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해’ 원작 소설가, 계급 짓눌린 현실멜로 꺼내다

작가 이혁진이 던진 묵직한 질문
이해(理解)와 이해(利害) 사이
사랑은 왜 비대칭하고, 불균형한가
드라마 인기에 4년 전 소설 역주행
소설 한 방식, 차기작 또 사랑 얘기
"리메이크곡 즐기듯 작품 즐겼으면"
  • 등록 2023-02-08 오전 7:10:00

    수정 2023-02-08 오전 8:41:31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은행에 근무하는 네 남녀의 사랑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계급적 구조와 모습을 현실적으로 다룬다(사진=SLL 제공).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어긋난 로맨스(romance·연애 사건)는 TV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불치병(기억상실), 불륜과 치정, 범죄·법정·복수물까지. 흔하디흔한 수많은 사연이 시공과 국경을 초월해 연애의 현실을 고증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주제는 인류 보편적인 영원한 화두다.

최근 화제작인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지금껏 취해온 로맨스 형식과는 결이 다르다. 연애물이지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상처받는다’는 고전 명제만을 따르지 않는다. 원작의 힘이다. 2019년 동명의 소설로 먼저 출간한 이 작품은 연애와 사랑에 작동하는 ‘계급’을 곱씹는다.

사랑은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아니라고, 동시에 계급의 형상이 사랑의 영역을 어떻게 구획 짓는지, 물질과 사랑의 관계에 대한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준다. 연애야말로 얼마나 맵고 짜고 달달한지, 헐벗은 인간의 본성을 샅샅이 더듬고 신랄하게 묘사한다.

연애사에 비친 벌거벗은 계급 사회

원작 소설을 쓴 이혁진(43) 작가는 이같은 사랑의 복잡성을 이 작품에 투영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기는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랑은 이해(理解) 가능한 영역인지, 학벌 경제력 앞에서 이해(利害·이익과 손해)를 따지면 사랑이 아닌 거냐고, 소설은 뚝심 있게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 종영을 2회분(16부작) 앞두고 서면 인터뷰로 만난 이혁진 작가는 “(드라마를)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고 극찬했다. 그는 “소설 속 인물들의 설정이 바뀌고 새로운 에피소드(장면)가 붙으면서 생기는 줄거리 상의 여러 파장에 대해 집중해 보고 있다”면서 “내 소설이 매체에 맞게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해석되는 게 무척 재밌고 즐겁다”고 말했다.

드라마 ‘사랑의 이해’ 동명의 원작 소설가 이혁진 작가(사진=작가 제공).
소설은 완전무결하지 않으며 이야기의 한 방식이라는 게 이 작가의 생각이다. 그는 2020년 이 소설의 드라마 판권을 계약할 당시 “인물들의 행동과 결말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을 뿐 드라마에 대한 다른 관여는 없었다”며 “다만 그것이 잘 반영된 것 같아 무척 다행스럽고 감사하다”고 웃었다.

소설은 사랑을 매개로 우리 주변의 첨예하게 대립하는 계급사회를 보여준다. 배경은 자본주의의 상징인 ‘은행’이다. 인물은 상수, 수영, 종현, 미경 네 사람. 그들은 사내 연애 중이다. 연봉, 집안, 아파트, 자동차 등 누군가에겐 스펙이고 누군가에겐 열등감과 자격지심의 원천일 자본의 표상에 붙들린 채 사랑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고 헤맨다.

“망설였다. 관계를 더 발전시킬지 말지. 수영이 텔러, 계약직 창구직원이라는 것, 정확히는 모르지만 변두리 어느 대학교를 나온 듯한 것, 다 걸렸다.”(98쪽 본문 중에서), “상수는 사랑하면서도 사랑일 수만은 없는 자신이 나약하고 남루해 견딜 수 없었다.”(326쪽 본문 중에서).

계급은 사랑 앞에서 상수를 망설이게 하고, 수영을 솔직하지 못하게 만든다. 계급과 학력의 차이가 어떤 입장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하는지, 사랑의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하며 시시때때로 변하는 간사한 마음을 낱낱이 기록한다.

이 작가는 “‘사랑의이해’는 연애소설이 아니라 연애에 대한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썼다”며 “어느 쪽을 비판하기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런 걸 보여주는 쪽에 목표가 있었다”고 했다. 계급 격차에서 오는 갈등이 그저 개개인의 선악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인물들의 다층적 욕망을 그려내는 식이다.

2019년 출간한 소설 ‘사랑의 이해’ 책 표지(사진=민음사 제공).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를 써나가면서 사랑이 다른 감정과 다르다면 결국 우리를 벌거벗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며 “벌거벗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벌거벗은 상대방을 지켜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고 적었다.

이 작가는 회사로 대표되는 계급 사회의 모순을 포착해왔다. 2016년 몰락한 조선업을 배경으로 회사 조직의 병폐와 부조리를 다룬 ‘누운 배’(한겨레출판사)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3년 뒤 ‘사랑의이해’(민음사)를 펴냈다. 2021년에는 카르텔과 불의로 얼룩진 공사 현장을 핍진하게 그려낸 ‘관리자들’(민음사)을 선보였다. 계급에 천착하는 이유를 묻자 이 작가는 “가장 현실적인 요소이자, 우리의 사고와 감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당연히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라며 “수백년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얘기를 잘 옮겨내는 것이 내 일”이라고 말했다.

요즘 쓰고 있는 작품의 주제도 ‘사랑’이란다. 최종 원고를 다듬고 있고, 곧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드라마 방영 이후 원작 소설의 판매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소설을 출간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서점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역주행 중이다. 교보문고 1월 넷째 주 베스트셀러 집계에 따르면, ‘사랑의 이해’는 소설 분야 6위에 오르며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드라마 방영일 전후 30일간 판매량을 비교하면, 종이책은 18배 이상, ebook(전자책)은 15배 이상 판매가 급증했다고 예스24 측은 전했다.

드라마를 먼저 챙겨본 뒤에 소설을 접할 미래 독자들을 향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말 그대로 리메이크한 곡을 즐기듯 ‘드라마’와 ‘소설’을 즐겼으면 합니다. 같은 이름의 인물을 두고 서로 다른 작가, 매체가 그것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뭐가 더 낫고 더 못하다 하기보다 어떤 게 왜 좋은지, 각 인물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각각의 방식과 흐름을 즐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하하.”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은행에 근무하는 네 남녀의 사랑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계급적 구조와 모습을 현실적으로 다룬다(사진=SLL 제공).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은행에 근무하는 네 남녀의 사랑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계급적 구조와 모습을 현실적으로 다룬다(사진=SL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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