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요리사 법관과 주먹질 변호사

  • 등록 2021-04-02 오전 6:00:00

    수정 2021-04-02 오전 6:00:00

오카모토 켄. 2004년에 71세였던 그는 오사카 고등법원 근처의 이자카야(대중식당과 주점을 혼합한 형태의 음식점)주인이었다. 계산대에 앉아 돈만 받는 것이 아니라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요리사 복장으로 주방에서 음식도 만드는 1인 2역의 주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노인 요리사였지만 그의 이력은 남달랐다. 이자카야를 열기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 법원 형사부에서 수석판사로 일했기 때문이다. 그가 요리사 옷을 입은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정년퇴직 후엔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앞세운 변호사 일보다 다른 사람들이 기뻐할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감안할 때 ‘인생 이모작’ 최고의 길은 남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한 그는 퇴직 후 1년간 조리사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이자카야를 차린 후 줄곧 주방과 계산대를 지켜 왔다.

필자가 10여년 전 일본의 한 일간지에서 건져냈던 이색 뉴스 한 토막 속의 ‘별난 인생’ 이야기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눈 잣대가 달라진 탓에 법조인들에 대한 대중의 평가와 시선은 옛날만 못해진 감이 적지 않다. 법대 입학은 물론 사법시험 통과가 ‘바늘구멍으로 낙타 지나가기’만큼 어려웠던 시절의 법조인들에게는 대개 ‘엘리트’ 찬사와 함께 존경과 신뢰의 두 단어가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일일이 이름을 들춰내지 않아도 독재와 불의에 맞서 사회 정의와 법치를 수호한 대쪽 법관, 강골 검사의 기억은 수많은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다. 법조인들에게 아직 선망의 시선이 꽂히고 주위의 신뢰와 기대가 상대적으로 큰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 법조인과 관련해 하루가 멀다하고 꼬리를 물고 이어진 어두운 뉴스들을 되짚어 본다면 그런 평가와 대접이 온당할지 의문이다. 법을 집행하고 타인을 재단하는 위치의 사람들이 지녀야 할 윤리 의식과 도덕을 팽개친 사례를 우리는 너무도 쉽게 목도하고 있어서다. 자신과 가족의 각종 비리 의혹에 휘말려 추락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내로남불’ 행태와 이용구 법무차관의 변호사 시절 택시기사 폭행, 그리고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 파문에 이르기까지 존경의 대상이 돼야 할 이들이 분노와 비난의 표적으로 전락한 것은 극히 일부 사례일 뿐이다. 잘라 말해서 엘리트들의 ‘자기 파괴’ 전성시대다.

이들의 탈선 배경은 탐욕·오만과 무관치 않다. 더 강한 권력과 더 많은 재물을 향해 폭주한 욕망의 전차에서 내리지 못한 잘못이 자신에게 오욕을, 국민에겐 실망을 안긴 격이다. 살아서는 물론, 세상을 뜬 후에도 신뢰와 양심의 상징으로 존경받는 법조인은 적지 않다. ‘법복 입은 성직자’로 추앙받는 고 김홍섭 전 서울고등법원장의 일대기를 모르는 후배 법조인은 없을 것이다. 청렴과 강직을 평생 법전처럼 끼고 산 법관과 검사도 많을 것이다. 드러나진 않았어도 요리사 수준을 넘어, 퇴직 후엔 낮은 곳에서 남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 엘리트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을지 모른다.

4월 재·보선을 앞둔 정치권에선 ‘혈투’가 한창이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의 선봉에 선 이들 중 상당수는 법조계 출신이다. 선거 후 정국이 내년 대선을 향해 내닫기 시작하면 이들의 이름은 더 자주 국민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잊어선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윤리와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와 공정의 가치가 더 의심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데 이제라도 힘을 보태는 것이다. 법조계 엘리트들의 빗나간 행각에 질려버린 보통 국민의 염원도 비슷할 것이다. 법을 공부한 이들에 의해 정의가 조롱받고, 법이 반칙을 덮는 방패로 악용되는 구태와 악취가 계속된다면 세상은 “법 공부 안 한 게 다행”이라는 탄식으로 가득 찰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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