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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들의 중심에서 히틀러를 도왔던 괴벨스는 독일 나치선전과 미화를 담당해 국민 선동에 앞장섰습니다. ”거짓말을 하려면 큰 거짓말을 하고 단순하게 만들어라. 계속해서 그것을 반복하라. 그러면 결국 사람들은 그 거짓말을 믿을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하나의 거짓말을 충분히 반복하면, 사람들은 그 거짓말을 믿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조차도 그 거짓을 믿게 될 것이다.“ 괴벨스가 뱉어낸 말을 통해 그가 어떻게 거짓말이라는 수단을 통해 대중들을 움직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45년 히틀러가 자살한 바로 다음날 괴벨스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 이후 78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일부 정치집단들은 마치 괴벨스를 학습해 계획을 세운 것처럼 거짓으로 음모론을 만들고, 그것이 만들어낸 분노를 키워 그들의 권력을 지키는 동력으로 사용합니다. 흔히 ‘가짜뉴스’라고 부르지만 그 단어가 가진 느낌의 크기만으로는 그들이 망치고 있는 세상을 설명해내기에 역부족입니다. 거짓말이 객관적 검증을 통해 진실의 실체가 드러나도 일단은 부정한 다음 다른 음모론을 더해 분노로 키워내는 그들의 정치메커니즘은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매체가 다양화되고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현재의 미디어 환경은 가짜뉴스가 자라기 참 쉽습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라는 생태계를 통해 정보들은 쉽게 섞이고 쉽게 퍼져나갑니다. 익명성 뒤에 비겁하게 숨은 자들의 막말, 정치인들이 만든 가짜뉴스, 특정집단이 만든 불신들이 섞이면서 서로를 욕하고 헐뜯는 세상으로 바뀝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반목과 질시는 더욱 커지고 상대방을 향한 손가락질은 일상이 됐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주 쓰는 단어가 바로 ‘개혁’(改革)이란 단어입니다. 전 이런 웃지못할 현실이 슬픕니다. ‘개혁’은 욕으로 범벅된 댓글이나 적이라고 생각하는 상대방에게 보내는 입에 담지 못할 문자로 절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진보’(進步)라는 단어는 ‘투쟁’鬪爭)’과 연결된 단어가 아닙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붙어있는 단어처럼 보입니다. 진보와 보수는 지향하는 가치가 다를 뿐 함께 잘살아보자는 기본적인 정신은 동일합니다. ‘보수’(保守)는 지키려는 자들이니 ‘죽창’을 들고 그들의 것을 빼앗는 게 진정한 ‘진보’는 아닐 겁니다. 거짓말과 더러운 욕지거리로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를 포장하는 자들은 사라져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가치중심의 진보와 보수’가 바로 서지 않을까요? 그들의 거짓을 진실로 밝혀내고, 그들의 험한 말을 서로를 존중하는 따듯한 단어로 바꿔내야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살아 숨쉬는 살만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