세계 8번째 사례로 손꼽힌다.

라온은 현재 빔 인출을 이뤄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 연구와 실험에 한창이다. 올해 안에는 최초의 빔 인출과 함께 시운전 착수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에너지 구간 초전도 가속장치에서 첫 빔 인출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시운전과 검증을 거쳐 2024년께 연구자들에게 실제 실험에 적용할 수 있는 빔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라온은 지금까지 구현된 중이온가속기의 어느 모델과도 차별화된 뛰어난 성능을 지향한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이미 중이온가속기를 보유한 국가들은 가벼운 이온을 무거운 표적에 충돌시키는 온라인 동위원소 분리방식(ISOL) 또는 그 반대인 비행파쇄방식(IF) 중 하나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라온은 세계 최초로 두 가지를 결합한 방식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단일 방식 보다 희귀한 동위원소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만들기도 어렵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 걸음을 옮기는 것은 두렵다. 셀 수 없이 많은 오류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눈물 흘리고, 좌절도 하는 험난한 길이다. 지금도 전 세계 과학기술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며 연구실의 불을 밝힌다. 과학기술은 인류 문명은 그렇게 한 걸음씩 전진해 왔다. 지난해 10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를 향해 힘차게 비상했다. 계획대로 완벽하게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독자 기술로 개발한 발사체가 고도 700km에 이르는 데 12년이 걸렸다. 이제 라온의 차례다. 축적의 시간만이 과학기술 강국 대한민국의 빛나는 길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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