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형량 합산방식 절충 필요…경합범 가중처벌 쉽게"

■이슈포커스-70년 낡은 형법 정비하자
한상훈 형사법학회장, 형법전면개정 추진
"최대형량범위까지 가중처벌 가능하도록
가중·감경요소 반영 쉽게 법체계 고쳐야"
선진국, 범죄예방 위해 다양한 형식 적용
집행유예 '무죄' 인식…일부만 유예 검토
  • 등록 2024-03-06 오전 5:55:00

    수정 2024-03-06 오전 5:55:00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현행 형법은 경합범, 상습범을 처벌하는 데 있어 피해자 보호에 약점이 있다. 미국식 합산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현행 가중주의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한국형사법학회장인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형법 전면 개정을 통해 경합범·상습범의 처벌 방식을 뜯어고치고 가중·감경요소 체계도 개편해야 한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한국형사법학회장인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방인권 기자)
“다중피해자 범죄시 가중형량 추가 합산 가능하게”

한 사람이 2개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실체적 경합범에 대해 우리 형법은 최고 형량에 대해 최대 2분의 1의 형량을 가중하도록 하고 있다. 최고 형량이 징역 10년인 사기범죄를 예로 들면 1개의 사기죄에 대해서는 징역 10년, 2개의 사기죄를 저질렀다면 징역 15년으로 가중된다. 그러나 3개의 사기죄를 범한 사기꾼 역시 징역 15년에 그친다. 2명을 상대로 사기 치나 100명을 상대로 사기 치나 징역 15년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최근 몇년새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전세사기처럼 수백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에서 처벌수위는 피해자가 2명인 것과 동일하다. 한 학회장은 “피해자 보호에 약점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미국의 형법은 형량을 합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범죄 수에 비례해 형량이 증가한다. 징역 10년 선고가 가능한 범죄를 10개 저질렀다면 100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것이다.

한 학회장은 “미국식처럼 단순합산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경합범의 처벌 체계를 현행 단순가중에서 합산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개정해 최대 가중처벌범위까지는 가중처벌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0년형의 범죄를 2개 저지르면 현행처럼 2분의 1을 가중해 15년형이 가능하도록 하고 범죄 수 3개째부터는 동일한 가중형량(5년)을 합산하는 방식이다. 다만 한도는 유기징역의 최대 가중상한인 50년형으로 두는 안이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확장성 부족한 형법 체계…특별법 난립 낳아

낡은 형법 체계는 확장성·유연성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새로운 가중·감경요소를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여서 결과적으로 형사특별법이 양산된 측면도 있다.

절도죄를 예시로 살펴보면 현행 형법은 제329~332조에서 절도, 야간주거침입절도, 특수절도, 상습범을 구분해 법정형을 제시하고 있다. 한 학회장은 각각의 세부 범죄유형을 나누는 방식보다는 가중요소를 열거하고 여기에 해당되는지, 몇개의 요소에 해당되는지 등에 따라 특수범죄, 가중범죄, 특수가중범죄의 순서로 가중하는 방식이 검토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본 범죄인 절도에 주거 침입·피해액·흉기 휴대 등의 가중 조건을 두는 식으로 형량을 세분화·단계화하면 향후 사회변화에 따라 가중 조건을 추가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형법의 규정시스템을 현대적으로 개선하면 상당수 형사특별법 등을 형법으로 흡수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 학회장은 “성범죄 하나에도 3~4개의 특별법이 존재하고 있다”며 “특별법이 너무 많으면 수사기관이 어떤 혐의로 기소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고 국민들도 어떤 것이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알기 어려워 범죄예방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낡은 형법이 갖고 있는 규정 체계 중 모순 사례도 있다. 강도범이 강간을 범한 경우 강도강간죄로 가중처벌돼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반대로 강간범이 강도를 범한 경우에는 별도의 가중범죄가 없기 때문에 경합범 가중이 돼 3년 이상 45년 이하의 징역이 된다. 강간과 강도라는 2가지 죄를 똑같이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놓고 어떤 범죄가 먼저 발생했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것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한 학회장은 이같은 규정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했다.

실형과 간극 큰 집행유예…중간 옵션 필요

형법학 전문가들은 우리 형법을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형벌분야에서 가장 뒤쳐져 있다고 평가한다. 선진국의 경우 단순히 형벌을 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면서도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형벌의 형식과 집행방식을 연구하고 실험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중형에만 의존하려는 관성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학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죄 선고를 받더라도 집행유예가 나면 형의 전부를 유예하기 때문에 사실상 ‘무죄’와 같이 받아들이는 풍토가 있다”며 “미국 등처럼 일부의 형 집행만을 유예하고 간헐적으로 형을 집행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형벌의 형식과 집행방식을 다양하게 고민함으로써 범죄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실형과 집행유예의 간극이 너무 크다 보니 그 중간의 옵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거 내 구금(home detention) 등과 같은 중간 정도의 형사제재를 유연하게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방안도 궁극적으로 범죄를 예방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형사법학회장인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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