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퇴계선생 '선물 가려받기'

  • 등록 2017-02-02 오전 6:00:00

    수정 2017-05-21 오후 3:37:47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김영란법 시행 후 첫 설 명절을 지내면서 ‘선물 문화가 바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와 비교해 5만원 이하의 중저가 선물의 배달 물량은 증가했지만 그 이상의 고가 선물은 줄어들었다는 소식이다.

그간 우리의 선물 문화에 대해서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명절 선물이 부정 청탁 같은 우리사회의 부패 부조리를 조장하는데 이용되고 있다는 보도가 많았다.

이를 감안할 때 이번 설에 나타난 변화는 아주 긍정적인 시그널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어느 지인은 설 명절을 맞아 거래처에 5만원 이하 선물을 보냈는데 “이런 건 보내지 말라”는 좋지 않은 반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김영란법 때문에 이 금액 이상은 보낼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이번 설 선물은 아예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에 가까운 사람간에 정이 담긴 선물을 주고받는 미풍양속은 오히려 되살아나는 듯하다. 부모님이나 어르신에게 보내 드리는 생활용품이나 부담 없는 사이에 주고받을 수 있는 먹거리 선물이 증가했다고 한다.

제도나 정책의 변경에는 항상 긍정적인 효과 못지않게 부작용도 뒤따르게 마련이다. 김영란법의 원래 취지와 달리 과수나 화훼농가, 식당 등을 경영하는 소자영업자들에게 피해가 있고, 한우와 굴비 등 고급선물 공급업체도 울상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어려움보다 좀 더 넓게 멀리보자.지금 내가 기쁘게 받은 선물 하나가 훗날 내 자신을 부정청탁의 덫으로 내모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기업 역시 막대한 선물비용을 줄이면 원가가 절감되고 그만큼 경쟁력이 높아진다. 지금 지구촌은 무한 경쟁시대다. 경쟁력은 작은 것 하나하나가 모여 큰 것을 이룬다. 국가 사회도 경쟁에서 이겨 영속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지도층의 청렴이 필수이다. 역사적으로 장수 국가는 모두 청렴했다. 조선왕조 500년도 그래서 가능했다. 말기에 이 기풍이 무너지자 외세의 침략에 앞서 먼저 망국의 조짐을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선물이 다 없어져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주고받아야 인정이 오가는 미풍양속은 이어져야 한다. 이 판단 기준을 개인이 스스로 자각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도덕률을 제안하고 싶다. 특히 받는 사람 입장에서 그렇다. 자기에게 엄격하고 주는 남에게 관대 하여야 한다. 공적이거나 업무 관련성이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면 절대 후환이 없을 것이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는 퇴계선생에게서 지혜를 배우는 것도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다. 퇴계는 의롭지 않은 것은 받지 않았다. 심지어는 옆집 밤나무 가지에서 자기 집 마당에 떨어진 밤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다. 또 청탁이 있는 물건은 절대 받지 않았다. 되갚을 수 없는 것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받은 것은 반드시 답례를 하였다. 출처와 주인이 분명치 않은 것도 물리쳤다. 단양군수를 떠나올 때 전별금 명목으로 건네는 삼(大麻) 꾸러미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보내오는 선물은 인정으로 여겨 기꺼이 받고 반드시 답례를 하였다. 퇴계가 남긴 3000통 이상의 편지 가운데 받은 물품보다 준 물품의 가짓수가 더욱 많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리고 받은 물건은 어른과 친지들과 반드시 나누었다. 지금 시대에 퇴계와 꼭 같이 사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무거나 받기 보다는 의로운 것을 가려서 받고, 받고 나서는 반드시 답례하고, 받은 물건은 주위와 나누어 갖는 것은 본받아야 할 덕목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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