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조달방식에 있었다. 피렌체에는 몬테코뮨(Monte Commune)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번역하면 ‘공공부채기금’라는 것이다. 피렌체의 부유한 시민들은 피렌체 정부에게 자금을 빌려줬는데, 이들이 정부에 빌려준 돈이 몬테코문을 형성하게 됐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빌려주었던 것은 아니고 일종의 의무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취득 시 국민주택채권을 매입하도록 하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피렌체는 몬테코뮨을 이용해 전쟁비용을 감당하면서도 르네상스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기존 방식의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자금조달방식의 출현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다음 달인 그해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는 9쪽의 논문을 통해 기존 금융시스템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금융생태계 모델을 선보였고 블록체인기술은 특히 자금조달분야에서 활발하게 활용됐다.
블록체인시스템에서 참여자는 하나의 토큰의 이동될 때마다 기록되는 각자의 장부를 보유하며, 서로의 장부상 기록내용이 다를 경우에는 이를 비교해 다수와 동일한 기록을 보유하는 자의 장부가 정확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런 방식은 기존 중앙예탁기관(CSD·Central Securities Depository) 같이 신뢰를 담보하는 거대기관 없이도 일정한 기록의 무결성을 보장할 수 있게 한다.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점차 다양한 권리내용을 가진 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중앙예탁기관의 경우 안정성에 초점을 맞춰 인프라를 설계할 수밖에 없어 법적으로 가능한 증권이라 해도 이 인프라에 맞지 않으면 발행할 수가 없다. 그러나 토큰증권제도에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민간기관이 중앙예탁기관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므로, 보다 다양한 유형의 증권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토큰증권제도 역시 대중에게 일정한 내용의 증권을 발행해 유통시키는 것이므로 일정한 규제와 감독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결국 토큰증권제도 역시 시스템 상 기존증권과 유사한 권리만이 수용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대형금융기관들이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참여가 어려운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토큰증권제도의 취지를 살려 다양한 권리의 발행과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수용할 수 있는 것도 필요하지만 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선 이용자보호와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양자의 균형을 통해 토큰증권제도가 기업들의 몬테코뮨으로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