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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에게 생소한 볼거리까지 제공한 흥미 진진했던 경기. 대주자로 나선 투수 임정우의 모습 역시 좀처럼 보기 힘든 명장면이었다. 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날의 숨은 MVP였다. 9회초 4-4 동점이 그의 발에서 만들어졌다.
2-4로 추격한 2사 2,3루. 손주인이 타석에 들어설 때 2루 주자였던 이진영 대신 임정우가 대주자로 나섰다. 헬멧을 쓰고 내야에 나가있는 임정우의 모습은 어색하기만했다.
안타 하나면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루 주자 이진영이 왼 무릎 부상으로 재활을 거쳐 올라온 터라 베이스러닝은 무리일 수 있었다. 이미 야수는 다 써버려 대주자가 남아있지 않는 상황. 결국 LG 벤치는 투수 임정우까지 투입하는 강수를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손주인의 좌중간 적시타가 터져나왔다. 임정우는 혼신의 힘을 다해 홈까지 내달렸다. 외야수가 잡아 홈에 뿌려봤지만 임정우의 발이 더 빨랐다. 차일목의 태그를 피해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극적인 동점 점수였다.
그렇다면 투수진에서 임정우가 ‘깜짝’ 대주자로 낙점받은 이유는 뭘까. 딱 세가지다.
임정우는 투수 중 가장 어린 축에 속했고 이날 ‘투수’로는 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제일 빠른 선수였다는 점. 임정우보다 어린 임찬규도 대주자감으로 남아있었지만 LG 코칭스태프가 임정우를 대주자로 찍은 이유는 역시 그 때문이다.
임정우는 달리기 실력이 그냥 준수한 게 아니라 무척 빠르다. 100m를 11초 초중반대로 주파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LG 투수 가운데 단거리, 장거리 모두 가장 빠른 선수다. 야수들과 단,장거리를 뛰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솜씨다. 오히려 야수 카드가 남아있더라도 임정우 카드를 고민할 수 있었겠다 싶을 정도롤 빠른 발을 가진 선수였다.
사실 발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그 상황에선 어느 누구라도 부담이 올 수 밖에 없었다. 임정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3루 대주자도 아닌 2루 대주자로 나가 엄청 긴장이 됐단다.
중학교 3학년 이후론 투수밖에 하지 않아 빠른 발을 보여줄 기회도 전혀 없었던 그는 팀이 가장 절실한 순간, 그 능력이 빛을 발했다. 빠른 발과 재치있는 주루플레이 덕분에 LG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는 “운이 좋았다. 포수가 막지 않고 있어서 옆으로 피해서 밟았다”며 당시 흥분된 상황을 전했다. “이길 수 있는 점수를 뽑아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임정우는 김 감독의 기대대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5연승의 출발점이었던 29일 한화전부터 3경기에 나서 4.1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1피안타 2사사구에 1실점만 하며 든든한 힘이 되주고 있다. 비번이었던 2일엔 전문분야가 아니었던 빠른 발 솜씨까지 뽐내며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LG의 5연승의 든든한 밑거름이 된 조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