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 시비 걸고 "일찍 끝내라" 요구…수모에 노출된 성평등강사

"메갈이냐" 비난 퍼붓고…출석 후 도망치기도 `일쑤`
강사들 "불성실한 수강태도 제재 등 강의환경 개선"
여가부 "대책 마련 위해 연구용역 진행하겠다"
  • 등록 2019-07-05 오전 6:00:17

    수정 2019-07-08 오전 9:29:07

지난 5월 8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전문강사를 대상으로 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다.(사진=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제공)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 소속 전문강사 A씨는 최근 성평등 강의 신청을 받고 한 고등학교에 교육을 나갔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진행하다가 한 교사가 “성폭력 예방 교육인데 왜 성인지 이야기를 하느냐”며 반발했기 때문. A씨는 성폭력 예방을 위해선 성 감수성 등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이후 강의를 듣는 학생들 반응은 냉담해졌다.

최근 여성 인권 및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성평등 교육을 찾는 공공기관이나 학교가 늘어나 수천 명의 전문강사들이 교육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강사들은 실제 교육현장에서 무시 당하거나 수업에 원색적 불만을 제기하는 등 불성실한 강의 태도가 만연하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이 강화되는 만큼 불성실한 태도에 대한 제재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료=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제공


◇강사에게 ‘메갈이냐’·출석하고 도망…성평등 교육 천태만상


양평원에 따르면 강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성평등 관련 교육을 진행하는 전문강사는 4079명이다. 특히 지난해 미투 운동이 이어지면서 성폭력·성희롱 예방 교육이나 성인지 교육 등 폭력 예방 교육분야 강사만 3293명에 달한다. 양평원에서 진행하는 전문강사 양성교육도 △2017년 3880명 △2018년 3643명 등 매해 수천 명이 이수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들은 강의 수는 늘어났지만 수강생들의 불성실한 태도 등으로 강의 진행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방 공공기관과 학교에서 주로 강의하는 B씨는 “학교에 강의를 나가서 ‘메갈이냐’ 같은 얘기를 듣기 일쑤”라며 “심지어 강의안 자료나 강의 내용을 무단으로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이어 “슬라이드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악의적으로 시비를 거는 수강생도 있다”며 “하물며 정부 통계도 못 믿겠다는 식으로 비난한다”고 했다.

공공기관 직원들은 아예 출석만 남기고 수업을 듣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공공기관 종사자는 1년에 4시간 이상 직장 내 양성평등 및 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그러나 한 전문 강사는 “실제 공공기관에 성평등 교육을 나가면 바쁘다는 핑계로 출석만 체크하고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다”며 “학교 같은 경우는 그나마 교사들이 있어 통제가 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통제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방 공공기관에선 과거에 보험사에서 짧게 성교육을 하고 보험상품을 파는 형식으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며 “아직도 전문강사를 보험 파는 사람 정도로 치부하는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 5월29일 경찰서장과 공공기관 임원이 될 승진 예정자들이 성평등 교육을 받던 도중에 상당 수가 커피를 마시러 나가거나 수업에 불만을 제기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강사로 나섰던 권수현 여성학 박사는 자기 페이스북에 `경찰의 핵심직무 역량으로서 성 평등`이라는 주제로 강의하던 중 조별 토론을 제안하자 “‘귀찮게 토론시키지 말고 강의하고 일찍 끝내라’, ‘이런 거 왜 하냐’라며 불평하며 ‘커피나 마셔볼까’라며 우르르 자리를 이탈했다“고 전했다. 논란이 일자 민갑룡 경찰청장은 권 박사가 불쾌할 수 있었다면서 당시 교육을 받았던 해당 승진 대상자들에게 주의를 줬다고 밝히기도 했다.

강사들 “강의 환경 개선해야”…여가부 “대책 연구용역 맡길 예정”

전문강사들은 강의 필요성에 비해 수용도가 낮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강의 환경을 개선하고 불성실한 태도 등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강사 C씨는 “성평등 강의가 의무인 곳은 불성실한 태도를 방지하기 위해 현장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특히 현재 100명이 넘는 대규모 강의는 수용도가 낮을 수밖에 없고 관리도 어렵기 때문에 강의를 늘려 한 강의의 수강생을 줄이는 방식 등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도 최근 양평원 관계자와 강사들을 불러 간담회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여가부 관계자는 “경찰 간부 교육 논란이 발생하자마자 양평원과 강사들과 함께 간담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며 “문제 상황 발생시 강사에게 필요할 만한 자료나 교육대상자 수준에 맞는 교육 콘텐츠 마련 등 연구용역을 맡길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불성실한 태도에 대한 제재 등은 관계부처와 협의가 필요해 당장 추진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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