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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이제 머리만 나면 됩니다.”
정장에 헌팅캡을 쓴 중년 신사인 강익구(63)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사실 실내에서, 게다가 인터뷰 중에 모자를 쓰고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그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강 원장은 한국전력에서 20년, 한국노총에서 10년, 노인인력개발원에서 10년을 일했다. 지난 2017년 퇴직 후 몸무게가 눈에 띄게 줄어 주변 권유에 병원을 찾았다가 식도암을 선고받았다. 식도암은 췌장암과 함께 5대 고액암으로 꼽힌다. 발병률이 낮아 치료도 어렵고 치료비도 많이 든다.
1, 2차 항암치료를 받은 후 병원에서 다 나았다는 얘기를 들은 강 원장은 마침 진행 중이던 노인인력개발원장 공모에 나섰다. 누구보다 잘 아는 곳이고 잘할 수 있기에 응시했고 지난해 7월 원장으로 취임했다.
외모가 조금 변하고 몸을 피곤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는 평소처럼 일하고 있다. “이젠 많이 나아졌다.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에서는 총 1조6487억원을 투입해 61만개의 노인일자리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은 모두 노인인력개발원에서 위탁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편의점, 주유소,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커피전문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하는 노인들은 노인인력개발원의 일자리 발굴사업의 결과물이다. “무슨 노인들이 이런 일을…”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인들을 만나 설득했고 기회를 얻은 노인들이 성실함을 무기로 업무 능률을 높여가자 다른 노인들에게도 기회가 생기고 있는 것.
강 원장은 “주유소에 어르신들을 배치하기 위해 경유와 휘발유 구분법부터 카드결제 교육까지 하나하나 해야 했는데 청소과 경비 등으로 국한됐던 노인 일자리를 다양화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최근엔 시니어 호텔리어 등 젊은층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찾아 노인 일자리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원장은 “노인 일자리사업은 1석 3조 효과가 있다”며 “노인 소득보장을 통해 노인빈곤률을 낮출 수 있고 사회활동이 늘어 병원 찾는 일이 줄면 의료비도 아낄 수 있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노인 일자리 하나당 54만원의 의료비 절감효과를 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소개한 그는 “20만명만 계산해도 1000억원대 의료비 재정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고령사회 진입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2022년까지 노인일자리를 80만개로 늘릴 방침이지만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젊은 노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 원장은 “정부 일자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강원랜드,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중부발전 등과 같은 공기업을 찾아다니며 노인적합형사업을 제안하고 있다”며 “베이비부머들이 원하고 욕구에 맞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생각만 해도 즐겁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바람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는 “노인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바로 노인”이라며 “생산력이 떨어지고 노후화된 사람을 뜻하는 거 같다는 건데, 이런 인식이 개선될 수 있도록 성공모델을 만들고 싶고 또 일자리 매개로 노후 소득보장 체계가 짜임새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