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포기하지 않았다. 1938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을 설득해 ‘과학연구개발국’을 세웠다. 그동안 쓸모없다고 외면받은 과학적 아이디어를 군에 적용했다. 그 결과 U보트 격퇴에 결정적 역할을 한 레이더 시스템, 폭격 효율을 7배나 올려준 미사일, 아인슈타인이 독일이 먼저 개발할 것이라고 경고한 핵폭탄 등을 만들어내 전쟁을 미국의 승리로 이끌었다. 이 조직은 이후 ‘방위고등연구계획국’으로 개편돼 인터넷, 반도체, GPS, 3D 그래픽 연구를 수행하며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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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아이디어’에 성공이 있다
저자는 과학자이면서 경영자이기도 한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바이오테크 기업 신타 제약을 창업해 13년간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오바마 정부에서 대통령 과학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그는 자신의 남다른 이력을 바탕으로 경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미친 아이디어로 손가락질 받는 ‘룬샷’을 오히려 발견하고 육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물리학 이론 중 하나인 ‘상전이’를 경영에 끌어온다. ‘상전이’는 얼음과 물이 공존하는 상태처럼 하나의 물질이 두 가지 상태의 경계에서 공존하는 현상을 뜻한다. 얼음과 물이 함께 하듯 창의성과 효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때 ‘룬샷’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부시의 사례에서 ‘과학연구개발국’을 과학자의 창의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병사들이 이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조직을 설계한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혁신적인 발명품을 개발하는 그룹과 기존 영역을 지키는 그룹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한다.
◇‘룬샷’을 키우는 건 문화 아닌 ‘시스템’
그럼에도 궁금증은 남는다. 아무리 봐도 실현 가능성을 알 수 없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룬샷’으로 만드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세 번의 죽음을 이겨낼 것, 가짜 실패에 속지 말 것, 호기심을 갖고 실패에 귀 기울일 것, 문화보다 시스템을 만들 것, 선지자가 아닌 정원사가 될 것 등이다.
저자는 고대 중국부터 산업화 시대의 유럽, 2차 세계대전을 거쳐 팬암, 폴라로이드, 애플, 할리우드와 픽사까지 다양한 역사의 현장을 종횡무진 내달리며 과학자와 경영자의 눈으로 ‘룬샷’의 힘을 소개한다. 경영서에 등장하는 물리학 용어들이 다소 낯설기는 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제 아무리 무모한 아이디어라도 그 속에는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씨앗이 있다. ‘룬샷’은 그 힘을 발견하고 키워야 함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