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정책 대전환]복지 아닌 생존…아빠 육아휴직 의무화한 롯데

남성의무육아휴직까지 도입 3년 누적 사용자 4000명 돌파
소비재 기업인 롯데의 미래가 아이들에게 달려있기 때문
신세계도 백화점 등이 직장어린이집 설치…육아 관심↑
  • 등록 2020-01-02 오전 2:19:00

    수정 2020-01-02 오전 2:19:00

아빠 육아휴직 현황(고용부 통계)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롯데백화점 평촌점 한승채(41) 아동스포츠팀 팀장은 남성 육아휴직자 2만명 가운데 1명이다. 지난해 3월 아빠가 됐고 같은 해 5월부터 육아휴직을 썼다. 산후조리원을 나온 이후 밤낮없이 보채는 아이를 달래는 일로 아내가 지쳐가기 전에 육아에 함께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

육아휴직을 이후 새벽 아이 돌보기는 그의 전담이 됐다. 덕분에 아내는 밤에 깊은 잠을 자게 됐다. `독박 육아`에서 벗어난 아내는 이제 둘째도 키워볼 만 하겠다고 얘기한다. 한 팀장은 “산후도우미나 부모님 도움 없이 저희 부부 둘이 좌충우돌하면서 육아를 했어요. 그 과정에서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경험을 했지요.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아이와의 스킨십입니다. 아내 친구들도 저희 부부를 부러워합니다.”

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 팀장과 같은 남성 육아휴직자는 지난해 11월말 현재 2만477명이다. 2016년 7616명에 불과하던 남성 육아휴직자는 2018년 1만7662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한 데 이어 처음으로 2만명대를 돌파했다. 여기에는 사회적 분위기 확산과 함께 기업들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롯데다. 롯데는 지난 2017년 1월부터 모든 계열사에서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제도를 도입했다. 직원들이 경제적 이유로 육아휴직을 꺼리지 않도록 휴직 첫 달 통상임금의 100%를 주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제도 개선이 이뤄지며 남성들은 열흘간의 유급 출산휴가와 3개월 유급 육아휴직(통상임금의 100%, 상한 200만원)을 보장받게 됐다. 이와 비교해도 롯데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한 팀장은 “의무화제도가 생겼지만 초기에는 상사 눈치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 제도가 안착하면서 육아휴직을 안 쓰면 이상하게들 생각한다”고 했다. 한 팀장의 경우 적지 않은 마흔살 나이에 결혼해 바로 아빠가 됐지만 중간 간부인 팀장으로서 휴직을 쓰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을까 고민했다고도 한다. 이에 그의 상사는 “한 팀장 없어도 회사는 돌아간다”며 먼저 육아휴직을 권유했다.

롯데그룹 남성육아휴직자 교육 대디스쿨 모습(사진=롯데 제공)


이런 분위기는 롯데그룹 전체로 확산 중이다. 롯데가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한 첫 해엔 사용자가 1100명이었다. 의무화 이전인 2016년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가 180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6배 이상 늘었다. 그러다 2018년 남성 육아휴직자는 1900명으로 늘었고 작년엔 10월말까지 1450명이 제도를 사용했다. 누적 사용자만 4450명에 이른다. 롯데 관계자는 “초기 업무 손실에 대한 우려도 있었으나, 그룹 최고 경영자의 관심 속에 빠르게 정착하며 다양한 순기능이 조직 안팎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가 남성 육아휴직에 공을 들이는 건 단순히 직원 복지 차원이 아니다. 통상 경제학자들은 저출산으로 촉발된 소비 감소가 생산과 투자 등으로 이어지는 경제활동 고리를 차단해 결국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특히 롯데와 같은 소비재 기업의 경우 출생아 감소는 구매력 감소로 직결돼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에 롯데는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의 키를 남성 육아휴직에서 찾았다. 남성 육아휴직을 통해 가정이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지면 저출산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8년 6월 롯데가 남성 육아휴직을 경험한 직원의 배우자 100명을 대상으로 육아휴직 전후 남편들의 행동 변화를 묻는 설문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남편 육아휴직이 육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는지 묻는 응답에 10명 중 7명(72%)이 `매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고 응답한 비율도 19%로, 배우자의 91%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가장 도움이 된 건 `가사와 육아를 부부가 함께 한다는 심리적 위안`을 꼽았다. 육아휴직 후 가장 달라진 점으로 `자녀와의 친밀한 관계 유지`라 답했다. 그동안 여성에게 편중된 육아를 부부가 함께 나눠 할 수 있게 되면서 추가 자녀계획도 모색해 볼 수 있게 되는 것.

하지만 이런 롯데의 분위기를 다른 기업으로 확산하하는 건 만만치 않다. 남성 인력 비중이 높거나 중소기업의 경우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기 부담스러워하기 때문.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육아휴직으로 한 사람이 빠지면 대체 가능한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인력 구조상 어려움 때문에 기업에서 남성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최고경영자(CEO)의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롯데도 신동빈 회장이 여성인재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한 방안을 수시로 주문하면서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를 해결책으로 찾아냈다. 롯데는 금융, 관광, 화학·건설·제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분야를 가지고 있지만 주력 분야는 식품 유통이다. 산업의 특성상 여성 근로자 비중이 높다 보니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은 기업의 손실로 본 것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이마트 본점 1층에 스타벅스를 내보내고 어린이집을 열었다. 신세계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과 광주점, 인천점 등 백화점 주요 매장 2층에 어린이집을 열었다. 본사 직원 외에 협력업체 직원들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는 정 부회장의 결정이 주효했다. 함께 오래 일해온 비서가 육아를 이유로 퇴직하겠다고 하자 정 부회장이 직장 어린이집에 관심을 두게 됐다는 후문이다.

박 교수는 “기업 문화를 바꾸는 일에 있어서 기업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기업가들이 저출산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둔다면 상황은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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