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음 받던 '이단아' 토스, 은행이 되다

재수끝 예비인가 획득‥5년만에 금융 주류 진출
자본안정성 대폭 보강 주효…길게보면 남는 장사
치열한 경쟁 예고‥자칫 증자 과정서 불협화음
  • 등록 2019-12-17 오전 6:00:00

    수정 2019-12-17 오전 9:01:33

이승건 토스 대표가 1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토스뱅크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임시회의를 열고 토스뱅크 컨소시엄에 대해 은행업 예비인가를 승인했다.(사진=뉴스1)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경쟁사가 우리 서비스를 베낄 때 기분이 가장 좋습니다. 앞으로 인터넷은행을 하면서 이런 일들을 많이 만들어가야죠.

국내 대표적인 핀테크 기업 토스의 이승건 대표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토스뱅크가 16일 재수 끝에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에 성공했다. 토스가 지난 2015년 2월 간편송금 서비스를 내세워 금융산업에 발을 내딛은 지 약 5년 만이다.

대기업(케이뱅크)이나 IT재벌(카카오뱅크)이 아닌 핀테크업체가 제도권 은행으로 올라선 첫 번째 사례다. 비주류인 핀테크가 주류 제도권 은행의 주인이 됐다는 의미다. 토스를 운영회사는 법인명은 비바리퍼블리카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당시 민중들이 외치던 구호 ‘공화국 만세(Viva Republica)’에서 따왔다. 이름처럼 금융 시장의 혁명을 제대로 일으켰다.

토스를 이끈 이 대표는 철저히 비주류다. 그는 금융과 아무런 관계없는 치과의사 출신이다. 남들이 하지 않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전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 대표는 토스로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8개의 사업을 모두 실패했다. 간편송금 서비스를 앞세운 토스가 시장에 안착하기까지도 이 대표는 주류와 싸워야 했다. 은행권의 불편하고 번거로운 송금절차를 대체하려 내놓은 간편 송금 서비스를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각각의 은행별로 계약을 해야 했다. 처음 은행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다. ‘작은 핀테크업체가 은행이 요구하는 거래조건을 충족할 수 있느냐’는 시선을 많이 느꼈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골리앗 은행과 상대하며 ‘을’의 설움을 느꼈다.

이 대표는 지난 9월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간담회 자리에서 불쑥 “금융위와 얘기하면 모든 게 다 잘 될 것 같은데 감독기관과 얘기를 해보면 진행되는 것이 없다”고 발언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이 대표의 발언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수적인 금융권에서 금융당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토스가 인터넷은행을 아예 포기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 대표와 토스는 금융권에서 철저히 이단아였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이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회로를 찾았다. 두번째 토스뱅크 컨소시엄은 토스가 의결권 기준 34% 지분을 확보해 최대 주주로서 이끌면서 KEB하나은행, SC제일은행을 포함한 은행권을 주요 주주로 끌어들였다. 이 대표를 포함해 토스 측의 지분이 줄어 발언권이 약화하더라도 길게 보면 은행업 인가를 받는 게 남는 장사라는 판단에서다.

이뿐 아니라 기존에 발행된 RCPS전량을 전환우선주(CPS)로 전환했다. RCPS 발행은 스타트업 업계의 보편적인 자본 조달 방식 중 하나이지만 보수적인 금융권에서는 성격상 갚아야 할 부채로 본다. 대주주로서의 자본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토스는 상환권을 떼어 냈다. 주주들도 이 대표의 결정에 흔쾌히 동의했다. 상환권을 제거해서라도 토스가 인터넷은행에 진출하는 게 필요하다는 이 대표의 설득에 주주들도 마음을 바꿨다. 자본안정성을 대폭 보강한 이 대표의 전략은 금융당국의 불안감을 줄이는 효과로 나타났다.

윤창호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토스뱅크는 1차 때 토스나 벤처캐피털 지분이 높았으나 이번에는 KEB하나은행이나 SC제일은행, 중소기업중앙회를 포함해 안정적인 기관투자가가 보강됐다”며 “전체적으로 지배 주주의 적합성이나 자금조달 부분에서의 안정성 측면에서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토스뱅크는 빠른 성장보다는 느림보 전략을 앞세웠다. 출범 2년 동안 자산성장 정도를 3조3000억원으로 잡았다. 카카오뱅크와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1차 도전 때까지만 해도 빠르게 성장시킨 뒤 증시에 상장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카뱅식’ 전략을 내세웠지만, 이번에는 전략을 180도 바꿨다.

대신 혁신에 방점을 찍고 인터넷은행을 운영하기로 했다. 혁신을 가미한 틈새 상품을 대거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금융거래 이력 부족자에 대한 중금리대출, 월급 가불대출, 신용카드를 소지하지 않은 고객을 위한 할부서비스 성격의 대출, 게임성 예금 등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 대표의 역발상 전략이 마음에 들었다. 윤 국장은 “토스뱅크는 (기존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처럼 빠르게 성장하겠다는 전략과는 차별화된 슬로우 전략을 내세웠다”면서 “토스뱅크가 자체적으로 제시한 사업계획이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토스뱅크는 인적·물적 요건을 갖춘 뒤 본인가를 신청하게 되고 본인가 뒤 6개월 이내 영업이 가능해진다. 준비를 거쳐 2021년 7월쯤 영업을 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토스뱅크 앞에 장미빛 미래만 놓인 것은 아니다. 토스뱅크가 합류하면 국내 인터넷은행은 케이뱅크·카카오뱅크·토스뱅크의 삼파전이 된다. 이미 자리 잡은 카뱅과 든든한 대주주가 뒷받침하는 케이뱅크, 혁신성으로 무장한 핀테크 사이에서 진검승부를 펼쳐야 한다는 뜻이다.

앱 하나로 모든 금융거래가 가능한 ‘오픈뱅킹’ 시대까지 본격화하면 혁신금융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자칫하다간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 토스뱅크가 계획대로 순항한다면 4~5년 이후 흑자로 전환할 수 있다는 사업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장사가 생각보다 잘 안된다면 증자를 둘러쌓고 주주간 불협화음이 터져 나올 수도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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