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의 樂카페]'온고지신' 대중가요

  • 등록 2024-02-05 오전 6:30:42

    수정 2024-02-05 오전 6:30:42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사진=이데일리DB)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오래 전 노래를 끌어와 새 사운드의 옷을 입히는 이른바 리메이크 작법은 대중음악이 태동할 때부터 있어왔다. 어른들에게 친밀감을 주고, 뉴 제네레이션에게는 신선함을 제공하는 일거양득은 때로 제작자와 가수에게 큰 성공을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리메이크는 ‘창작력의 고갈에 따른 현상’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받는 뼈아픈 단점이 존재했다. 아티스트는 당연히 창작곡에 몰입해야 했다. 199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한 전설들인 서태지, 신해철, 듀스, 신승훈의 경우 기존의 곡을 재해석한 노래가 없었다.

확실히 전에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미래로의 전진이 음악가의 소명이었다. ‘창의적 빈곤’이니 ‘순전한 상업적 접근’ 운운은 음악가들에게 벌과도 같았다. 근래 리메이크에 대한 시각은 극명하게 달라졌다. 갈라진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잇는 가교 또는 음악적 다양성 실현이라는 호의와 환대가 대체적이다. 세대 간 감각의 단절이 눈 깜짝할 새 이뤄지면서 더욱 리메이크는 시의적절한 수법이 돼가고 있다.

블랙핑크를 잘 아는 20대 초반 젊음은 2010년대 중반까지도 떠들썩했던 2NE1과 결코 친하지 않다. 우선 매체에 그들의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이럴 때 만약 누군가가 2NE1의 노래를 초현대적 접근으로 리메이크한 곡을 내놓는다면 20대 음악소비자로 하여금 시대의 폭을 넓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옛 곡을 가져오는 게 지금 노래에 없는 아우라를 끌어들일 수 있는 방식이라는 사실 또한 각별한 이점이다. 그만큼 흘러간 음악 중에는 비록 시장의 덩치는 작았으나 정서적으로는 윤택했던 수작들이 즐비하다.

마마무의 솔라는 얼마 전 포크의 전설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리메이크했다. 서태지가 출현하기도 전인 1991년에 발표한 곡으로 어느덧 33년의 세월이 흘렀다. K팝에서 찾기 힘든 어쿠스틱 포크의 인간적 숨결을 지금의 음악소비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에 흘러 인기를 모은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 NCT 드림의 ‘캔디’, 테이의 ‘모노로그’ 등도 모두 리메이크 곡들이다.

‘모노로그’는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버즈였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말해주듯 2000년대 초중반 절대적 인기를 누린 밴드 버즈의 데뷔작이다.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놀랍게도 20년도 더 지났다. 가요역사상 토픽 측면에서 제왕이었지만 그간 덤덤했던 서태지도 최근 관심이다. 거의 30년 묵은 1995년 곡 ‘시대유감’을 리마스터링을 통해 다시 내놓은 덕분이다. 공연윤리위원회 당국에 음반 사전심의를 받아야 했던 시절, 그런 검열관행의 철폐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역사적 곡이 돌아왔으니 그때가 오히려 시대불변의 육중한 창작물이 더 많았음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법하다.

방영 중인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에서 세븐틴의 도겸이 부른 ‘꿈’, 그리고 태연이 노래한 ‘단발머리’는 ‘가왕’ 조용필의 ‘골든 레퍼토리’들이다. 극 주인공 이름을 조용필로 한 게 재밌다. 조용필은 이미 2013년 ‘바운스’로 젊은 세대와 감성적 접점을 확보했지만 그것도 10년의 이끼가 꼈다. 이런 리메이크가 그의 무수한 명작의 숨결이 젊은 세대에게 전해질 수 있는 생산적인 접근법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앞으로 리메이크는 양적 질적 성장을 거듭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비옥한 동거는 필연적이다. 오래됐어도 피땀 흘려 만든 집념의 역작들은 부활해야 한다. 과잉 상업성에 매몰된 현재의 노래들과는 완벽한 콘트라스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3년밖에 안 된 노래가 쉬 잊히고, 30년 전의 곡이 가뿐히 돌아오는 상황. 이제 시제(時制)는 흐릿해진 정도를 넘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AI 테크놀로지는 재현이 불가능했던 과거 음원을 복원해 현재로 데려올 것이다. K팝의 변화와 혁신을 주문한 한 제작자는 말했다. “어쩌면 지금 음악은 과거에 항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거기서 지혜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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