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김지우씨 “한국 사회, 무해한 장애인 원해”

휠체어 위 유튜바 구르님의 첫 에세이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김지우|248쪽|휴머니스트
정상과 비정상 틈새 발칙하게 가로지르다
장애 아동들과 '휠체어 꾸미기' 작업
당당히 `자신 표현`하는 문화 됐으면
  • 등록 2022-08-03 오전 6:40:00

    수정 2022-08-03 오전 6:40:00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린 ‘제34차 출근길 지하철탑니다’에서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하고 있다. 전장연은 내년도 본예산에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 장애인 권리 4대 법률 제개정, 서울시의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 재정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부터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 중에 있다(사진=뉴시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한국 사회는 무해한 장애인을 원합니다.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존재로 인식할 때는 호의적이지만, 장애인이 권리를 요구하면 비난과 조롱의 말을 서슴지 않죠.”

뇌병변 장애를 가진 유튜버 김지우(21)씨가 경험해온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최근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나 김씨는 시청자들이 자폐 스펙트럼을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에는 열광하지만,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이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 차가운 시선을 보이는 이유의 지점이 여기에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드라마 ‘우영우’의 등장에 대해서는 “반갑다”면서도 “현실에서는 장애인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양날의 검처럼 느껴졌다. EBS ‘딩동댕 유치원’에 나오는 휠체어를 탄 친구 ‘하늘이’처럼 서사를 지닌 인물이 아니라, 그냥 학교,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것이 진짜 편견을 없애는 길”이라고 했다.
첫 책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휴머니스트)를 펴낸 뇌병변 장애인 유튜버 김지우 씨가 매달 자신의 ‘휠체어 꾸미기’ 작업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 ‘이달의 휠체어’ 모습. 웨딩드레스, 한복 등 다양한 의상을 입고 그에 맞는 휠체어 디자인을 선보이는 화보 프로젝트로, 단순히 휠체어의 외형만 바꾸는 게 아니라 삶에서 휠체어를 어떻게 패션으로 치환하는지, 타인의 시선을 당당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사진=포토그래퍼 유흐름 제공).
“출근길에 장애인이 없다”

김씨는 7년차 인기 유튜버다. 고등학생 시절인 2017년부터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운영하며 장애 이슈를 다루고 있다. 그는 어리고 장애가 있는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장애 이슈를 건드릴 때마다 자주 소환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의 첫 책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휴머니스트)는 유투버이자 20대 여성, 휠체어를 탄 뇌병변 장애인으로서 겪어온 일상과 관계의 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씨는 “아무래도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자)이다보니 활자보다 영상에만 익숙해지더라. 유튜버 활동을 해오면서 언젠가 내 이야기를 정리된 무언가로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은 꾸준히 갖고 있었다”면서 “글로 만날 수 있는 독자층은 또 다를 텐데, 이번 작업을 통해 많은 독자를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고 웃었다.

김씨 유튜브에 구독자가 많은 이유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근사한 농담처럼 건넨다는 점이다. 이 같은 강점은 김씨의 책에도 잘 녹아있다. 이를테면 김씨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를 꺼낼 때 엄마가 아닌 ‘현미’라고 지칭하는 식이다.

“어린 내가 겪어야 했던 배타의 과정을 감당한 건 내가 아니고 현미였다. 그래서 현미는 자연스레 ‘쌈닭’이 됐다. 어릴 때 내게 익숙했던 현미의 모습은 뭔가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 따박따박 따지는 거였다. (중략) 나와 분리되지 않는 삶을 산 현미는 어떤 것들을 견뎌야 했을까. 이제는 현미를 마주할 때다.”

김씨는 엄마를 이름으로 부른 의도에 대해 “장애인인 저를 이야기할 때 가족 얘기를 빼고 쓸 수 없다. 좋든 싫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으로서 가족들에게 돌봄을 받고 자란다. 다만 ‘엄마’ ‘아빠’라고 쓰면 사회적 맥락에서 모성애, 희생 같은 것들이 너무 쉽게 달라붙을 것 같았다. 장애인 부모로서 읽히는 게 아닌 그냥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고 말했다.

성에 대한 얘기도 책에 거침없이 썼다. 그는 “장애 여성으로서 다층적 차별을 겪게 되더라.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장애여성들은 임신중절을 권유받기도 한다”며 “당연한 욕망인 성욕도 장애인이 이야기를 꺼내면 공격 당하는 일도 적지않다. 정당하지 않다”고 했다.

책에는 장애 이슈를 다루는 기획자로서 장애인의 삶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덜’ 준비된 사회를 향해 어떻게 목소리를 낼지 등에 대한 사유와 통찰이 녹여져 있다.

준비가 ‘덜’된 사회를 향한 촌철살인도 잊지 않는다. 김씨는 책에서 “뇌성마비의 걸음이란 한 발자국, 손을 흔드는 타이밍까지 계산해야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있는 출구와 내가 가야 할 장소가 정반대라든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는 안내문을 본다든지, 환승을 하려면 리프트를 다섯 번 타야 한다거나 출구로 나가 100m 정도를 가서 다시 내려가야 하는 일 역시 다반사다. 지하철은 ‘대중교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꾸 대중이라는 말 안에 장애인이 있는 것은 까먹는 모양이다. 여전히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고, 책임을 져야 할 사회는 조용한데 열의가 있는 개인만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길보라 영화감독 겸 작가는 추천사를 통해 “이 책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틈새를 유쾌하고 발칙하고 근사하게 가로지른다”며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휠체어를 탄 여성으로 살아가는 작가의 이야기는 정확하게 한국 사회의 단면을 짚어낸다”고 적었다.

그는 요즘 휠체어 꾸미기에 빠져있다. 지난해 9월부터 매달 한복, 웨딩드레스, 교복 등 다양한 의상을 입고 그에 알맞은 휠체어 디자인을 선보이는 화보 프로젝트 ‘이달의 휠체어’를 진행 중이다. 줄임말로 일명 ‘휠꾸’로 통한다. 단순히 외형을 꾸민다는 데 나아가 ‘당당함’을 획득하자는 의도를 담았다. 휠체어가 타인의 시선을 받아내는 수동적 존재였다면 타인의 눈길을 끄는 패션쯤으로 그 시선을 즐긴다고 했다.

김씨는 ‘휠꾸’를 하나의 문화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어릴 적 ‘왜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지?’라는 생각을 품었던 만큼 장애 아동들을 모아 나만의 휠체어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다니는 김씨는 지난해 4월 ‘서울대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을 결성해 현재까지 관악구 예산지원으로 서울대 인근 식당 32곳에 경사로를 설치하기도 했다. 공중파 방송출연, ‘세바시’ 강연, 평창동계패럴림픽 성화 봉송 주자, 연극 배우, 잡지(보그) 화보 촬영 등을 하며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 왔다.

그는 대표로 나서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표’ 자리에 올려지는 것은 대단한 권리인 동시에 사회적 소수자에겐 그 자체로 소수자성을 재확인시키는 일이기도 하다”면서 “그럼에도 직접 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는 아직도 장애인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김씨는 “어릴 적 나는 어른이 되면 내 장애가 낫는 줄 알았다. 알려주는 사람도, 나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도 없었다”며 “장애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우 씨가 자신의 휠체어에 그라피티를 새긴 뒤 촬영한 화보(사진=포토그래퍼 장모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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