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은 쇠꼬챙이로 일곱 마리 말의 눈을 찌른 뒤 정신병원에 들어온 알런, 그의 치료를 맡은 중년의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대화로 전개된다. 다이사트의 대사가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관객들에게 정서적 ‘전이’를 일으키는 건 알런이다. 현대인의 잠재된 욕망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매개체는 말(馬), 라틴어로 ‘에쿠우스(Equus)’다.
알런은 말 그림 앞에서 기도를 하고, 한밤 중 마굿간을 찾아 말을 쓰다듬으며 탐닉한다. 광적인 기독교 신자 어머니와 무신론자 아버지 사이에서 억압받고 자란 알런에게 있어 ‘에쿠우스’는 종교이자 애인인 것이다. 양 끝단인 것 같은 ‘신(神)’과 ‘성(性)’이지만, 결국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둘을 모두 갈망하는 존재라는 걸 ‘알런’을 통해 얘기한다.
알런을 치료하던 다이사트는 그의 얘기를 듣고 점차 매료된다. 알런이 갖고 있는 순수함, 정열에 대한 ‘동경(憧憬)’이자 ‘끌림’이다. 열정이 식은 섹스리스(sexless) 결혼 생활과 의사라는 직업에 얽매여 무기력· 권태에 빠져있던 다이스트는 정작 자신의 병은 치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허탈해 한다. 결국 디사이트는 알런을 치유하려던 자신의 행위가 ‘정열의 파괴’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고 후회한다.
광기와 이성, 신과 섹스, 본능과 억압이라는 인간 본연의 화두를 예리한 시선으로 깊이있게 파고든 ‘명작’이다. 긴박감 넘치는 극 전개는 2시간 내내 지루할 틈 없이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아맨다. 특히 극 말미 다이사트가 내뱉는 처절한 독백 속에서 느껴지는 허탈감과 상실감은 어느덧 삶에 지쳐 열정을 잃어버린 기성세대들의 모습이 투영돼 여운이 짙다. 이번에도 근육질 남성 배우들이 분장한 일곱 마리 말은 야성적이고 섹시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